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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모양 Jan 06. 2019

올해 제일 잘한 일

고교 동창 친구들과의 연말 모임을 마치고

"아아. 너희들은 올해 제일 잘한 일이 뭐야?"

내가 연말만 되면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물어보는 공식 질문이다. 올해의 고교 동창생 모임에서도 어김없이 이 질문을 던졌다. 올해가 벌써 삼 년째다. 2016년 연말부터 계속된 질문. 처음 물어봤을 땐 '얜 뭐 그런 질문을 하냐'는 식의 반응이었으나, 삼 년째 계속하니 친구들 반응이 달라졌다. 다들 진지했다. 짜증을 부리며 이런 면접 같은 질문에 자신이 왜 답해야 하냐고 거부하던 친구들이 이제 이 질문에 익숙해졌는지 잠시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한동안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 질문을 던진 나는 이미 답을 생각해두고 모임에 나갔기에 친구들의 얼굴 표정을 살폈다. 제법 진지하게 2018년을 돌아보고 있는 표정이었다. 나는 내 소중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경청할 준비를 하고 가만히 기다렸다.


뭔가 생각났는지 Y양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아! 나 생각났어."

"뭐야? 뭐야?"

"뭔데? 말해봐."

평소 유쾌한 에너지가 넘치는 Y양. 개그력으로 우리의 모임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던 그녀의 대답이라 기대가 되었다. 뭔가 또 코믹한 대답이 나올 것 같았다.


"내가 올해 학교에서 대표교사 역할을 맡았어. 그게 제일 잘한 일이야."

사랑꾼 Y양이 남자 이야기가 아닌 직장 이야기를 꺼내니 조금 놀라웠다. (참고로 2016년에 꼽은 Y의 제일 잘한 일은 남자 친구를 만난 일이었고, 2017년에 꼽은 제일 잘한 일은 그 남자와 헤어진 일이었다.)


“오~ 의외의 답변인데.!”

"왜? 뭘 얼마나 잘했길래?"

작년과 재작년엔 이 인간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행사한 이벤트가 연애였다면, 올해는 직장(학교)였다고 한다. 도대체 무엇을 했길래 그런 말을 꺼냈는지 궁금했다. '대단한 성과라도 남긴 걸까?' 하며 모두 그녀에게 집중했다. 허나, 그녀의 대답은 뜨뜻미지근했다.


"아니. 잘하지는 못했어. 하면서 실수도 하고 혼나기도 했어. 그렇지만, 하길 잘한 거 같아."

친구의 학교에서는 1년 동안 대표교사를 맡을 선생님을 정한다고 했다. 모든 선생님들이 돌아가며 해야 하지만 그다지 선호하는 자리는 아닌 듯했다. 친구는 올해 그 일을 자신이 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걸 올해 가장 잘 한 일로 뽑았다. 훌륭하게 해내지는 못했지만 어치피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올해 하길 참 잘한 것 같다고. 그렇게 배운 것들이 앞으로 학교에서 일을 하는데, 그리고 교사를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데, 갑자기 Y가 어른이 된 것 같았다. 그 일을 최고의 이벤트로 뽑은 것만으로도 한 해동안 친구가 겪었을 부담감과 어려움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됐다. 우리는 고생했다고 잘했다고 말해줬다. 양 손에 응원의 마음을 실어 박수를 쳐주었다.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보낸 박수에 친구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자 그럼 다음은 누구? 생각난 사람 있어?"

선뜻 대답을 안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한 친구가 입을 열었다. K양. 그녀 또한 우리 모임에서 마이크를 잘 뺏기지 않는 토크의 여신이다.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시작할까 기대하는 마음에 모든 이들의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기대감 만발한 눈빛에 대고 친구는 대차게 말했다.

"야 이것들아. 난 올해 잘된 게 하나도 없어. XX 같은 사장님들만 만나서 고생은 있는 대로 하고. 올 한 해는 정말 되는 일이 없는 해였어. 올해 잘한 거 그딴 거 없어."


K는 카페일을 하는 친구다. 올해 만난 카페 사장님들은 친구의 경력과 기대치를 만족시켜주기엔 한참 실망스러운 사람들이었나 보다. 몇 번의 이동을 했지만 좋은 일터를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는 임금체불로 인해 전 직장 사장님과 대치중이라고 했다. 그래도 워낙 밝고 예능감 있는 친구라 그런지 심각한 이런 이야기를 별거 아닌 양 재미나게 풀어서 이야기했다. 한동안 하소연이 이어졌다. K양의 입담이 더해져 재미나게 듣고 있었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내용들이었다. 우리는 ‘이런 이런..’하며 정성껏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줬다.


