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모양 Jan 01. 2019

아픈 이야기를 그린 웹툰

어 지갑 놓고 나왔다

먼저 사과하세요.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다툼이 생기면 선생님은 우리 둘을 따로 앉혀놓고 말했다.

"먼저 잘 못 했다고 말하세요. 누가 먼저 사과할래?"


둘 다 잘못했으니 누구든 먼저 사과하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가 사과하는 것으로 빨리 마무리지으려는 그 선생님의 지도방향이 싫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려 하지 않고 우리에게 먼저 잘못을 말하라고 강요하는 어른. 그런 어른들의 방식은 어린아이의 마음을 풀어주기는 커녕 삐툴어지게 만들었다. 나는 '이 선생님은 우리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구나'하며 입을 닫았다.


나는 사과하지 않았고, 친구가 나에게 먼저 사과했다. 친구의 사과에 영혼은 없었다. 벌 받는 상황에서 빨리 모면하고 싶어 보였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선생님은 상관하지 않았다. 그저 사과를 건넨 친구를 칭찬해줬다. 선생님은 친구가 먼저 사과했으니 이제 화해했으니 앞으로는 싸우지 말고 친하게 지내라고 하며 훈육을 마무리지었다. 선생님은 당사자인 내 마음이 회복되는데 걸리는 시간을 기다려주기보단 그냥 상황을 서둘러 종료시키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지만 친구를 용서하고 사이좋게 지내는 '대인배 코스프레'를 해야 했다.


물론, 어린아이들이 티격태격하는 이유는 선생님 시선에서 보면 참 사소하고 쓸데없는 것들이었다. 선생님 입장에서 보면 잘잘못을 따져보기 피곤할 정도로 유치한 다툼이었다. 병원놀이를 함께 하는 짝꿍과 의견이 안 맞아서 싸우고, 크레파스를 나눠 사용하는 친구와 서로 파란색을 먼저 사용하겠다고 싸우고, 산타할아버지가 없다고 주장하는 친구와 논쟁을 벌이다가 싸우는 그런 식이 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선생님이 어린아이의 상한 마음을 그런 식으로 풀고 넘어가선 안 된고 생각한다. 사과를 하는 것도 받아들이는 것도 당사자들의 문제다. 오해가 풀리고 마음이 정리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필요하고 대화가 필요하다. 나는 누군가의 마음이 아직 풀리고 회복되지 않았는데도 마치 상황이 훈훈하게 종결되었다고 보는 게 싫었다. 그건 착각이니까.


마음이 어려운 사람은 당사자 본인이다. 때문에 마음 깊이 생겨버린 분노와 서운함을 다스리고 풀어갈 사람인 본인을 기다려줘야 한다. 상처 받은 마음이 아물고 새것처럼 될 때까지 살펴야 한다. 그때까지는 겉으로 하는 사과도 용서도 보상도 상처를 감추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이제 그만 좀 해. 다 지난 일이잖아.


마음에 상처를 입고 계속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해서는 안 될 가장 폭력적인 말이 있다면 '이제 그만 해라. 다 지난 일이니 그만 잊어라.'는 말이 아닐까? 유치원생들의 사소한 다툼이야 괜찮다지만, 누군가의 마음에 큰 상처를 입힌 가정폭력, 데이트 폭력, 학교폭력 같은 범죄라면 어떤가. 아픈 기억을 잊으라는게 말이 쉽지 어디 쉬운 일인가. 계속되는 악몽 같은 기억에 고통받고 있는 당사자에게 더 이상 억울해하지도 아파하지도 말란 말은 폭력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피해자가 조금 잠잠히 있으면 사람들은 상처의 크기를 쉽게 생각하는지 없었던 일로 생각하라는 말을 건넨다. 너무 쉽게 너그러운 용서를 강요한다. 유치원생이었던 나에게 '용서와 화해'를 당당하게 요구했던 유치원 선생님처럼 말이다.


안타까운 점은 피해자들에게 '누구는 뭐 잊기 싫어서 힘들어하냐.'라며 날카롭게 되받아칠 기운조차 없을 때가 많다는 사실이다. 상처의 깊이와 크기가 크면 클수록 더 그렇다. 너무 지쳤거나, 너무 아프거나, 너무 약하거나, 너무 어려서 힘이 없는 피해자들. 그들은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모른 체하려는 사람들 속에서 더 크게 다친다. 뭘 모르는 사람들의 그만하자는 말은 안 그래도 아픈 사람들의 마음에 2차 상처를 만들어낸다.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는 말. 이쯤 하면 충분하지 않냐는 말. 최악이다.



솔직히 나는 용서를 못하겠다.


싸울 힘 조차 빠진 어떤 피해자들은 이런 세상이 밉고 답답해 도망친다. 바로잡아야 하는 진실에 대해 묵인하기도 하고, 사람들을 피해 숨기도 한다. 부끄러워해야 할 가해자는 떳떳하게 살아가는데 피해자가 되려 힘들게 살아가는 일도 벌어진다.


그런데, 여기 피해자가 '솔직히 나는 용서를 못하겠다.'라고 시원하게 때리는 웹툰이 있다. 바로 이 웹툰 <아 지갑 놓고 나왔네>다.


