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모양 Mar 24. 2021

나는무슨 색이 되려는 걸까?

남미 여행기 #12. 온전한 내가 되자

뻥 뚫린 도로 위를 달리는 차 안.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의 속도감이 상쾌한 기분을 불러왔다. 달리고 달려도 계속되는  길이 이어졌다. 나는 쿠바의 장면을 하나라도 더 기억에 새기기 위해 부지런히 창밖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H 저기 하늘 좀 보세요.”


C의 말을 듣고 하늘을 보니 고속도로 평원 위로 예쁜 무지개가 떠있었다.


“와 엄청 큰 무지개네요.”


꽉 채워진 무지개는 마치 우리가 가는 길을 배웅해주러 나온 듯 밝고 환하게 웃고있었다. 맑은 하늘에 동그랗게 뜬 무지개를 보니, 어린 시절의 동심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극적인 뉴스와 새로운 사건사고가 넘쳐나는 세상에 뒤얽혀 살면서, 무엇을 보고 감탄하는 일보다 실망하는 일이 많아져버린 요즘이다. 그래서일까. 어린아이 같은 감탄사를 불러내 준 그날의 무지개가 고마웠다.


‘그래. 무지개가 신기하던 때가 있었..’


무지개만 봐도 신기해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나는 나조차 감당 안 될 만큼 호기심이 넘쳤다. 표현하고 싶은 게 많았던 나는 만들기와 꾸미기를 참 좋아했다. 인형의 집보다 색종이를 좋아하고, 장난감 가게보다 문구점 미술재료 코너를 좋아하는 꼬마 예술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컬러 점토 세트를 갖는 게 소원이라고 산타 할아버지께 편지를 쓰던 아이. 나는 그런 별난 아이였다. 내 조그맣던 머릿속에는 빨주노초파남보가 만들어낼 수 있는 다양한 발상이 넘실거렸다.


디자인학과에 들어가면 그런 나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 나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만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정작 전공 길로 들어선 나는 개성으로부터 멀어지는 시간을 보냈다. 무지개를 피워야 할 때에 나의 색을 잃어버린 것이다. 평가 중심으로 공부하던 학창 시절 관성이 대학생활까지 이어진 게 문제였다.


나는 항상 교수님의 기준에 맞추기 위한 과제를 했다. 나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친구들이 그러했다. 우리는 함께 실습실에서 밤을 새워가며 사포질을 했다. 0.01mm의 오차라도 줄여서 과제물을 제출하기 위해 밤샘 작업을 했다. 단지 교수님이 과제물의 마감도를 좋게 평가하신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먼지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뇌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는 그 매캐한 작업공간에서 우리는 정말이지 셀 수 없는 밤을 지새웠다.


지금 돌이켜 보면, 왜 그리도 평가에 집착하며 대학생활을 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무슨 디자인을 하고 싶은 건지, 왜 디자인을 하려는 건지, 나의 디자인 스타일이 무엇인지 이런 고민은 안중에 없었다. 그저 최대한 좋은 점수를 성적표에 남기기 위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그때 내가 머리 싸매고 사투했던 문제의 주어는 내가 아니었다. 교수님과 남들의 평가였다. ‘교수님이 무엇을 좋아하실까?’ ‘교수님이 이런 과제를 내주신 저의가 뭘까?’ ‘교수님 마음에 들게 발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등의 생각으로 아까운 시간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나의 흑역사인 것 같다. 자기 색을 잃어버린 검은 나날들.


‘교수님이 어떤 디자인을 좋아하는지 파악하기 전에, 왜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내 생각이 조금이라도 다를 때, 교수님께 내 생각을 더 이야기해보았다면 어땠을까?’

‘교수님의 의견을 더 비판적으로 수용했다면, 과제 결과물이 더 좋아지지 않았을까?’

내가 없는 시간들이었다 생각하니 공허한 감정이 속 안에 차오른다. 아쉽다. 다 의미 없는 뒤늦은 후회인 줄 알지만 아쉽다. 그때는 나란 존재가 세상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아주 많은 길이 내 앞에 펼쳐져 있던 시간이었으니까…. 그래서 더 씁쓸한 것 같다.


‘나는 무슨 색이 되려는 걸까?’


내 현재 위치가 쿠바를 떠나기 위해 공항으로 가던 그때와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사건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채로 다음을 향해 떠났듯이, 이십 대를 마무리하며 새로운 출발선을 향해 가고 있으니까. 서른을 앞둔 지금은 그 길과 닮은 것 같다.


이제부턴 나의 색을 찾아봐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스케치북 다음 페이지를 넘기듯이. 어떤 색으로 어떤 그림을 그릴지 기대하며. 그렇게 쿠바 무지개를 마음에 새겼다.


그때 무지개를 만난 것처럼 내 인생길에도 무지개가 피어나면 좋겠다. 점점 더 나를 알아가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만들고 싶다. 빛이 갖고 있는 본연의 색을 무지개를 통해 그대로 드러내듯이, 나도 오롯이 나의 색으로 존재하며 빛나고 싶다. 틀에 맞춰진 모범생이나 성공한 사람이 아닌 나를 잘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초록창가 - 악동뮤지션

초록창가 사이 꽉 채워진 무지개
빨주노초파남보 구름 위 둥실둥실
초록창가 틈새로 날아온 편지지
동쪽서 불어온 바람 타고 둥실둥실

Fly away 손가락 끝에 닿는 멜로디를 잡고
Flow away 발끝을 적시는 파란 물결을 타고

좁고 멀고 험해
너가 가고자 걷는 길은 맘 뜻대로 안 돼 속상하지
너가 알아서 다 할 텐데
뭐가 그리 걱정 불안 불만 의심투성이들인지
좀 믿어줬으면 하지
때문에 너의 방은 그렇게도 지저분해
햇빛 한 줄기 들어오지도 않는 쾨쾨한 곳에서
어떻게 네 꿈을 꾸밀 계획이었어 man

Everybody wanna know
간절히 원하면 이뤄내리라는
별 말도 안 될 소린 누가 지어냈을까 해도
여전히 두 손 모아 praying
아무도 모르게 너에게 다가가
발자국 소리도 못 듣게 날아가
푸르스르름한 손길로 너에게
행운을 빌어줄게 그래 믿어봐

초록창가 사이 꽉 채워진 무지개
빨주노초파남보 구름 위 둥실둥실
초록창가 틈새로 날아 온 편지지
동쪽서 불어온 바람 타고 둥실둥실

Fly away 손가락 끝에 닿는 멜로디를 잡고
Flow away 발끝을 적시는 파란 물결을 타고

난 포기 하지 않아
누가 뭐래도 근심 갖지 않아
심각지 말아 남들이 말하는 앞선 추측에
너의 나가야 할 곳은 저 환한 창가 밖인걸
너가 나와야 모든 세상이 바뀌어
뻥치고 있네 이미 속을 만큼 속았어
성공한 자들의 성공 후에 과장된
성공담은 이미 불을 만큼 불었어 팅팅

큰 코 다 깨지고 낙담한 지 오래인걸
시간은 계속 떨어지는 모래인걸
누가 내게 진실을 말해줘
여전히 나를 믿고 싶어
광활한 초록 들판에
널 감싼 거짓말 털털 털어
고민 같은 건 민들레 꽃 접시 위에
모두 덜덜 덜어

Everybody wanna know
간절히 원하면 이뤄내리라는
별 말도 안될 소린 누가 지어냈어도
한 번 더 나를 믿어줘
작가의 이전글 쿠바의 기억을 반짝이게 닦아서 추억으로 기록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