그러다, 갑자기 K가 뭔가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아! 그래. 나 잘한 일 있네. 손님한테 인사 잘한 거. 그게 내가 잘한 일이네.”

그녀의 이야기는 이랬다. 그 카페에서 일할 때 자주 오던 손님이 알고 보니까 같은 건물 윗 층에서 일하는 가방 디자이너였다고 했다. 한참 힘들게 버티던 K가 이제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했던 때에, 갑자기 그 단골손님이 가방을 선물해주겠다고 했단다. K가 항상 친절하게 인사해줘서 고마웠다고 선물해주고 싶다고 그랬다고 한다. 여러 개의 가방 중에 고르라고 해서 하나를 골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가방들이 꽤나 비싼 가격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올해 잘한 일을 뽑아야 한다면 아마 그 손님께 인사를 잘한 것 그거 하나일 거라고 했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K. 손님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손님들 덕에 웃기도 하는 카페 매니저. 그녀가 올해 제일 잘한 일이 인사라고 하니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실력파 매니저 K다운 대답이구나 싶었다. 본인이 XX같은 처지에 있어도 손님들께는 웃으며 인사했다는 걸 곱씹어 생각해보니, 그녀의 투철한 직업정신이 다시 감탄스러웠다.


“그래 그거 참 잘한 일이다.”

우리는 또 한 번 진심을 가득 담아 박수를 쳤다. 가방을 보며 뿌듯한 미소를 짓는 친구에게 나는 엄지를 들어 보였다. ‘네가 최고다. 장하다. 내 친구!’ 그녀가 받은 고가의 핸드백이 부러워서는 아니었다. 그간 K가 들인 수고와 노력을 생각하면 사실 그 핸드백은 그리 넉넉한 보상도 아니었다. 다만, 그녀의 노력이 헛수고로 끝나지 않았음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그 노력을 알아준 사람이 있었으니 다행이라고.


Y와 K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자 다른 친구들도 하나 둘 자기 얘기를 꺼냈다.


디자이너인 친구 P는 모빌이라는 새로운 분야의 작업을 시작한 이야기를 했다. 지금 하는 일이 자신에게 너무 잘 맞는다며 매우 만족스럽다고 했다.

“내가 올해 제일 잘한 일은 모빌을 만들기 시작한 거야. 너무 재밌어. 정말 이것만 하면서 지내고 싶을 정도야.”

모빌 직업을 시작하기 전의 P양은 작업실 겸 소품샵을 홀로 운영했었다. 가방을 직접 만들어 판매했다. P는 그때보다 모빌을 만드는 지금이 더 재밌다고 했다. 같은 가방을 여러 개 만들어야 했던 그때에는 주문이 들어오면 은근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했다. 제작해야 하는 가방 수량이 늘어나는 게 달갑지만은 않았다고. 하지만 지금 하는 모빌 작업은 반복적인 일이 아니라 질리지 않는다고 했다.


세상에 하나뿐인 모빌을 만드는 S양. 그녀가 만든 모빌은 우리가 보기에도 참 예쁘고 빛나는 작품이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라 할거 없이 입을 모아 SNS에서 본 그녀의 작품을 칭찬했다. 너무 예쁘다며. 그 복잡한 모빌을 만들면서 균형을 맞추는 게 대단하다며. 모빌 만들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거 아니냐며. S양의 어깨를 잔뜩 끌어올려줬다. 평소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인 S는 부끄러워 볼이 빨개졌지만, 자기 자식 같은 모빌들이 예쁘단 소리를 들으니 내심 뿌듯해하는 모습이었다. 자신에게 꼭 맞는 일을 찾아서 즐겁게 작업하고 있는 S양의 인상이 그날따라 더 밝게 반짝였다.


이번에는, 석박사 통합과정을 하고 있는 J가 말을 시작했다.

“나는 매년 똑같아. 작년이나 지금이나.. 대학원생의 생활패턴이 뭐 늘 똑같지.”

J는 우리 중에 가장 가방끈이 긴 친구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지금까지 거의 10년에 가까운 세월을 꼬박 학업에 열중하고 있는 대단한 녀석이다. 연구실에서도 이제는 J가 제일 선배라고 했다.


