공직에서 가장 흔하게 들었던 말 가운데 하나는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습니다”라는 문장이었다.
그 말은 대개 회의의 끝자락에서,
혹은 질문이 불편해졌을 때 등장했다.
그러나 나는 오랜 시간 공직에 몸담으며
이 문장이 등장하는 순간,
오히려 질문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느끼게 되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과
공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같지 않다.
공직의 권한은
개인에게 주어진 힘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잠시 맡겨진 신뢰다.
따라서 그 권한의 행사는
결과보다 먼저 설명을 전제로 해야 한다.
설명할 수 없는 결정은
아직 충분히 숙성되지 않았거나,
누군가의 이해관계를 숨기고 있거나,
혹은 책임을 나중으로 미루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설명의 유무는
그 결정이 공적인지, 사적인지를 가르는
가장 분명한 기준이 된다.
설명은 변명이 아니다.
설명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기술도 아니다.
설명은
왜 이 선택이 불가피했는지,
누가 어떤 영향을 받게 되는지,
그 결과를 누가 감당할 것인지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행위다.
이 과정이 불편할 수는 있다.
질문이 이어질 수도 있고,
비판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견디지 못한다면
그 자리에 설 자격 또한
다시 물어야 한다.
공직자의 품격은
결정을 얼마나 잘 내렸는가보다
그 결정을 어떻게 설명했는가에서 더 또렷이 드러난다.
설명을 피하는 조직은
시간이 갈수록 침묵에 익숙해지고,
침묵에 익숙해진 조직은
결국 책임을 잃는다.
반대로 설명을 중시하는 조직은
속도는 느릴 수 있어도
신뢰를 축적해 나간다.
나는 공직의 여러 자리에서
설명을 회피하는 선택이
훗날 더 큰 비용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보아왔다.
그 비용은 예산일 수도 있고,
조직의 사기일 수도 있으며,
무너진 신뢰일 수도 있다.
설명하지 않은 대가는
항상 뒤늦게,
그리고 더 무겁게 찾아온다.
설명할 책임은
공직의 부가적인 의무가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며,
다음 단계의 책임—
위기 앞의 태도와 권한의 절제—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이다.
설명할 수 있다면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고,
설명할 수 없다면
아직 그 자리를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독자에게 묻습니다
당신이 지금 맡고 있는 역할에서
가장 먼저 설명해야 할 대상은 누구입니까?
그 설명을
당신은 오늘, 기꺼이 할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