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아기를 위한 이유 찾기
아기가 이유 모를 떼를 쓰기 시작했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도 내 품만 찾았고, 밥을 먹을 때면 고개를 저으며 숟가락을 밀어냈다. 양치를 하려 하면 손을 밀치며 울기까지 했다. 분명 잘 해왔던 일인데, 왜 갑자기 짜증을 내는 걸까. ‘내가 뭘 잘못하기라도 했나?’ 오늘 하루를 돌이켜보았다. 집안일을 한다고 아기를 혼자 두었던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 괜히 떠올랐다. 좀 더 신경 써줄걸... 마음 깊은 곳에서 죄책감과 억울함이 동시에 올라왔다. 그러다 문득 불안이 스쳤다. 신생아 시절, 밤낮없이 울던 아기를 돌보며 버텼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때의 육체적인 피로와 정신적인 고립감이 희미하게 되살아났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다시 그때처럼 힘들어지면 어쩌지?’ 이상한 걱정이 스며들었다. 그만큼 내가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다가 아기의 잇몸에서 작고 하얀 이가 올라오고 있는 걸 발견했다. 피가 맺힌 잇몸이 꽤나 아파 보였다. 그제서야 모든 게 이해되었다. 아, 그래서였구나. 아파서 그랬구나. 그래서 나를 찾았구나. 몸이 힘들어 쉬어갈 곳을 찾은 게 내 품이었구나. 아기가 한없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왜 나는 이유를 알아야지만 아기를 용서할 수 있는 걸까. 내가 정말 사랑하는 아이인데, 이유를 알아야지만 그 울음과 짜증을 받아줄 수 있는 걸까. 이 아이를 온전히 품기에는 내 그릇이 너무 작은건 아닐까. 밀려오는 죄책감에 칭얼거리는 아이를 있는 힘껏 꽉 안아주었다.
육아를 하다 보면 꽤나 자주, 죄책감에 휩싸이게 된다. 아이의 배고픔 신호를 잘못 알았을 때, 의도치 않게 아이의 몸에 작은 생채기를 낼때.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할 때 자리에 없었을 때, 아이의 울음에 포옹이 아닌 화로 대응했을 때... 너무나도 어린 생명체라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조차 이해하기 버거워하는 아기에게 나는 짜증내고, 우는 이유를 설명해달라고 세상의 잣대를 들이댄다. 그런 나를 보며, 부모로서의 자격까지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과정이 결국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일임을 알게 되었다. 아기가 우는 이유를 모를 때는 모든 게 혼란스럽고, 그 울음이 나를 향한 원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제발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빌며 귀를 틀어막고 눈을 감는다. 동시에 아기가 우는 이유를 모르는 나를 자책하게 되고, 어쩔 수 없지 않았냐는 억울한 마음이 생긴다. 이유를 알게 되면, 이 혼란스러운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는다. 나 때문이 아니라는 그 단순한 사실 하나가 마음을 놓이게 한다. 그래, 상황이 이럴 수 밖에 없었구나. 그 순간에 나는 최선을 다 했어. 라고 생각하며 내 마음의 방향을 붙잡을 수 있게 된다. 이해란 아기를 위한 일이면서, 동시에 나 자신을 미움으로부터 구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