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여행기 #7. 비합리적인 소비하기
우리는 택시를 타고 쿠바의 해변 마을로 이동했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를 뒤로하고 5시간을 달렸다. 오래된 택시는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며 제법 잘 굴러갔다. 불편한 좌석에 눌린 엉덩이가 점점 감각을 상실해 갈 때 즈음, 드디어 한적한 시골마을 트리니닷에 도착했다.
“읏차차~ 먼길 오느라 고생하셨어요.”
C가 내리자마자 좌우 스트레칭을 하며 말했다. 좌석 시트가 불편했던 모양이다.
“C도 고생하셨어요.”
뒷자리에서 내린 우리도 덩달아 기지개를 켜고 구겨져 있던 몸을 폈다.
우리의 기지개 소리를 듣고 나온 호스텔 주인아저씨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안내를 받아 들어간 방에서는 낯설지 않은 쿠바 냄새가 느껴졌다. 인상 좋은 주인아저씨는 웰컴 드링크라며 깐찬차라 칵테일을 가져다주셨다. 연둣빛 칵테일이었다. 달콤하게 한 잔 들이켰다. 노곤했던 몸에 다시 에너지가 피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자 잊고 있던 출출함이 ‘꼬르륵’하며 배꼽을 울렸다.
“지금 몇 시예요?”
“아- 밥 먹을 시간이 이미 지났네요.”
“우리 일단 식사하러 나갈까요? 배고파요.”
“그래요. 나가서 돌아봅시다.”
우리는 얼른 나갈 채비를 하고 길을 나섰다. 나지막한 높이의 건물이 이어져있는 골목에는 알록달록한 상가와 주택이 늘어서 있었다. 우리는 그중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노란색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늦은 점심 식사를 해결했다. 레모네이드 색 식당에서 먹는 점심이라 그런지 가볍고 산뜻한 맛이 났다.
“배부르네요.”
“잘 먹었습니다!”
“자! 이제 마을 좀 둘러보아요.”
식사를 마친 우리는 본격적인 동네 탐색에 나섰다. 거리에는 가로수 대신 야자수가 곳곳에 심어져 있었고, 주택 창가에는 선인장이나 초록 식물이 심어진 화분이 한 개씩 놓여있었다. 누가 주인인지 알 수 없는 개와 고양이들은 온 동네가 제 집인 양 한가로이 누비고 다녔다. 길에 간혹 보이는 마차는 시골마을의 풍경을 한 층 정감 있게 채워주고 있었다. 오밀조밀하게 세워진 건물들은 저마다 다른 파스텔톤의 색으로 예쁘게 칠해져 있었다. 규모는 작지만 골목마다 숨어있는 소박한 볼거리를 찾아다니는 재미가 있는 곳이었다.
모퉁이를 돌아 나오니 악기를 연주 중인 쿠바 전통 밴드의 연주 소리가 들려왔고, 다른 골목으로 들어서자 쿠바의 전통 수공예품이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는 시장이 나타났다.
“우와 우리 시장 구경할까요?”
구경거리가 많아 보이는 전통 시장 입구를 발견하고 순간적으로 흥분한 나는 살짝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쿠바 돈 환전한 거 여유가 있으니까 용돈 드릴게요. 우리 이걸로 각자 기념될만한 거 쇼핑해요!"
A도 나의 들뜬 마음과 같았는지 쇼핑을 제안했다. 나는 신나서 속으로 ‘야호’를 외쳤다.
돈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A의 허락으로 우리는 쇼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용돈은 10 CUC, 1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었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시장에서 아기자기한 쇼핑을 즐기기에는 충분한 금액이었다. 나는 용돈을 받아 들고 호기심 찬 표정으로 시장을 구경했다.
제일 먼저, 악기 판매상 아저씨가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가판대에는 아기자기한 북과 나무로 만든 타악기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궁금증 가득한 눈으로 악기들을 살피는 내 눈빛을 읽었는지 아저씨는 내 앞에서 직접 연주 시범을 보여주셨다. 노래까지 더해진 경쾌한 연주에 ‘와’하며 입이 벌어졌다.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작은 나무 악기가 유쾌한 리듬과 또렷한 울림을 만들어냈다. 내가 해보겠다고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지만, 내가 하면 영 엉뚱하고 이상한 소리가 났다.
‘아저씨 연주 솜씨가 대단하시네..’
아저씨의 화려한 연주 솜씨에 반한 우리는 결국 악기를 구매했다.
나는 마라카스를 골랐고 A는 나무로 된 타악기를 골랐다. 그리고, 방금 구매한 악기로 아저씨와 함께 합주를 해보았다. 선곡은 쿠바 길거리에서 가장 많이 들리던 곡 <Rico Vacilon>이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즐거운 움직임’이라는 뜻이다.
즉석에서 결성된 우리의 연주는 내 마라카스 소리 때문에 엉망이 되었다. 아저씨는 웃으며 끝까지 함께 연주해주었지만, 왠지 모르게 민망해졌다.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나는 억지 박수로 어설픈 합주를 마무리하고 얼른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장을 더 둘러보았다.
이번에는, 조개껍질로 꽃 모양 액세서리를 만드는 아저씨가 내 눈길을 끌었다. 아저씨는 나를 보더니 자신의 작품들을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모두 자신이 만들었다며, 접착제를 이용해서 한 땀 한 땀 붙여가는 과정을 보여줬다. 대단하다고 말하며 감탄하는 반응을 보이니 아저씨는 입이 찢어지라 기뻐했다. 자신의 작품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저씨의 순수한 표정. 진심으로 기뻐하는 그 얼굴이 눈에 밟혀 그냥 지나갈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조개껍질로 만든 수공예 반지를 추가로 샀다. 그렇게 나의 소비는 끝이 났다.
나에게 마라카스와 반지는 별로 필요한 물건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것들을 사는데 돈을 몽땅 사용하고 말았다. 숙소에서 내가 산 물건을 정리해보니 쓸데없는 물건을 샀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근하게 다가와 준 아저씨들의 웃는 표정에 마음이 약해져서 사버린 물건들. 다시 생각해보니 후회라기보단 헛웃음이 났다. 필요해서 산 물건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모두 아저씨의 표정을 보니 그냥 사주고 싶어서 구매한 것들이었다.
‘역시 난 쇼핑을 잘 못하는구나’
쓸모없는 작은 마라카스를 보며 자기 합리화를 했다. 단순하지만 명쾌한 노랫말처럼, 경쾌한 악기 소리처럼, 앞으로 내 삶에 즐거운 일이 많아질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내가 산 건 악기가 아니라 즐거워지기 위한 쿠바인들의 마법 주문일지도 모른다고. 만 원의 행복은 이런 게 아니겠냐고.
녀석을 괜히 한 번 들고 흔들어보았다. 찰찰찰. 경쾌한 소리가 났다. 작은 움직임이 만들어낸 소리가 꽤 기분 좋게 들렸다.
차차차. 즐거운 움직임. 차차차.
앞으로 나에게 더 크고 경쾌한 즐거움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즐거운 움직임이 넘쳤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