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의 품격이 보이지 않는다.

by 황희종



최근 언론을 통해 비춰지는
선출직 국회의원과 임명직 장관 후보자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오랜 시간 마음이 무거웠다.
정책의 옳고 그름이나
진영의 문제를 떠나,
그 자리에서 마주한 것은
공직의 품격에 대한 깊은 실망이었다.


공직의 자리는
능력만으로 오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선거로 선택되었든,
임명 절차를 거쳤든,
그 순간부터 요구되는 것은
자격이 아니라 태도다.


그러나 최근 우리가 본 장면들 속에는
그 태도가 잘 보이지 않았다.


질문 앞에서의 모습은
공직자의 품격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설명해야 할 자리에서
말을 돌리고,
책임을 묻는 질문 앞에서
법률 자문 뒤로 숨는 모습.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설명의 시작이 아니라
대화를 끝내는 문장이 되어버렸다.


공직의 언어가
설명에서 방어로,
책임에서 계산으로 바뀌는 순간
품격은 조용히 사라진다.


더 마음 아픈 장면은
책임의 방향이었다.
문제가 제기되면
그 책임은 늘
과거의 관행으로,
실무진으로,
제도의 허점으로 흘러갔다.


그러나 공직의 자리는
책임을 나누는 곳이 아니라
책임을 끌어안는 자리다.
그 자리를 감당하겠다고 나섰다면,
그 무게 또한 함께 짊어져야 한다.


선출직과 임명직의 차이는
절차에 있을 뿐,
품격의 기준에는 차이가 없다.
국회의원이든, 장관 후보자든
그 앞에는 항상 같은 질문이 놓인다.


이 자리를 왜 맡으려 하는가.
그리고 문제가 생겼을 때
누가 그 책임을 질 것인가.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지 못한다면,
그 자리는 아직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공직자의 품격은
완벽함에서 나오지 않는다.
흠결이 없어서도 아니다.


오히려 흠결 앞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가
품격을 가른다.

숨기려 하는가

미루려 하는가

남에게 돌리려 하는

아니면,

설명하려 하는가

책임지려 하는가

물러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차이가
공직을 신뢰의 제도로 만들기도 하고,
불신의 구조로 만들기도 한다.


나는 공직을 떠난 지금도
이 장면들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공직의 품격이 무너질 때
그 피해는
특정 정당이나 특정 인물이 아니라
국민 전체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은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기억해야 할 기준을 남기기 위한 기록이다.


공직자의 자리는
오르는 자리가 아니라
견뎌야 할 자리다.
그 견딤 속에서
설명과 책임, 절제와 내려놓음이
함께 따라오지 않는다면
그 자리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독자에게 묻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장면들 속에서,
당신은
공직자의 자격을 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공직자의 품격을 보고 있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어떤 기준을
다음 사람들에게 남겨야 하겠습니까?




매거진의 이전글왜 우리는 공적 책임을 말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