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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모양 Feb 07. 2019

비싼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우리 엄마

커피 때문에 이성을 잃었던 딸의 반성문 같은 일기

아빠가 차를 돌렸다. 엄마가 갑자기 마음을 바꿨기 때문이다. “다른 카페 가자. 나가세요.”라는 엄마의 말과 "어서 오세요"하는 발레 요원들의 재촉 사이에서 잠시 갈팡질팡했지만 아빠는 결국 핸들을 돌렸다.


나는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가 먼저 말을 꺼냈던 카페였는데, 들어가려고 하니 가기 싫단다. 이제 밥은 잘 먹었으니 마지막 남은 코스인 카페만 잘 즐기고 돌아가면 된다 생각하던 찰나였다. 웬일인지 가족여행이 순탄하게 끝나간다 싶어 불안했는데 역시나였다. 1박 2일의 가족여행이 마지막 코스인 카페에서 삐그덕 대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에게 화를 냈다.


“왜 안가? 그럼 어디 갈 건데?”


답답했다. 엄마를 뺀 모두가 그 카페에 가는 것에 동의했었다. 심지어 엄마 친구가 알려줬다며 엄마가 제안한 카페였다. 그런데 엄마가 돌연 갑자기 가기 싫단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알다가도 모를 엄마의 변덕에 나는 차분함을 잃어버렸다.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표정으로 묵언 수행하듯 가만히 있었다. 아빠는 동생이 가자는 곳으로 운전을 했고, 우리는 근방의 다른 카페에 들어갔다.


그렇게 급하게 찾아 들어간 카페는 별로였다. 건물은 그럴싸한 건축물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지만 메뉴에도 인테리어에도 커피맛에도 아무런 매력이 없었다. 커피 향이라곤 느껴지지 않았고, 손님이라곤 우리 네 명이 전부였다. 황량한 실내공기는 아늑함보다는 불편함을 선사했다. 게다가, 커피 가격도 착하지 않았다.


서울 시내에서 백반 한 끼 먹을 수 있는 커피값을 지불하고 기다렸는데, ‘이걸 이 돈 받고 팔아도 되는 거야’ 싶은 퀄리티의 음료가 나왔다. 화가 났다. 조금 전 그럴듯한 카페를 저버리고 이 곳에 왔단 사실 때문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엄마는 뒤늦게 후회하는지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아까 지나쳤던 카페 ‘나ㅇㅇㅇ’에 대한 블로그 후기를 검색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엄마에게 화풀이를 했다. 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좋은 카페를 거부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며 엄마를 몰아세웠다. 가기 싫다고 해놓고 검색은 왜 하고 있냐고, 그러게 거기 가자고 할 때 가지 않고 왜 차를 돌리라고 했냐고, 엄마를 나무랐다. 엄마는 자긴 대기업 같이 커진 가게를 가지 않기로 했다는 둥, 생각보다 별로라는 악플이 있다는 둥, 친구가 맛이 별로라고 했다는 둥, 방금 생각해낸 듯한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나는 끝까지 뾰로통한 입을 집어넣지 못한 채 티타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엄마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집에 간 내가 신경 쓰였는지 가족 채팅방에 ‘담에 멋과 맛을 같이한 외식 하자’는 메시지를 남겼다.


엄마는 내 마음을 너무 잘 안다. 사실 나도 엄마 마음을 정말 잘 안다. 엄마는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본 커피값이 비싸서, 그 몇 천원이 아까워 마음을 돌렸을게 뻔하다. 나는 그런 엄마가 싫어서 더 오버해서 화를 냈다. 그런데 돌아와 생각해보니 엄마 마음을 알면서 너무 나무랐나 싶어 갑자기 미안해졌다.


내 나이에 이미 아이 셋의 엄마가 되었던 우리 엄마. 엄마도 나처럼 커피값 몇천 원에 연연하지 않으며 살고 싶었을 거다. 맛있는 것, 예쁜 것, 갖고 싶은 것에 열심히 투자하는 서른이고 싶었겠지. 삼 남매의 엄마로 살아야 했던 지난 세월이 엄마를 이토록 억척스럽게 만들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돈 버는 딸이라는 이유로 쉽게 엄마를 혼냈던 내가 미웠다. 함부로 할 자격이 없는 딸 주제에 세 자식을 훌륭하게 키워내신 어머니 앞에서 불만을 쏟아냈던 게 부끄러웠다.


‘더 잘해야지.’


날이 따뜻해지면 경치 좋은 카페에 엄마를 데려가서 행복한 향이 나는 맛있는 커피를 함께 마셔야겠다. 마음껏 마시라고 하면서, 한 잔으로 만족스럽지 않으면 한 잔씩 더 시켜서 먹기로 약속하고, 케이크도 시켜먹자고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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