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의 현장에서 침묵은 흔하다.
회의가 끝난 뒤에도, 결정이 내려진 뒤에도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장면은 낯설지 않다.
때로 그 침묵은 신중함으로,
때로는 조직을 배려하는 태도로 포장된다.
그러나 나는 오랜 시간 공직에 몸담으며
한 가지 질문을 자주 떠올리게 되었다.
침묵은 언제 책임이 되는가.
침묵 그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모든 상황에서 즉각적인 발언이
가장 현명한 선택인 것도 아니다.
문제를 충분히 숙고하기 위해
잠시 말을 아끼는 태도는 오히려 필요하다.
문제는 침묵이 반복될 때다.
이미 문제를 알고 있으면서도,
이미 결과를 예견하고 있으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상태가 지속될 때
그 침묵은 더 이상 중립이 아니다.
공직의 책임은
‘말을 했는가’보다
‘말해야 할 때 침묵하지 않았는가’에 더 가깝다.
결정권자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관할이 아니라는 이유로,
혹은 이미 정해진 방향이라는 이유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순간들.
그때의 침묵은
책임을 회피하는 가장 조용한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공직 생활 동안
회의록에 남지 않는 결정들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아왔다.
그 결정들 옆에는
늘 비슷한 침묵이 함께 있었다.
“지금 말해도 달라질 게 없다”는 판단,
“괜히 문제를 키울 필요는 없다”는 계산,
“윗선에서 이미 결정했다”는 체념.
이 모든 이유가 쌓일수록
조직은 조용해졌지만,
그 조용함은 결코 평온이 아니었다.
공적 책임의식이 분명한 사람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러나 말해야 할 순간을 외면하지도 않는다.
그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문제를 문제라고 부르는 일은 피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한마디는
때로는 아무 일도 바꾸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직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기준이 된다.
침묵이 책임이 되는 순간은 명확하다.
그 침묵이 누군가에게
설명할 기회를 빼앗고,
대안을 상상할 가능성을 닫아버릴 때다.
그때 침묵은
배려도, 신중함도 아닌
책임의 공백이 된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누군가에게 더 많이 말하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공직의 자리에서
이 질문만은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 이 침묵은
조직을 지키고 있는가,
아니면 책임을 미루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설 수 있다면,
그 순간 이미 공직의 품격은 지켜지고 있다.
독자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최근, 말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침묵을 선택한 순간이 있었습니까?
그 침묵은
지금도 설명할 수 있는 선택이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