이 웹툰은 주인공이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웹툰 속 주인공 선희는 얌전하고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인물이다. 어릴 적 상처로 마음의 병을 얻었고 치유하지 못한 채 속 안에서 병을 키워가며 지냈다. 참 오랜기간동안 속 앓이를 한다. 아무에게도 자신의 아픔을 털어놓지 못한 채. 하지만, 결정적인 상황에서는 무서울 정도로 솔직해져서 자신의 할 말을 한다. 읽다 보니 선희의 병이 해소되길 바라는 마음이 자연스레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어느새 독자인 나는 주인공의 등 뒤에서 그녀가 회복되길 간절하게 응원하고 있었다.



<아 지갑 놓고 나왔다>의 매력 포인트

심각하지 않게 읽다가도 심각하게 빨려 드는 작품이다. 그림체부터 이야기와 인물까지 모두 개성이 있고 짜임새가 있다. 어릴 적 상처를 받은 주인공은 '이럴 바에야 미쳐버리자'라고 생각했는지 마음의 병을 안고 살아간다. 엉키고 엉켜버린 생각이 자신의 육체에서 정신을 탈출하게 만든다. 주인공은 본인의 얼굴을 망가트리고 자신의 자아를 흩트려버린다.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죽은 자의 환생, 머리카락만 있는 귀신, 사람을 새(조류)로 보는 정신질환, 종교에 빠진 광신도 엄마, 등등 조금 괴상한 설정이 심어져 있다. 하지만 난해할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거부감 없이 재밌게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읽다 보면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이 다 설명되고, 납득이 된다. 다소 무겁고 어두운 주제의 사건이 나오긴 하지만 재밌는 대사와 균형을 맞춰 담아냈기 때문에, 작게 웃으면서 천천히 읽어 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다.


http://webtoon.daum.net/link/view/motherdaughter

1. 독특한 그림체가 참신하게 다가오는 웹툰

색칠이나 디테일한 묘사를 배제하고 간결하게 그려낸 그림체가 특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단순한 그림처럼 보이지만, 그림을 읽어 내려가는 내내 속 안에 상승하고 하강하는 감정들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참 묘하고 깊은 울림을 주는 그림이다. 정밀묘사보다는 추상화에 가까운 그림이 단순한 것 같지만 디테일하다. 먹먹하고 울컥한 감정, 서운함에 차가워버린 마음, 슬프고 안타까운 심정이 그 간결한 선에서 다 표현된다. 느낌을 잘 살린 선의 꺾임이나 번짐에서 무언가 말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붓으로 그린 것 같은 그림체라 그런지 동양적인 정서와도 잘 맞아떨어지며 어울린다. 참신한 그림과 이야기를 찾고 있다면 <아 지갑 놓고 나왔다>를 보시라 말하고 싶다.

2. 엉켜버린 주인공의 이야기를 점진적으로 알게 되는 재미가 있는 웹툰

독특하긴 하지만 주인공 선희는 우리 주변에 있을지도 모르는 캐릭터다. 몇 가지 과장된 설정을 제외하면 내가 될 수도 있는 캐릭터다. 누구나 '상처', '방황', '회복'이라는 단어를 연관 지을 수 있는 이벤트가 인생에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니 말이다. 
처음엔 사람들을 새(조류)로 보는 주인공의 엉뚱함에 대략 난감해하다가 주인공의 스토리를 알게 되면서 그녀가 이해됐다. 자연스레 감정이입이 됐다. 실재하지 않는 웹툰 속의 주인공인데도 응원하는 마음이 들었다. 마음의 여유를 찾아가는 주인공의 외로운 싸움에 힘을 실어주고 싶어 졌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이 풀어지길 간절히 바라며 그녀와 함께 속으로 울고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녀의고군분투가 한편으로는 쓸쓸해보이고 한편으로는 대견하게 보인다. 차츰차츰 인물의 내면을 알아가는 스토리의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3. 내편인 사람들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

주인공 선희의 곁에는 상처를 준 나쁜 사람들도 있지만, 선희의 편이 되어주는 좋은 사람들도 있다. 친한 친구, 남편, 이웃집 아주머니. 주인공의 편이 되어 용기와 희망을 주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 덕분에 주인공은 완벽하진 않지만 서서히 차근차근 나아진다.
작품의 말미에서 주인공은 마침내 마음속에 숨겨둔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꺼내놓는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속 안의 이야기를 말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용기 내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더 이상 추궁하거나 그동안 비밀로 한 것에 대해 과하게 섭섭해하는 대신 '나는 네 편이다'라는 걸 보여준다. 나는 이 대목이 참 인상 깊었다. 친구들의 얼굴을 닭과 백조로 보아온 주인공에게 용기 내줘서 고맙다며 대단하다며 지지해주는 친구들. 그 친구들을 보며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솔직히 자신은 없었지만 그렇게 되고 싶단 생각을 했다. 편하다는 이유로 오랜 친구들의 소중함을 잠시 잊고 소홀히 대하고 있었다면 이 웹툰을 통해 친구들의 소중함을 되살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같은 웹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