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모양 Mar 24. 2021

올드타운 같은사람이 되어야지

남미 여행기 #6. 겉 멋 버리기

우리는 올드아바나 거리를 걸었다. 기분에 따라 시선을 돌리기도 하고 걷는 방향을 틀기도 하며 다녔다. 그렇게 들어간 골목에는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들이 서 있었다. 몇몇 건물은 상처 나고 부서진 흉터를 그대로 품고 있었다. 곳곳에 벗겨진 페인트칠과 회반죽이 드러난 건물 외벽이 위태로운 듯 보이면서도 멋스러웠다. 높고 화려한 빌딩은 없었지만, 건물마다 사연이 있을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거리로 나오니 화려한 올드카가 중후한 매력을 내뿜으며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영화에서 방금 나온 듯한 올드카의 클래식한 자태는 쿠바의 최고 분위기 메이커다웠다. 분홍, 보라, 노랑, 초록, 빨강, 에메랄드, 파랑, 등등.. 자동차 색상이 그 가짓수를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했다. 검은색과 흰색 차가 대부분인 한국의 거리와는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형형색색의 자동차가 달리는 광경을 보니 답답하고 우울했던 기억과 걱정거리가 날아가버리는 것만 같았다. 생동감. 활력. 즐거움. 그런 긍정적인 에너지가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서 서울에는 있지만 아바나에는 없는 것들을 나열해보았다. 초고속 LTE, 높고 화려한 최신식 건물, EDM 음악, 빠르고 편리한 지하철, 고급스러운 백화점, 24시간 편의점. 그리고 다음에는, 아바나에만 있는 것들을 생각해보았다. 오프라인이 주는 자유로움, 라이브로 연주되는 거리 음악, 알록달록한 올드카, 오랜 시간 풍파를 견뎌온 낡은 건물, 한적함을 만끽할 수 있는 테라스, 헤밍웨이가 다녀간 칵테일바. 올드타운은 이런 낭만적인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올드 아바나 속에는 오래된 것들의 멋이 깃들어 있었다. 짙은 자유로움이 살아있었다. 그래서 아바나의 풍경은 빌딩으로 가득한 첨단도시보다도 매력적이다. 사연과 역사가 담긴 아날로그시계가 최신식 스마트 워치보다 멋진 것처럼 말이다.


이제 사람들이 쿠바를 왜 사랑하는지 알 것 같다. 호화롭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은 이 도시가 사랑받는 이유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쿠바 다움의 가치를 말이다. 이토록 위대한 낭만을 개츠비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것이다.


올드타운을 떠나는 날, 나는 드르릉거리며 달리는 오래된 차 안에서 이 노래를 들었다.

Free your mind


파워풀한 여성 보컬이 쏟아내는 화음을 듣고 있으니 마치 올드타운이 나에게 외치는 것 같았다. 겉모습이 아닌 본질을 봐야 한다고.


사람들은 가끔 과하다 싶을 만큼 자신을 남들과 비교한다. 피부색이 검다거나, 키가 작다거나, 자동차가 오래되었다거나, 내가 입는 옷이 유행이 지난 스타일이라거나 하는 그런 피상적인 것들로 말이다. 나도 그럴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유독 노래가 따가운 일침으로 들렸다. 회초리로 몇 대 맞은 것처럼 노래를 듣는 마음이 뜨끔했다. 눈을 감고 귀에 다가오는 가사를 깊이 새기며 다짐했다.


‘번쩍번쩍한 뉴타운을 닮기보다는 깊은 내공과 멋을 간직한 올드타운 같은 사람이 돼야지.’

작가의 이전글 세상이 편리해진 만큼 내 일상이 편안해진 게 맞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