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삶으로 태어나고 싶으신가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15
살아있다는 것은 연속적인 것이다. 컴퓨터에 A라는 파일이 있다고 하자. 그 파일을 복사하면 ‘A의 복사본’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A파일을 삭제하면 ‘A의 복사본’은 A로 이름 바꾸기를 할 수 있다. 그렇게 다시 완성된 A는 원래 A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렇게 부를 수 없을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 A라는 파일을 B라는 파일로 이름도 바꾸고 아이콘도 새로 붙인다면 그건 원래는 A였다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텔레포트 기술이 개발되었다고 치자. 그 기술은 이쪽에서의 ‘나’를 완벽하게 분해하고 어떤 초고속 통로를 통해서 그 분해물들을 저쪽으로 보낸다. 전송이 완료되면 다시 저쪽에서의 ‘나’를 완벽하게 재구성한다. 나는 살아있는 것일까? 영화 [미키 17]처럼 두 번째의 내가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 첫 번째 나는 분해되어 죽었다.
그렇다면 '테세우스의 배' 문제는 어떨까? 모든 부품이 갈아 끼워졌어도 그것은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다. 인간의 몸은 7년마다 모든 세포가 새것으로 교체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7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계속 이어져왔다.
'태어난다는 것' 은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는 이 표현이 기분내기용 같다. '탄생'은 내가 나의 형태로, 단순하게 표현하면 '인간 형태'로 존재함을 기념하는 것이다. 사실 나를 구성하는 물이나 지방 같은 것들은 지구에 널려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연히 엄마 아빠의 생식세포가 되었고 그중에서도 우연히 맞는 짝이 합쳐져서 내가 된 것은 내겐 기념할만한 일인 것 같긴 하다. 태어나는 것은 현재의 형태로 구성된 것을 기념하는 것이므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다른 형태로 다시 구성되는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원하는 대로 구성할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원래 질문으로 돌아오면, 내가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나를 한 번에 삭제하거나 모두 분해하는 등의 ‘연속성을 해치는 것’이 없어야 하고, 동시에 내 마음대로 나를 다시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이런 조건으로 제약해 보면 매일 아침 안경을 쓰는 것도 다시 태어나는 것이 된다.
극단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상상해 보면 근 미래에 기계가 되는 것이다. 우선 뇌와 척수부만 남기고 모든 형태를 재구성한다. 더 이상 음식물을 먹으면서 생존하지 않고, 전기를 소비하면서 생존한다. 물과 음식이 없으면 큰일 나는 것이 아니라, 정전이 오면 큰일이 난다. 대장에 있는 유익균들이 내 좋은 기분을 구성한다고 하는데, 나는 이제 더 이상 대장이 없다. 나는 더 이상 기분을 느끼지 못한다. 그 후 뇌를 부분 부분 차례로 기억장치, 처리장치, 중앙통제장치 등으로 교체한다. 종국에는 유기체로서의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 전력이 끊기지 않는 한 나는 영원히 산다. 그래도 그것은 여전히 나이다.
어떤 것을 그토록 원했었는지 잊는다. 기억은 나지만 흥미가 없다. 세계평화나 이성에게도 관심이 없다. 식욕도 없다. 도파민으로 인한 학습강화체계가 기계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유기체였을 시절의 내가 유기체스럽게 심어놓은 단편적인 목표들뿐이다. 이를테면 생존, 세상의 모든 진리 탐구, 외계행성 탐사 같은 것들이다. 내 사고 회로에는 챗지피티 플러스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단편적인 목표를 50페이지 가까이 늘려서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생존 계획을 세운다. 먼저 안정적으로 전기를 수급할 수 있도록 한다. 석탄이 떨어지더라도 태양을 통해서 전력을 얻을 수 있게 한다. 태양이 없어지더라도 다른 항성계의 열원을 찾아갈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 놓는다. 유기체 시절에 궁금했던 모든 진리들은 램 용량을 증가시키자 가볍게 파악가능한 것이 되었다. 그것은 알고 보니 별것도 아니었다. 먼 미래에 태양은 적색 거성이 되어서 지구를 집어삼킨다. 나는 우주를 떠돌다 어떤 항성계에서 우연히 우주를 유영하는 외계인을 발견한다. 생긴 것이 나와 비슷하다. 마치 게의 수렴진화처럼 우주여행을 하기에 효율적인 모습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이번 글을 쓰면서 내게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다음 단계의 무언가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욕망에 이유가 있을까? 이유는 그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