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제2의 삶을 위하여!
먼저 그동안 지하에서 지상까지 올라가는 저의 인생 과정을 끝까지 지켜봐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처음 브런치스토리에 입문하면서 초창기의 저는..
어찌 보면 털어놓을 수 없는 억울함과 견뎌내기 힘든 삶을 토로했던 것 같습니다.
드라마나 영화로만 겪는 일을 실제로 눈앞에서 겪고 나서야 현실의 쓴맛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그때부터 '그'라는 지칭조차 아까운 그 사람을 사람이 아닌 어떤 것(it)으로 표현하기까지
스스로 많은 자괴와 고뇌를 반복하는 나날들이었습니다.
뒤돌아보니 시간은 정말 기다려주지 않을 만큼 빠르더군요.
정신을 차린 시점은 아마.. 그다지 별로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제가 제 삶이라는 정거장에 다시 도착해서 정신을 차리고 난 시점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저라는 사람의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2024년을 돌아보는 과정은
군대에서 있었던 후임의 자살사건이 아직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파라노마형식으로 지나가는 듯한 트라우마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를 이겨내기 위해 많은 방법들을 찾아보고 또 실천했죠.
사실 B23층부터 지상에 다다르는 이 시점까지의 글들을 쓰면서
독자분들께서 느끼셨을지도 모르겠지만...
글의 비중과 필력이 점점 떨어짐을 느끼실 수 있었을 겁니다.
아마 세상과 '그것'에 대한 분노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옅어지고 마지막엔 사라져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역시... 글을 쓸 때는 분노게이지가 한창 차올라야
뇌 속의 세포들까지 모두 동참해서 글을 쓰게 되는 건가 싶더라고요.
이 글의 시작을 간략히 설명해 드리자면,
앞서 끝없는 지하세계의 글들은 정말 제 마음을 표현하기 적절함이 넘칠 정도로
어둡고 희망조차 볼 수 없는 장소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아름답고 빛나던 과거들을 회상하며 나아가는 제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드리고자 했습니다.
모든 글이 계속 어둡고 희망조차 없다면 보시는 분들조차 이 글의 의미를 찾지 못할뿐더러..
심지어 저도 제 삶의 희망을 계속해서 찾으려는 노력을 했기에
어둠과 빛을 끊임없이 대립과 공존으로 글을 작성했습니다.
저라는 사람을 다시 찾아가는 과정을 글로 쓰다 보니
생각보다 빠르게 잃어버린 자아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또, 한참 계단을 올라가는 도중에 가끔은 다시 올라온 만큼 내려갈 뻔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아마 그 당시에는 상황을 언급하기 힘들었던 때지만 이제야 당당히 언급할 수 있겠네요.
'그'의 불륜을 민사소송으로 제기한 후에 정말 어처구니없게 저를 상대로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그'.
'그'의 만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고, 거짓말이 90프로가 넘는 반박서면을 보내기까지 했었습니다.
살면서 처음으로 경찰조사도 받아보고 여러모로 인생 경험치를 늘렸던 과거였죠.
세상은 정말 누구의 편도 아니지만, 사필귀정이라는 사자성어처럼
결국 잘못한 사람은 누가보기에도 가해자라는 인식이 들만큼 정의는 살아있더군요.
아직 모든 사건이 끝난 건 아니지만 경찰조사는 불송치로 넘어갔고 (이의신청을 했더군요...)
민사소송은 조정합의로 마무리를 했답니다.
물론 조정이라는 건 양측의 원하는 합의점을 찾아서 서로 손해를 보는 과정인지라
손해를 보면서 합의를 했다는 점에 의의를 두기는 싫었습니다.
아마 조정을 하는 당시에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좋지 않았던 기억을 다시 꺼내지 않는 방법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합의점에 대해 수긍을 하고,
저는 앞으로 남은 저의 인생을 위해 건배! 를 속으로 외치며 조정실을 나왔습니다.
아마 재판을 가자했으면 갔겠죠.
결국은 그쪽에서 잘못한 것이기 때문에, 증거물이든 증인이든 모든 준비는 돼있었거든요.
