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첫 걸음마
아이를 낳은지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 아이는 쑥쑥 커서, 엄마품에 스스로 다가와 안길줄도 알고, 장난꾸러기가 되어 온 집안을 헤집어 놓으며 잡기놀이도 하고, 눈치를 보며 상황에 맞는 감정표현을 한다. 보호자인 나 또한 아이가 주는 행복과 동시에 책임감의 무게를 알게 되었고, 마냥 예뻐하며 볼과 배에 뽀뽀를 해주는 시간을 가지다가도,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엄하게 혼내는 법을 배웠다.
일년 전, 터질것 같은 빨간 얼굴의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향하던 날은 찬 바람이 부는 겨울이었다. 작년 겨울은 정말 혹독했다. 기다려주지 않는 아기의 울음에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그렇게 겨울, 봄, 여름, 가을 사계절이 흘러가고 다시 눈이 내리는 겨울이 찾아왔다. 이제는 내 삶과 아이의 삶이 구분되었고, 아이가 잠을 자는 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일년 전 내가 간절하게 바라던 규칙적인 일상이 생긴 것이다.
여유가 생기니 자연스럽게 내가 이루고자 했던 가족 목표가 떠올랐다. 딸 하나 아들 하나 낳아 남편과 넷이 오순도순 사는 것. 첫 아이가 동생에 대한 개념을 이해할 때쯤, 둘째를 가지는 것. 내가 어릴때부터 꿈꿔왔던 가족상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첫 아이가 벌써 엄마 아빠가 하는 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감을 깨달았다. 아, 아이에게 옴팡 사랑을 줄 수 있는 날도 이젠 얼마 안남았구나. 울컥, 여러 감정이 올라왔다. 감정을 추스리기 위해 눈을 감았다. 최근 아이와 함께하며 행복했던 순간이 눈앞에 스쳐지나갔다. 숟가락에 좋아하는 음식을 담아주면, 오물거리며 베싯거리며 웃던 일. 새로운 놀이를 할 때면 보여주는 호기심 많은 눈빛과 살짝 말려 올라가는 입꼬리. 가만히 앉아 놀다가도 이름을 부르면 활짝 웃으며 나를 향해 기어오던 모습. 가만히 있어도 그저 사랑스러운 나의 아이. 아이와 함께한 순간 순간이 그저 선물같고 감사했다.
그런 아이가 첫 걸음마를 떼었다. 신중한 성격이기에, 가만히 선채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발을 떼고 나아갔다. 그 씩씩한 모습을 보며 아이가 성장함을 느꼈다. 기쁜 마음에 아이를 꼭 안아주고 덩실덩실 춤을 췄다. 그러다가 갑자기, 정말 갑자기, 그동안 억눌러왔던 눈물이 터졌다. 둘째가 태어난다면, 이 예쁜 모습을 내가 놓칠 수도 있겠구나. 차라리 내 몸이 두개로 쪼개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직은 한없이 작은 아이의 품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흘렸다. 슬프다기에는 기뻤고, 기쁘다기에는 슬픈 오묘한 감정이었다. 내 머리칼을 만지는 아이의 손길과 옷에서 밴 포근한 분유 냄새가 나를 위로해주었다.
아아,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ㅡ.
여지껏 수많은 매체에서 봤던 뻔하디 뻔한 그 기쁨의 표현이 이제서야 가슴으로 이해되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생각을 정리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지금의 행복을 보낼 수 있어야, 다음에 또 다른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아이는 커가면서 부모가 완전하지 못한 존재라는 것을, 자신만을 영원히 바라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우려하는 부분도 아이는 커가면서 언젠가는 경험할 것이고, 부모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엄마로서 존재하지만, 동시에 OOO라는 이름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배울것이다. 그렇게 아이는 세상을 알아가고, 성장해나갈 것이다. 아이는 나의 아들로서 존재함과 동시에, OOO라는 이름을 가진 독립된 개체로서 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성장을 바라보는 것이 나의 기쁨이 될 것이다.
머리로는 정리 되었지만, 마음은 아직도 떨려왔다. 오늘만큼은 온전히 아이의 엄마로서 시간을 보내보려고 한다. 내 모든 관심과 사랑을 오로지 이 아이에게 줘보려고 한다. 내 품에 안겨 꼬물거리는 아이를 더 힘껏 안아주고, 지금 이 순간만 얻을 수 있는 행복에 옴팡 젖어들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