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가 다녀온 양희은 콘서트

다시 만나고 싶은 뜻밖의 선물 #양희은 콘서트

by 구모양

양희은 선생님 공연에 엄마랑 함께 갔다. 공연장 근처에 주차를 하고 내리자 우리와 같은 공연을 보러 온 듯한 엄마 또래 아줌마 아저씨들이 잔뜩 움직이고 있었다. '와 내가 이 아줌마 아저씨들이 보는 공연을 보러 왔구나.' 그제야 내가 내 나이에 맞지 않는 콘서트에 왔다는 게 실감 났다. 놀라울 만큼 내 또래는 보이지 않았다. 미운 오리 새끼가 된 것 마냥 이곳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닌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잠시 그 어색함을 견뎌내니 공연이 시작됐다.


양희은 선생님의 목소리가 울리자 공연장의 찬 공기 위에 포근함이 번져갔다. 나는 곧장 어색함을 잊고 공연에 집중했다.


(주의! 아래 내용에는 공연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내생에 가장 아름다운 말 그대


담담하게 노래하는 양희은 선생님의 무대 뒤로 영상이 더해졌다. 느린 템포의 흑백 영상위에 흐르는 가사를 찬찬히 따라 읽었다. '내생에 가장 아름 다운 말, 그대'라는 부분에서 심장이 멈칫하고 말았다. 먹먹하고도 고운 가사. 한 소절 한 소절 사이 여백마저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노래가 끝나고 난 후, 선생님은 '이 노래는 장미여관 육중완이 지은 곡이에요.'라고 곡을 소개하며 육중완씨가 참 눈빛이 맑은 사람이라고 하셨다. 맞춤법은 많이 틀리지만 참 맑은 사람이라고. 맞춤법을 틀린단 말에서 찔끔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가사를 다시 되뇌어 봤다. 감탄스러웠다. 어려운 단어라곤 하나도 없지만, 끝나고 나서 까지 짙은 여운이 남는 가사. 맑고 고운 가사가 담긴 곡이라 마음에 들었다.


믿지 않으시겠지만,
무대공포증이 있어서 앉아서 시작해요.


선생님은 무대공포증을 고백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공연 초반에는 떨리는 속을 진정시키기 위해 의자에 앉아서 노래한다는 양희은 선생님. 든든한 세션들과 함께 마주 보며 연습할 때는 전혀 무서울 게 없는데 관객들을 바라보고 서면 떨린다고 했다. 정말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런 선생님의 무대공포증 고백이 '가수 양희은이 여전히 노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 빛나게 해 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양희은 선생님이 데뷔 48년 차 가수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대공포증이 있다는 건, 무대를 대강대강 대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테니 말이다. 노래를 대충 한다면 두려울 것도 없을 텐데. 무대를 별거 아닌 것으로 치부한다면 공포스러운 것도 떨릴 것도 없을 텐데. 선생님은 그런 분이 아닌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존경심이 솟구쳤다.


제가 이 돈을 받으면
오만 원짜리 가수가 되는 거잖아요.


공연 중 선생님은 자신이 처음으로 앨범 녹음을 하던 때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첫 녹음을 한 후, 기획사 사장님께서 쥐어준 돈이 오만 원이었다고 하며 그 돈을 거절하고 돌아온 때를 회상했다. (당시는 대학 등록금이 칠천 원이던 시절이라고 하니, 오만 원은 대학생에게 거절하기 힘든 큰 액수였겠거니 넘겨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무려 48년 전 신인가수 '양희은'의 당돌함에 놀랐다. 선생님은 가벼운 마음으로 노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선생님은 자본의 논리로 노래를 취급하지 않는 분이셨구나 싶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래 왔고, 지금까지도 한결같다.


어쩌면 그런 선생님의 면모가 지금까지 우리가 가수 '양희은'의 노래를 사랑하게 된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오래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지 않은가. 오래도록 노래하면서 사랑받고 있는 선생님의 무기가 독보적인 목소리 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노래하는 마음, 그리고 가수라는 직업을 대하는 태도. 그 에티튜드에서 가왕의 품격이 느껴졌다. 이 품격 있는 태도야말로 선생님이 롱런하게 된 비결이 아닐까 속으로 짐작해봤다.


엄마가 딸에게


공연 중반부 즈음에 교복을 입은 예쁜 학생이 게스트로 올라왔다. 선생님과 함께 <엄마가 딸에게>를 노래한 원곡 가수라고 한다. 선생님은 남들이 쉽게 떠올리는 방식대로 일하는 걸 싫어한다고 한다. 유명가수의 피처링을 쓰지 않고 중학생과 노래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음악을 대하는 선생님의 진솔한 마음이 보였다. 두 사람의 노래가 시작되고, 뮤직비디오가 재생됐다. 엄마는 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딸은 엄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노래. 우리 모녀는 노래가 흐르는 시간 내내 그저 가만히 무대를 응시했다. 나도 엄마도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겼다.


곡이 끝나고 나서, 엄마도 엄마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슴속을 뒤져 할 말을 찾았다는 <엄마가 딸에게>의 가사를 옮겨 적어 내가 엄마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엄마, 엄마의 삶을 살아요.'



제 아버지는 제가 11살 때 돌아가셨어요.
당시 나이 서른셋. 맙소사.


<하얀 목련>이란 곡을 소개하며 선생님은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길 했다. 선생님이 서른세 살이 되던 해에 먼저 떠난 아버지를 생각하며 쓴 노래라고 했다. 본인이 서른세 살이 되어보니 그 나이가 얼마나 어린 나이인지 알겠더라며, 그 어린 나이에 딸 셋을 두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추억하는 마음을 담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꾸역꾸역 눌러 담은 그리움이 그려져서인지 노래가 더 쓸쓸하게 들렸다.


지금까지는 봄철마다 생각나는 노래라 하면 '벚꽃엔딩'을 떠올렸는데 이제 '하얀 목련'이 생각날 것 같다. 이른 봄을 알리는 하얀 목련. 제일 먼저 꽃 피우고 가장 빨리 지는 목련꽃이 떨어질 때면 왈칵 울음이 날 것만 같다.



오프닝부터 감동하면 안 되는 줄 알지만, 처음 두 곡을 듣는 순간부터 공연 내내 생각했다. '이 공연 너무 좋다.'


사실 나는 이전까지 양희은 선생님에 대해 자세히 몰랐다. 그냥 엄마가 좋아하는 가수 정도로만 알고 있었고 대표적인 곡이 무엇인지 정도만 알고 있었다. 어떻게 데뷔를 하고 활동해 오셨는지 몰랐다. 그래서일까. 모든 곡 소개와 토크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모두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곡에 담긴 배경을 알고 나니 더 재밌었다. 알고 있던 노래도 신선한 기분으로 들었고, 모르던 노래는 더 듣고 싶어 안달 나는 기분으로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난 양희은 선생님의 팬이 되었다.


엄마를 위한답시고 따라간 공연에서 엄마보다 내가 더 만족하고 돌아왔다. 다음에 또 공연을 한다면 그때 다시 엄마랑 손잡고 보러 가고 싶다. 그땐 엄마가 좋아하는 가수 공연에 내가 따라가는 그림이 아니라 딸이 좋아하는 가수 공연에 엄마가 함께 가는 그림으로 변해있겠지만. 엄마와 같이 노래를 듣고 함께 좋아할 수 있어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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