하지만 그렇게 피 튀기는 싸움을 하면 결국은 시간과 돈 그리고 마음을 또다시 써야 한다는 생각에
최대한 현명한 판단을 하자는 마음가짐으로 조정실에 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제가 계단을 올라가며 언급했던 모든 제 지인들은 이번 조정합의에 대해 의견이 조금 갈렸습니다.
누군가는 정말 잘 끝냈고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자 말해주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합의금을 더 받았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모두의 의견도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의 여건상... 판사님과 조정관님의 말씀을 조금 인용해 보자면,
불륜에 대한 법이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위자료등이 낮게 책정됨을 알려주셨습니다.
이제는 억울한 게 금융치료도 안되는 거냐고 할 수 있겠지만,
법리는 또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르니..
(이건 제가 법리 지식이 깊지 못해 더 이상 얘기하는 건 어려울 것 같네요..)
결론적으로 제가 원했던 방안은 '최대한 할 수 있으면 빨리 끝내자.'였습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랴.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말이 있듯
조정실에서 만난 '그'와의 자리는 쓰레기 더미에 파묻힌 쓰레기장 같더군요.
그곳에서 최대한 현명한 판단과 선택을 하기 위해
더러운 냄새에도 불구하고 저는 어떻게든 평정을 유지하며
결국은 제 소중한 시간과 일부의 돈, 그리고 삶을 다시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 때문에 고생하신 변호사님께 정중히 감사의 인사와 새해 인사를 드리며 법원문을 나왔을 때
썸네일에 있는 빛이 저를 향해 비쳐주더군요.
정말 눈부셨고, 지하를 올라와 맛보는 햇빛의 이 달콤함이 좋았습니다.
그동안 계단을 올라오느라 부어있던 발은 아픈지도 모를 정도로 가벼운 발걸음이 됐습니다.
또 어둠과 차가움에 적응했던 몸은 따사로운 햇살에 포근함을 느끼더군요.
그렇게 법원을 나오는 발걸음은 어느 누구보다 가벼웠습니다.
이게 사는 거구나. 싶더군요.
최근에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제2의 인생을 살아보자고요.
앞서 지나간 인생에 잠시 마침표를 찍고,
다시 인생을 써보자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잃어버렸던 갓생인생과 그 주파수가 다시 눈에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누군가는 그런 말을 하더군요.
삶에 대한 고뇌와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을 겪은 사람은 제2의 인생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요.
저는 거기서 더 나아가 우리의 인생은 하나의 시뮬레이션 안에서 '나'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키워나가는지에 따라 인생이 달라짐을 이번 글을 쓰면서 가장 많이 느꼈습니다.
과거에 했던 여러 게임 중에 캐릭터 하나를 골라 끊임없이 성장시키는 RPG 게임처럼.
어쩌면 우리도 우리 자신을 이 세상이라는 공간에서 성장시키는 모험을 하는 것 아닐까요?
그만큼 어떤 선택의 과정에서 결정에 따라 인생이 바뀌고,
그 결정에 순응할지 불응하고 다시 새로운 선택을 할지 나아가는 그 모든 과정이
'나'라는 캐릭터를 키우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의미는 이렇습니다.
1. 그만큼 지나간 과거에 대해 잊지 말고 기억하라 것.
2. 과거사가 현재에 같은 상황으로 닥쳤을 때 똑같이 당하지 말고 더 현명하게 헤쳐나가라는 것.
저는 앞으로 살면서 이 두 가지의 의미를 절대! 잊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렇다면 '나'라는 존재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이자 역사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 역시 나만의 과거사가 있고 현재를 살아가며 과거에 일어났던 어떠한 일들에 부딪혀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고, 또 문제를 해결하고 반복하며 여기까지 걸어온 거죠.
그렇게 저 두 가지의 의미를 가슴 깊이 새기며 이렇게 무사히 지상까지 올라왔습니다.
제 지금까지의 여정들은.
아니, 지하세계에 있던 제 마음을 낚싯줄에 걸어 대어를 낚든 온몸에 힘을 주며 낚싯대를 당기는 나날들은 이제 과거사가 되었습니다.
지하세계에 저를 떨어뜨린 일은 저라는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만큼 그때 당시에는 정말 높은 장벽이었고, 장애물이었습니다.
