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게 뭐 어때?

B1층. 삶을 미루는 게 아니라 잠시 멈추는 거야.

by 대현

멀지 않은 과거에 폭풍 속을 걸었다.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비가 내리치고

더 이상 앞으로 못 가도록 맞바람이 불어오는 느낌이었다.

지하세계는 그런 곳이었다



당신의 인생을 현재 몇 층인가요?

를 물어보는 이 물음에 나의 대답은 이랬다.

"계속해서 지하층입니다."

나는 이렇게밖에 답변할 수 없었다.

그만큼 근 반년은 삶을 버티는데 집중했다.

버티지 못하면 더 멀고 더 깊은 지하로 내려갈 것 같았으니깐.

그렇게 계단을 오르내리며 나는 나만의 보호막을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지하로 떨어지면서 갖고 있던 세상에 대한 보호막이 다 깨졌던 것 같다.

그렇게 세상에 대한 저항과 불미스러운 일들을 맨몸으로 살갗에 지지며 다녔던 지난날들이었다.

지난 과거에서 내가 잘못한 건 단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선택에 대한 잘못'이었다.

그 선택을 하고 결정하기까지 생각해 보면 수많은 경고가 계속해서 누적되었다는 것.

내 가치관에 위배되는 상황을 계속 겪어왔다는 것.

신이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와 경고성 멘트를 계속 날렸다는 것.

두 번째는 '세상을 미워했던 잘못'이었다.

처음에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왜 나한테만 이러는 걸까?'라는 마음으로

세상을 미워하기 시작했더랬다.


하지만 결과는 이미 벌어진 일이고 후회는 현재와 미래를 바꿀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과거를 반면교사 삼아서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벌써 반년이 지나간다.

이 브런치스토리를 알게 되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도

나는 수없이 많은 감정을 이곳에 태우고 날려버리려고 노력했다.

어쩌면 계단을 오르내리는 중간중간에서도 '이 연재를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계속해서 내 머릿속에 스쳤다.

올라갔던 계단을 다시 미끄러져 내려가는 날에는 오히려 더 글을 쓰고 싶었고,

다시 계단을 오르는 과정에서는 글을 쓰기 싫은 날이 더 많았다.

맞다.

이 계단을 힘겹게 올라 지상에 점점 다다르는 이 순간조차 글을 쓰는 게 버거웠다.

나는 글을 쓰면서 글을 쓰는 시간 동안 '정리'를 한다.

내 머릿속에 안 좋은 것들을 삭제하고.

좋았던 기억들을 이 글에 담는다.

때론 좋지 않았던 기억이 올라와 글에 담길 때면

반짝이는 검은 커서를 멀뚱히 보다가

이내 모든 내용을 다 지워버린 날도 있었다.

그만큼 글을 쓰는 과정은 정말 버거웠다.

삶의 원동력을 한 번 끊기고 나서부터는 어떤 일을 시작하는데 망설임이 생겼다.

망설임은 귀찮음과 연계되고 그렇게 가만히 있는 나날이 많아졌다.


이 사실을 B6층에서 만났던 길을 잃은 여후배에게 말했다.

일종의 고민상담이랄까.

'요새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던 과거의 모습이 사라졌다.'

라는 나의 고민에 여후배는 이렇게 말해줬다.

작년에 너무 힘내서, 열심히 살아서 쉴 시간이 필요한 걸지도 몰라.

번아웃이 온 거지.

하지만 의외로 좋은 현상이야. 지금 상황이 그만큼 평온하다는 뜻이니깐.

더 무엇을 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괜찮다고 느껴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질 때가 있어.

그래도 언젠가 놀고 싶을 때 놀아줄 테니깐 말만 해 놀아드림!

길을 잃은 후배는 현재 길을 다시 찾았다고 연락을 전해줬다.

오히려 한층 더 씩씩하고 두려움이 사라진 상태로 말이다.

그러면서 이렇데 덧붙였다.


적당한 휴식을 취할 때가 온 거야.

그냥 아무것도 안 하면서 약간의 죄책감(?)도 느끼면서 말이야.

나는 아무것도 안 해. 이러면서 쉬어.


이 말을 들으니 더 위로가 되긴 했다.

뭔가를 하려고 할 때마다 보이지 않는 장벽에 막히는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이 글을 연재하면서 했던 목표를 이뤄나가는 모습을 나와 독자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지하에 떨어진 이 삶을 다시 지상으로 올리겠다는 다짐말이다.

그렇게 맨몸으로 한층 한층 올라가며 벌써 B1층에 올라왔다.

이곳은 더 이상 어두컴컴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밝지도 않다.

하지만 온몸의 육감이 인지하고 있다.

여기 보이는 이 계단을 오르면 뭔가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 같다는 느낌을 말이다.


그리고 내가 여기까지 올라오면서 본 많은 꿀벌들도 말해주었다.

이곳만 오르면 이제 다른 세계라고...

그들과 함께했던 지난날들이 이 계단들을 올라오는데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었는지를.

꽃밭으로 나를 이끌어주었는지를.

마침내 이 세상이 밉지 않고 적당히 아름다운 세상임을.

깨닫게 해 줬음을 말이다.


많은 날을 걸어 올라가며 드디어 목표가 거의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목표를 다 이룬다고 다음이 없는 건 아니다.

휴식을 권했던 후배도 ‘적당히’ 쉬라고만 했지 ‘쭉’ 쉬라고는 하지 않았다.

이제 그동안 미뤄두었던 목표들을 다시 꺼낼 때가 슬슬 오고 있다.

그게 바로 지금이라는 걸 강하게 느끼고 있다.




이 글의 연재를 다음 주에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지상까지 올라가기 위해 했던 모든 노력들을 이 작품에 담을 수 있어서

다음주가 더 기대가 되는 하루입니다.


이 글을 시작으로 작가가 되보겠다는 꿈을 더 크게 가져보겠습니다.

자유로운 주제로 글을 쓰는 이 공간에서

비록 자기 연민과 회포를 푸는 글로 저의 글을 시작했지만

암울한 상황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드리고자 노력했던 나날들입니다.

마지막화까지 지치지 않고 달려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최근에 '겉표지가 눈에 띄는 책을 좋아하는' 습관에 우연히 사서 보게 된

황보름 작가님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읽으며

그곳에 나온 명언으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현재에 산다는 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그 행위에 온 마음을 다해 집중한다는 걸 말해요.

한 번에 한 가지에만 집중하기. 과거, 미래는 잊고요. -p.279



이전 24화우애 깊은 형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