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갑자기 오지 않는다,
태도는 그 전에 만들어진

by 황희종

공직에서 위기는 늘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온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내가 지나온 현장을 돌아보면

위기는 대부분 갑자기 온 적이 없었다.

다만 우리가 애써 보지 않으려 했을 뿐이다.

작은 징후는 늘 있었다.


보고서의 문장이 애매해지고,

회의에서 질문이 줄어들고,

설명 대신 “괜찮다”는 말이 반복되기 시작할 때

그때 이미 위기는 자라고 있었다.

위기 앞에서 공직자의 품격은

결정의 기술보다 태도의 방향에서 먼저 드러난다.

책임을 지는가,

아니면 책임을 나누는가.

문제를 안으로 끌어안는가,

아니면 바깥으로 밀어내는가.

위기가 닥쳤을 때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은

그 조직이 평소 무엇을 준비해 왔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다.


나는 공직 생활 동안

위기를 맞아 서로 다른 선택을 하는 장면들을 보아왔다.

어떤 이는

“이건 내 소관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고,

어떤 이는

“직원들이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대로 어떤 이는

자신의 이름이 가장 먼저 적힌 보고서를 들고

“여기까지 온 건 제 책임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한 문장이

상황을 단번에 해결하지는 못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순간,

조직의 중심은 분명해졌다.

위기 대응의 핵심은

문제를 단번에 없애는 데 있지 않다.

누가, 어떤 자세로 그 문제 앞에 서는가에 있다.

책임을 지는 사람은

모든 해답을 갖고 있지 않아도 된다.

다만 도망치지 않는다.

설명할 준비를 하고,

함께 해결할 사람들을 남겨 둔다.

반면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는

위기를 잠시 넘길 수는 있어도

신뢰를 잃는다.

그리고 신뢰를 잃은 조직은

다음 위기에서 더 큰 대가를 치른다.

공직의 세계에서

위기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위기 그 자체가 아니라

위기를 대하는 태도가 누적된 결과다.

평소에 설명을 회피하고,

질문을 부담스러워하며,

책임을 분산시키는 문화 속에서는

위기가 오면

자연스럽게 책임도 흩어진다.

반대로 평소에

설명을 당연하게 여기고,

질문을 환영하며,

책임을 명확히 하는 조직은

위기 앞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다.


나는 점점 이렇게 믿게 되었다.

위기 때의 태도는

위기 이전의 태도가 만든 결과라는 것을.


그래서 공직자의 품격은

위기가 닥쳤을 때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무 일도 없을 때

이미 조용히 쌓이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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