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바뀐다면

영화 #뷰티 인사이드

by 구모양

영화 <뷰티 인사이드>의 우진은 매일 아침 다른 사람이 된다. 자고 일어나면 겉모습이 변하는 우진. 어떤 날은 여자였다가, 어떤 날은 할아버지였다가, 어떤 날은 어린아이가 된다. 친구들이 대학생이 되고, 연애를 시작하는 사이. 우진은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낯선 얼굴로 살아가야 한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아무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우진은 세상 밖 혼자가 된다. 매일 다른 외모로, 외로운 작업실에서 가구를 제작하는 가구 디자이너가 된다. 세상과 적당한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매일 다른 모습이 되는 일상에 익숙해질 무렵, 우진은 계속 사랑하고 싶은 여자 이수를 만난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처럼 얘기를 나누고 한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는 꿈을 꾼다.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괜찮겠어?


마침내 용기를 낸 우진. 그는 이수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동시에, 자신이 매일 아침 다른 사람의 모습이 된다는 진실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자신의 비밀을 알게 된 이수에게 묻는다.

“내일 아침.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괜찮겠어?”


작품은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사랑해줄래?”라고 묻지 않고 “괜찮겠어?”라고 묻는다. 오히려, 이수가 스스로를 살피게 만든다.


그 사람은 제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요.


두 사람은 열심히 사랑한다. 매일 다른 모습으로 매일 다른 데이트를 즐기며 그렇게. 더 깊은 대화를 나누고 더 많은 추억을 쌓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수의 속은 복잡해진다. 이수는 사랑하는 사람 우진을 알아보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감당하기 힘들어한다. 약을 먹고 상담을 받고.. 끙끙 앓는다. 그렇게 상처투성이인 정신으로 버티면서 힘겹게 우진과의 관계를 지속한다. ‘그 사람은 제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요.’라면서. 꾸역꾸역 버틴다.


우리 헤어지자. 그게 좋을 것 같아.


우진이 먼저 이수를 놓아준다. “우리 헤어지자. 그게 좋을 것 같아. (…) 감기 들겠다. 얼른 들어가.” 라며 힘들어하고 있는 이수에게 이별을 고한다. 주인공의 짧고 건조한 이별 대사. "감기 들겠다"는 걱정 어린 우진의 말은 모두의 마음에 뭉클함으로 와 닿을만한 무엇이었다.

두 사람이 헤어지는 이 장면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게 나의 두 빰을 타고 흘렀다. 나의 이기적인 내면이, 그 추악함이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조용히 돌아서서 가는 우진과 가만히 서서 멀어지는 그를 지켜보는 이수가 어딘지 모르게 낯익었다. 자신의 본심이 들킬까 봐 두려워하고 있는 홍이수. 차라리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녀에게서 내 모습이 보였다. 충분히 좋은 사람이라지만, 다시 생각해도 복잡하고 구차한 세상적인 이유로 사람을 줄 재기했던 나 자신이 떠올랐다. 외모, 직업, 나이, 학벌, 등등의 외적인 것들을 관계의 결격사유로 삼으며 만나선 안 되는 이유만 늘어놓았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연락이 뜸해지는 상대방을 보면서,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생각났다. 처음에 우진이 이수에게 나지막이 던졌던 “괜찮겠냐”는 질문에 내 안에 있는 자아가 ‘사실은 괜찮지 않다’고 답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영화는 내 마음속의 이미 정해져 있던 답을 꺼내어놓으며 ‘내가 이만큼 이기적이다. 내가 이만큼 속물이다. 내가 이만큼 내 생각만 한다.’라고 폭로하는 것 같았다.


어제의 나는 오늘과 같을까? 변한 건 그가 아니라 내가 아닐까?


힘겨움을 못 이겨 이별을 받아들였던 이수는 헤어짐 끝에 결국 깨닫는다. 이수가 사랑한 대상. 그 본질은 우진의 내면에서 빛나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마침내 이수는 우진을 찾아간다. 겉모습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늘 그대로였던 우진의 앞에서 "매일 다른 사람의 모습이 되어도 괜찮다고. 이 안에 김우진을 사랑하는 거니까."라며 다시 사랑을 고백한다. 영화는 그렇게 '뷰티 인사이드'를 말한다.



오래전에 봤던 이 영화를 다시 보며 생각해봤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난다면, 나는 괜찮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다시 보니, 여주인공 이수의 감정 변화가 남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 처음 볼 때는 못 느꼈던 감정이 엿보였다. 몰라보게 변하는 연인의 모습에 적응하느라 겪었을 혼란스러움. 수군거리는 주위 사람들 가운데 느꼈을 주인공의 외로움. 나는 과연 그것들을 감당할 수 있는 넉넉한 사람일 수 있을까? 사람들이 뭐라고 수군거리던지 상관치 않고 나만 알고 있는 그 사람의 내면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따져보니 그렇다고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나라도 힘들겠지. 괜찮지 않을 테야.’ 나였어도 먼저 헤어지자고 말하는 그이의 이별 제안을 거부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수십 년간 스스로 지켜본 결과, 나는 관계에 있어 적극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 상대방이 먼저 그렇게 가버리고 나면 그걸로 마무리했을 거라 생각했다. 이별을 고하는 우진을 붙잡지 못한 이수처럼 똑같이 두려워했을 거라고. 그렇게 헤어짐을 받아들였을 거란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끝났겠지 싶다.


하지만, 만일 우진이 두 사람의 관계를 이어나갈 의지와 용기를 보여줬다면 어땠을까? 그런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여전히 아팠을 거고 여전히 힘들었겠지만, 나는 그 사람을 보내지 않았을 것 같다.


"괜찮겠어?"라고 묻는 우진의 배려심 있는 태도는 영상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처럼 온화하다. 하지만, 나는 "괜찮겠어?"라는 말보다 "사랑한다"라는 온기가 감도는 말로 나를 안아주는 상대를 만나고 싶다. 괜찮을 리 만무하니까. 괜찮겠느냐고 하면 사실은 괜찮지 않은 내가 너무 미안해지니까. 그러니까 차라리 "내가 이런 사람이라서 나를 만나는 동안 괜찮지 않을 거야. 그건 너무 당연해. 그렇지만, 내가 더 사랑해줄게. 내가 더 아껴줄게.”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다. "미안. 내가 오늘 좀 불편하게 생겼지."라고 말하는 대신 "고마워."라고 말해준다면. 함께 어려움을 이겨내자고 해준다면. 그럼 나도 그 사람을 결단코 혼자로 만들지 않을 텐데란 생각을 했다.


한 사람의 겉모습이 아닌 본질을 사랑하게 된 이상 고맙다고 말해주는 그의 곁을 지켜주겠노라고 다짐했다. 한국인이었던 사람이 외국인이 되어도, 피부에 윤기가 흐르던 사람이 자글자글 주름진 얼굴로 내 앞에 나타나더라도, 풍성한 머리칼을 자랑하던 그 이가 대머리가 된다고 해도, 남자였던 사람이 여자가 된다고 해도, 사랑하는 그 한 사람을 혼자가 되게 하지 않겠노라고. 인종, 나이, 외모 그런 보이는 것이 아닌 마음을 바라보겠다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렇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쉽지 않을 일을 함께 할 사람을 만날 수 있었으면. 속 사람이 반짝이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먼저 내 속 사람부터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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