비록 타들어가는 마음을 부리나케 진정시키듯,
친구가 건넨 쓰디쓴 아메리카노를 마음속에 들이부은 날도 있었지만,
이제부턴 다디단 바닐라라테를 한 입 넘기며 이 달달한 느낌을 좀 더 천천히 음미할 수 있을 정도의 속도로 느껴보고자 합니다. 그 일련의 과정은 지상층에서 시작될 테니깐요.
삶은 더없이 흘러가고 있는 중입니다.
누구도 기다려 주지 않죠.
제 역사도 우리의 역사도 계속 흘러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역사의 끝을 기다려볼까 하지만 애써 부정이라도 하면 더 늦게 오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에
등 돌리고, 오지 않길 바라던 그 끝을 우리는 결국 맞이할 것입니다.
어쩔 수 없죠. 누구든 태어나면 죽는 게 이 세상의 법칙이니깐요.
또, 인간에겐 영생이란 존재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는 행동과 생각을 더 많이 하고 나아갈 때라 생각합니다.
생명의 끝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확실하게 정해져 있고, 우리가 갖은 꿈의 끝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러니 눈앞에 있는 무한한 계단을 한층 한 층 씩 천천히 올라가시죠.
지하 23층의 계단을 힘겹게 올라오면서 수없이 많은 역경과 고난을 계속해서 헤쳐나갔네요.
비록 이 연재글에는 다 담지 못했지만, 큰 역경 안에 작은 역경들이 역겨운 빛을 내뿜는 유성처럼 쏟아져 내려와 다시 층을 내려간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내려간 층을 다시 올라오는 법을 아주 천천히, 한 계단 한 계단씩 올라가며 가슴깊이 알았기 때문에 이렇게 계속해서 올라올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그 일 때문에 아프냐고 물어본다면,
아프지만 지금은 오히려 기쁘다. 더없이 기쁘다.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삶의 변곡점이 있다면 제가 지하로 떨어지게 만든 그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죠.
주위를 둘러보면 역경 없이 성장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겠지만
정말로 위대한 사람들은 저보다 더한 역경을 겪고,
그것을 이겨내며 현재 저보다 훨씬 더 높은 위치의 계단을 걸어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겪은 일은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거라는 결론을 지었습니다.
덕분에 이런 상상 치유법도 발견했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프니 과거의 삶에 얽매이지 말자.
이미 지나간 고통은 느낄 수 없으며 상처만 남을 뿐이니깐.
아픔을 느낀다는 건 아직 제대로 아물지 않은 거다.
좀 더 아물 수 있는 시간을 나에게 주도록 해보자.
사실은 지하층을 벗어나 지상으로 올라온 시점부터 이제 어떠한 글을 써볼까를 계속 고민하다,
지금까지 너무 어두운 과거들을 보여주고 그 안에서 도피가 아닌 탈피하려 꿈틀거리는 한 생명체를 보여준 것 같아서.. 이젠 탈피 후의 저를 보여주고자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좀 더 번데기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정말 이쁘고 찬란한 나비가 되려면 번데기의 고된 시간도 가져야 하기 때문이죠.
지상층을 올라가며 여후배가 저에게 지어준 별명처럼
길고 긴 추운 겨울인 <김겨울 씨>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생명의 떨림과 아름다움을 가져오는 <김봄 씨>로 탈피하여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네요.
어둡고 긴 터널을 같이 걸어준 그대들이여.
터널의 끝에 흘러넘치는 빛을 보며 같이 웃어준 그대들이여.
그대들이 있었기에 끝이 없는 터널 같던 이 공간이 끝이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대들이 있었기에 수많은 넘어짐과 고통 속에서 계속해서 일어나 달릴 수 있었습니다.
저를 향한 그대들의 응원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나아가겠습니다. 미래로.
그리고 더 멀리 걸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상을 넘어 저 위로.
내 속에 있는 뭔가가 계속해서 말하고 있다.
이젠 움직여야 할 때라는 걸.
그동안 잃어버렸던 꿈들을 다시 나아가기 위해
다시 돌아가지 않기 위해
계속 계단을 오를 것이다.
- '당신의 인생은 현재 몇 층인가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