머지않아 박사님이 될 그 친구에게 우리는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계속한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알기에. 지금까지 버티고 버텨온 그 친구의 꾸준함에 대해 경의를 표했다. 한 해 한 해의 생활 가운데 다이내믹한 변화가 없어도 꾸준히 성실함을 유지하는 일. 연구자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 그것 또한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니 잘한 거라며 나는 그 친구를 향해 쌍엄지를 보냈다. 미리 ‘J박사’란 칭호도 붙여줬다. 예비 박사님인 J도 그런 우리의 띄워주기가 기분 나쁘지 않았는지 빙긋 웃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말할 차례가 돌아왔다.

“H야. 너는 뭔데? 올해 제일 잘한 일 말해줘.”

내 차례가 되자 친구들은 나에게 주목했다. 이 진지한 질문을 던진 당사자는 어떤 대답을 준비해왔을까 궁금해하는 표정들이었다. 나는 그런 친구들을 보며 천천히 운을 띄웠다.

“너희들도 기억하겠지만 나는 늘 여행을 내가 제일 잘 한 일로 꼽았었어. 재작년엔 라오스 여행이었고, 작년엔 남미 여행이었지. 아마.”


친구들은 작년에 우리가 나눈 대화가 기억났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랬지.”

“그러네. 그럼 올해 제일 잘 한 일도 여행이야?”

“아니. 올해는 그렇게 기억에 남을 여행을 가지 않았어. 대신에 책을 만들었지. 책을 만든 게 내가 올해 동안 제일 잘한 일이야.”


친구들은 내 책을 알고 있었다. 단체 채팅방에서 내가 이미 홍보했기 때문이다. 이미 서점에서 책을 사서 읽었다는 친구도 있었다.

“아 맞다. 너 책 만든 이야기 좀 해줘.”

“그래. 안 그래도 궁금했어.”


나는 내가 연초에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독립출판물 제작을 도전하기까지의 이야기를 해줬다. 나는 새로운 일이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잘하지 못한다고 여겼던 글쓰기에 도전해보고 싶어서 시작했다고. 재미를 붙이고 계속 더 하고 싶어서 책까지 만들게 되었다고. 친구들은 이야기를 마친 나를 향해 과장된 리액션을 발사해줬다. 어떻게 책을 만들 생각을 했냐며. 책의 콘셉트가 마음에 든다며. 대단하다며. 나의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지지해줬다. 그들의 작은 응원 하나하나가 큰 힘이 되었다. 이런 친구들이 있단 사실이 고마웠다.



같은 교복을 입고 등하교하던 나의 여고 동창생들. 우리는 명동 한복판의 스티커 사진기 안에서 20대의 시작을 자축하던 동지들이다. 성인이 되었다고 기뻐 날뛰던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각자의 길을 찾아 걸어간 지 10년이 지났다. 우리들은 벌써 서른이 되었으며, 그동안 우리의 처지와 생활이 참 다양하게 세분화되었다. 누구는 유부녀가 되었고, 누구는 싱글이다. 한 친구는 새로운 일을 시작한 게 정말 잘한 일이라고 말하고, 다른 한 친구는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게 가장 잘한 일이라고 말한다. 어떤 친구는 직장생활에서 겪은 어려움을 이겨낸 일을, 어떤 친구는 인간관계에서 맞이한 난관을 극복한 것을, 그리고 어떤 친구는 취미를 만들고 자기 계발을 시도한 것을 뽑았다. 각자의 대답에 공통분모라곤 없었다. 심지어 우리는 직장도 제각각이다. 제약회사, 디자인 회사, 카페, 학교, IT회사, 연구실. 이렇게 다르기도 쉽지 않은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하다. 문득, ‘우리가 앞으로는 더 다른 사람들이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는 아기 엄마가 되고 누구는 싱글녀로 지내겠지. 누구는 자기 가게를 차려 사장님이 될 것이고, 누구는 성실한 직원으로 남겠지. 교수님이 되는 친구도 있겠지만, 경력을 접고 주부가 되는 친구도 있을 것이다. 각자의 사정이 생기면 동네를 떠나 멀리 이사 가게 될지도 모른다. 지방이나 외국에 나가 살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어도 매년 연말에 만나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해봤다.


여고시절부터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는 나의 동지들을 잃어버리면 너무 슬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왈칵 쏟아져 넘치려 하는 감정을 부여잡고 긍정적인 생각을 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우리들이 서로를 지지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각자의 처지는 다르지만 박수 쳐주며 편을 들어주는 친구들. 이 친구들과 함께 연말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나의 친구들과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다. 존재만으로도 든든하고 고마운 친구들. 그들과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계속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온 힘을 다해 물개 박수를 쳐주었던 2018년의 연말처럼, 딱 지금처럼 평생 함께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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