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무엇으로 자라는가

부부 독서토론 1번째 책 - 아이는 무엇으로 자라는가

by 조이버스


남편과 함께 책을 읽으며 토론을 시작한 지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우리에게 있어 많은 책을 읽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한 권을 읽더라도 진득하게, 함께 속도를 맞추면서 읽고, 인상 깊었던 문장을 토대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했다. 한 문장을 읽더라도 대화를 하며 느낀 점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같은 책을 읽으며 서로를 더 깊게 알아가고, 새로운 세상을 알아갔다. 이제는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우리 부부에게 있어서 정말 중요한 시간이자, 일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렇게 가꾼 자신만의 가치관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 자신만의 신념으로 구별된 삶을 사는 것. 우리에게는 정말 큰 즐거움이다.


부부가 함께 책을 읽기 시작한 계기는, 임신을 계획하면서부터였다. 우리에게 예비된 아이가 너무나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함께 시간을 가지기 전, 나는 아이를 왜 낳아야 하는지 스스로 깨닫기 위해 여러 책을 읽으며 남편과 이야기를 나눴다. 결과적으로 이에 대한 답변을 스스로 찾아내고, 남편과도 뜻이 일치한다는 것을 느꼈을 때, 나는 정말 감사했다. 우리에게 아이가 찾아올 미래가 경이롭게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이 아이가 만날 첫 번째 세상이 "우리"라니. 하지만 동시에 부모로서 큰 책임감을 느끼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우리가 너무나도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방비하게 그 두려움을 직면하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래서 성장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우리의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독서토론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책은 "아이는 무엇으로 자라는가"였다. 이 책으로 결정하게 된 이유는 특별하지 않다. 그저 교보문고를 거닐다가 접하게 된 책인데, 남편과 나 둘 다 이 책에 매력을 느껴 구매하게 되었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자존감이 정말 중요하구나" 정도였다. 하지만 책을 읽은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내가 독후감을 적는 이유는, 읽고 난 뒤 나의 삶이 정말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난 지금, 육아를 하면서도 이 책에서 배웠던 내용을 떠올리며 아이에게 더 바람직한 행동을 보였던 경험이 있다. 그 경험이 정말 즐겁고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책 리뷰를 적어보기로 결심했다.


IMG_0240.jpeg
IMG_0241.jpeg


아이는 무엇으로 자라는가, 버지니아 사티어.


걸음마 연습을 하는 아기는 내가 팔을 잡고 도와주려고 할 때마다 울면서 주저앉았다. 높게 든 팔이 아파서였다. 나는 자세를 고쳤다. 팔을 낮추며 손을 잡아주었고, 아기는 웃으면서 걸음마 연습을 했다.


아이는 무엇으로 자라는가. 누군가가 물었을 때, 나는 고민 없이 "부모의 사랑"이라고 답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랑이 무엇인가요?"라고 되묻는다면 쉽게 답할 수 없다. 사랑 자체가 너무나도 추상적인 단어이고, 나 또한 느낌으로만 남아있을 뿐, 자세히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가장 첫 장에 그 사랑은 아이에게 "자존감"을 키워주는 것이라 답변한다. 부모의 사랑을 통해 만들어지는 자존감.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부모의 노력이 필요하다. 부모가 주고 싶은 사랑이 아닌, 아이가 받고 싶은 사랑을 주는 방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책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부모님께도 말 못 한 나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꽁꽁 숨겨두었던 상처를 직면하게 도와주고, 치유시킨다.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주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자존감이 채워진 상태여야 한다. 부모님은 나를 사랑으로 키워주셨지만, 어린 시절 내가 받은 상처는 존재했고, 나의 자존감을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갉아먹었다. 이 상처는 내가 원하지 않을 때도 불쑥불쑥 그 존재를 드러냈고, 심지어 주변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요인이 되었다. 나는 이것이 나의 아이에게까지 대물림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원치 않았다. 나는 바뀌어야만 했다. 책을 읽어가며 나는 변화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 첫 번째 순서는 내면의 상처를 이해하고 상처받았던 나를 다독여 주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었다. 유독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계속 생각나는 일이 있다. 나는 그런 일들을 외면하지 않고 직면해 보기로 했다. 왜 그 사건이 계속 생각나는지, 내가 거기서 느낀 감정은 무엇인지. 혼자 정리한 뒤에는 남편과 대화를 했다. 남편은 대부분의 일에 대해 내가 느낀 감정이 당연한 감정이라며 공감해 주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당시 어리숙하던 나를 용서할 수 있었다. 부모님과 다투며 풀지 못하고 마음속에 담아두고만 있었던 일은, 부모님께 용기를 내어 이야기해 보았다. 이건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말하는 동안에도 몸이 경직됨을 느낄 정도였다. 감사하게도 나는 그 일에 대해 사과를 받을 수 있었다. 부모님이 더욱 존경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이런 과정을 꽤나 긴 기간 동안 반복하였다.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지만, 과거에 비해 자존감이 많이 회복됨을 느끼고 있다. 예전 보다 남들의 눈치를 덜 보고, 나의 의견을 전달함에 있어서 주저함이 사라졌다.


