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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현 Jul 21. 2024

4화.인생은 허들 경주

우리가 넘지 못 할 장애물은 없다.

“당신의 주변에는 어른스러운 사람이 몇이나 있는가?”


어른스럽다.


‘어른스럽다’는 말의 뜻은 무엇일까?

[나이는 어리지만 어른 같은 데가 있다.]


그러면 ‘어른’의 뜻은 무엇일까?

[다 성장한 사람이나 사회에 나가서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과연 나이만 먹는다고 해서 다 어른이 되는 걸까?

독립을 하면 어른일까? 돈을 벌어오면 어른일까? 어떤 책임을 져야하는가?


어릴 때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어른이 되려 했었는지 잠시 돌아보자.

1.아빠가 몰던 차를 나도 몰아보기 위해?

(20살 되자마자 면허증을 받았지만 곧바로 집 어딘가 장롱으로 직행했다. 다행히 회사를 다니면서 면허증은 다시 빛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2. 술을 먹기위해?

(술을 먹기전까진 궁금했지만 몸에서 술을 전혀 받질 않으니 패스)

3.독립을 하기위해?

(고시원을 살아본 결과 집을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걸 100만번 아니 1000000만번 느꼈다.)

4.돈을 벌어오기 위해?


그때 당시에는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들이 꼭 나이가 들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라 그랬을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앞서 한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렇다.

‘내 주위에는 n명의 어른스러운 사람들이 있다.’

나이에 상관없이 생각과 행동, 대화 등 모든 면에서 어른스러운 사람들 말이다.

한 친구를 소개 해보자면.

이 친구는 나의 가장 친한 대학교 동기들 중 한명이다.

이 친구는 대학교 때 내가 가장 닮고 싶던 친구 중 하나였다.

대학교 1학년 때. 모두가 패션의 ‘F’자도 몰라 멋대로 해석한 나머지 난해한 패션으로 봄날의 캠퍼스에 구름을 그리던 시절. 우리와는 반대로 그 친구는 자신만의 패션으로 멋을 낼 줄 아는 친구였다.

심지어 집에서 막내인데도 불구하고 항상 모든 갈등에 앞장서 해결을 했고 말을 가려서 할 줄 알던 친구였다.


나의 가정이 사라진 후 내 나름대로 기준을 올바르게 잡지 못하고 있을 무렵.

이런 위기에서 조언을 얻기 위해 가족 다음으로 가장 먼저 찾았던 것도 이 친구였다.

전화 통화를 하자 친구는 퇴근 후 자다가 일어난 상태였다.

아직 잠이 안 깬다며 하품을 하던 친구에게 내가 말했다.

“그 잠 내가 1초만에 깨워줄게!”

친구는 의아해했고 곧바로 핸드폰 넘어 슬리퍼를 끌며 집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1화의 첫 문장인 ‘ㅁㅁㅁ가 ㅁㅁ를 했다.’를 말해주자 친구는 언제 그랬냐는 듯 헛웃음을 하며 잠이 확 달아났다고 얘기했다.

심각한 문장인데도 불구하고 우리 둘은 웃음이 나왔다.

거짓말하지 말라며 한 번 더 확인한 친구는 그제서야 진지모드로 돌아왔다.

친구는 확실히 달랐다. 모든 상황을 들은 후 예리하게 관찰하고 대답을 해줬다.

예상치 못한 충고들은 오히려 내 머리에 엉켜버린 회로를 뻥 뚫리게 해줬다.

친구는 자신이 감성적이지 않아 공감을 못 해주고 오히려 이성적인 판단만 내린 것 같다며 미안해했다.

마무리까지 완벽한 친구다.


나는 이 친구와 대화를 나누면 항상 어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친구에 비해 내가 덜 이성적이라 그런걸까?

내가 생각지도 못한 걸 말해주는 걸 보면 그 친구가 더욱 어른스럽게 느껴졌다.

나보다 키가 훨씬 큰 친구지만 이런 진지한 대화를 하다보면 더 크게 보였다.






최근에 친구에게 한 소식이 들려왔다.

정말 간절히 준비했던 것이 기대와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고 했다.

그 뒤 누구보다 밝던 친구의 존재가 갑자기 사라질 정도로 부쩍 말이 없어졌다.

나는 친구에게 위로를 해보려 했지만 내가 더 힘든 거 안다며 나를 챙기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상심이 매우 큰 친구에게 나는 어른스러운 대답을 해주질 못해 많이 아쉬웠다.          

그 친구는 잠시 휴식이 필요하다 했다.

아마 좀 쉬고나면 다시 괜찮아졌다고 말해 줄 것이다.

어른스러운 친구이기에 더욱 그렇게 믿고 싶다.


누군가는 사람의 삶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42.195km. 숫자로만 봐도 엄청난 거리다.

보이지 않는 결승점을 위해 시작지점부터 천천히 빌드업하고 자기 자신과 싸우며 버텨야 하는 경주다.

물론 긴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나와의 싸움을 하며 나아간다는 점에서 비유가 찰떡이긴 하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인생은 <허들 경주>가 아닐까.

허들 경주를 떠올려보면...

지정된 위치마다 일정한 간격으로 놓인 허들을 넘어 결승선을 통과하는 경기다.

허들을 인생에서 오게 될 고난과 역경이라 여겼을 때.

우리들은 이 허들을 넘어 다음 허들로 달려가기도 하고

때로는 허들을 제대로 넘지못해 걸려 넘어지기도 할테다.

아니면 절망적이게도 허들을 넘지 못한다고 판단해서 그 자리에 멈춰버릴 수 있다.

하지만 남들은 허들을 넘어가든 쓰러뜨리면서 가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서 뛰고 있는데

혼자만 멈춰있다면 흐르는 시간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나와 그 친구도 현재 각자에게 가장 높은 허들을 넘다가 넘어졌다.

큰 부상이 왔을수도 있고 멘탈이 부서져 경기를 계속 할 수 있을지 걱정도 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경기가 그렇듯 아무도 도와줄 수 없고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

다만 간접적인 도움이 있다면 경기장 밖에서 외치는 나를 향한 응원뿐.

다시 일어나 수많은 허들을 힘겹게 넘으며 결승선을 통과할 때 그때의 기분은 얼마나 짜릿할까.

그리고 뒤돌아보면 정말로 내게는 키보다 높아 보이던 그 허들이 사실은 내 허리 밑에 와 있는 허들이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얼마나 허탈하고 웃음만 나올까.


그 친구에게 말해주고 싶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뛰어보자.
넘다보면 우리만의 결승선에 도달해 있을거야.
각자 결승선을 넘는 속도와 시간은 다르지만 어떻게든 도달하면 돼.


라고 말해주고 싶다.





집에 가는 길. 좀더 얘기하자며 친구가 사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의 첫 맛은 매우 썼다.



동기의 결혼식에 만나서도 어깨동무를 하며 등을 토닥여 주던 그 친구.

다 털어내고 차갑게 대응하라며 집 가는 길에 카페에 들러 얼음 가득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줬다.

사실 나는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않지만 이제는 마시기로 했다.

인생에 너무 단맛만 마셨던 것 같다.

이제는 쓴맛도 좀 알아보려 한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다보니 처음에는 엄청 쓰다가 시간이 지나자 점차 달아졌다.


내 인생도 쓰디쓴 삶 속에서 점점 달아져 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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