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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모양 Mar 24. 2021

마추픽추야 내가 왔다

남미 여행기 #15. 마추픽추

바람이 불어오는 곳. 아니 바람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르는 곳. 마추픽추에 갔다.


어서 올라가 봐야지.


페이스를 좀 지나치게 올렸나. 숨이 가빠오네. 헉헉.


숨소리가 거칠어지려 할 즈음 고개를 까딱 들고 얼마나 남았나 봤다. 레고인형 정도 크기로 사람들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복작복작하게 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들이다.

‘저기가 정상인가 보군.’

두 주먹을 꽉 쥐었다. 핏줄이 불둑솟고 얼굴이 벌게진다. 가자. 마추픽추 만나러. 숨을 크게 들이쉬고 허벅지에 힘을 올렸다. 그렇게 마지막 남은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갔다.


"에구구구 도착이구나."


드디어 전망대에 발을 디뎠다. 숨을 돌리려는데, 들이마신 공기를 차마 다 내쉴 틈도 없이 동공이 확장됐다. 공중에 감추어져 있던 도시가 일순간에 내 눈 앞에 훅 제 모습을 들이밀었기 때문이다. 입이 아닌 눈이 떡 벌어지는 장면. 정교하고 완벽한 그 만듦새가 시신경을 거쳐 뇌에 도달하자, 내 대뇌는 온몸에 찌릿한 전기신호를 보냈다. 가쁘게 쿵쾅대던 맥박이 조용해졌다.


‘마추픽추는 발견과 동시에 사람들을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더니. 정말이네....’

놀란 나는 멍하니 마추픽추에 섰다. 그리고 홀린 사람 마냥 셀카봉을 꺼내 들었다.


상기된 표정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 틈에서 나도 사진을 찍었다. 스스로를 찍고, 서로를 찍어주고, 놓칠 수 없는 하늘과 돌과 바람과 산을 담았다. 하지만 촬영된 사진은 내 감동의 크기에 비해 한참 모자라고 못마땅했다.


‘에잇 이노무 카메라는 이 굉장한 것을 왜 요만큼밖에 담지 못하는 걸까. 흥.’


셀카봉을 다시 집어넣고 이번에는 천천히 걸었다. 마추픽추를 요리조리 다니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걷고 멈추고 감격하고 또 걷다 멈춰 서서 감동하기를 반복했다. 한 바퀴를 채 돌지 못했는데 기차 시간은 우리를 재촉했다. 가야 할 시간이다.


아쉬움이 남은 나는 속으로 중얼중얼거렸다.

‘이 예술을 등 돌리고 떠나야 하다니. 아쉽소. 언젠가 다시 만나요. 마추픽추.’


벌겋게 취한 사람처럼. 작별이 아쉬워 내뱉는 아무 말을 구시렁구시렁 흘리며 내려왔다. 여기가 어딘가. 나는 누군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허나 이것은 돌무더기가 아니오. 예술이오. 이러면서.


모든 여행 일정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온 지 한참이 지난 지금. 가끔 남미 여행에 관심을 보이는 친구들이 마추픽추 어땠냐 물어보면, 나는 대박대박을 외친다. “에헴. 그런 데 가봤어요? 왜 그런 장소 있잖아요. 가이드의 설명이 없어도, 그저 눈이 휘둥그레지는 곳. 그냥 단전에서부터 경이롭다는 감탄사가 뿜어 나오는 그런 곳 말이에요. 여러분 지금 여기 보이는 이 건물은 역사적으로 굉장한 의미를 갖는 건축물이에요 하며 누가 호들갑 떨지 않아도 되는 곳. 교과서적인 설명조차 구차하게 느껴지는 곳이요. 마추픽추가 그랬어요.” 한다.


꼭 한 번쯤은 다시 가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만나 '오랜만이야'라고 할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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