두 번째 순서는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다. 숱하게 많은 책에서 "입장을 바꿔서 상상해 보라"라는 말을 강조하듯이, 뻔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의외로 상상만으로는 아기의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게 쉽지 않았다. 고민하던 중, 이전에 아기와 함께 거실에 누워있다가 천장에서 내리쬐는 형광등 불빛이 굉장히 자극적이다는 것을 깨달았던 일이 떠올랐다. 아기와 같은 행동을 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그때와 동일한 방법으로 아기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기로 했다. 제일 먼저 거실 매트 위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민무늬의 하얀 천장이 날 무료하게 만들었다. 몸을 뒤집어 네발기기를 하며 복도로 향했다. 무릎이 조금 아팠지만, 가만히 누워있는 것보단 덜 심심했다. 눈높이도 아기와 비슷하게 낮춰보았다. 보일 듯 말 듯 선반 위에 올려진 물건들이 매력적이게 느껴졌다. 집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복도를 기어가는 건 꽤나 큰 용기가 필요했다. 가는 길에 화장실을 발견했다. 최근 청소를 해놓은 변기가 광을 내는 보석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렇게도 변기를 만졌던 거군.' 조금씩 아이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문득, 걸음마 연습을 도와주기 위해 손을 잡아 줄 때마다 짜증을 내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도움을 주는 건데 왜 우는 걸까 궁금했는데,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엄마의 키에 맞추기 위해 번쩍 들어 올려야만 했던 두 팔이 아팠던 것이다. 그 이후, 아기의 걸음마 연습을 도와주면서 나는 자세를 고쳐보았다. 나의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아이와 맞춘 뒤 팔을 내린 채로 아이의 손을 잡아줬다. 아기는 더 이상 짜증 내지 않고 걸음마 연습에 집중했다. 아이를 이해할 수 있게 되자, 화가 나는 빈도수가 줄어들었다. 오히려 아이에게 설명해주고 싶은 일들이 많아졌다. 아이가 짜증을 내어도 그 짜증이 무언가의 불편함으로부터 오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자,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아기가 받고 싶은 사랑은 이게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마지막으로는 우리가 추구하는 가족의 청사진을 그리는 것이다. 아이에게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일관성 있는 부모의 태도가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를 낳기 전에 남편과 함께 어떤 가족을 만들어가고 싶은지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하고, 아이를 낳고 난 이후에도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임신하기 전에는 어느 정도 두리뭉실한 그림만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난 뒤에야 이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는데, 가족의 문화를 계획한다는 게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이를 어떤 가정환경에서 키울 것인가.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너무나도 막연한 주제였다. 아들 하나 딸 하나 낳아서 행복하게 키우기 정도로만 이야기하고 깔깔 웃던 게 전부였다. 이를 우리 가정의 나침반으로 삼기에는 큰 무리가 있었다. 최대한 현실적으로 이 주제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우리 가족은 "삐뽀삐뽀 119"책을 중심으로 삼자고 이야기했다. (개인적으로는, "어떻게"가 아닌, 왜" 그렇게 육아를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하정훈/정유미 선생님이 정말 좋다. 이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풀어보겠다.) 신생아 때는 아이의 수면교육을 하면서, "아이의 울음"에 대해서 우리 가족이 대하는 자세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기준을 세웠다. 100일부터는 우리 가족의 식사 문화를 가르쳐주기 위해, 먹고 빈 그릇을 싱크대에 가져다 놓을 때까지 자리에 함께 하도록 했다. 그 이후, 아이가 돌이 가까워지는 지금도 우리가 약속한 가정의 문화는 꼭 지켜내려고 노력 중이다. 가끔은 어른인 나 조차도 귀찮은 마음에 대충 하고 싶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남편과 육아를 주제로 많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아이를 낳기 전보다 우리의 관계는 훨씬 돈독해졌다. 아이를 통해 부모가 성장한다는 말은 이런 과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제 서로의 강점과 약점을 더욱 잘 알게 되었고, 서로의 강점을 활용하여 육아를 하는 방법을 배웠다. 서로의 강점을 칭찬하며 약점이 드러날 때는 다독여주며 격려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러니 서로에 대한 감사함 마음이 끊이지 않는다. 아이를 낳고 나서, 나는 남편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아이는 자란다. 부모도 함께 자란다. 몇 년 뒤, 우리의 가족은 어떻게 변화해 있을까? 어떤 대화를 나누며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행복한 상상을 하며, 글을 마무리해 본다.



IMG_7889.jpeg




작가의 이전글애플워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