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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모양 Mar 24. 2021

사는 게 힘겨울 때면이 밤하늘을 기억해

남미 여행기 #21. 반짝반짝 빛나는 우유니

여행지에서 마주하는 아름다움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1. ‘여기서 살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아름다움

2. ‘여기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아름다움

내가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에서 만난 밤하늘은 두 번째 종류의 아름다움에 속했다. 지금부터는 내가 느낀 그 황홀했던 기억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우유니에서 두 번째 날. 우리는 스타라이트 투어(별 관측 투어)와 썬라이즈 투어(해가 뜨는 모습을 감상하는 투어)를 함께 할 수 있는 패키지를 신청했다.


다음날 새벽 3시. 비몽사몽인 상태로 우리는 투어 차량에 올라탔다. 우리를 태운 차량은 다른 호스텔 앞을 들러서 추가로 사람을 태웠다. 가장 먼저 탑승한 나는 불행하게도 지프차의 맨 뒷자리에 앉았다. 낡은 투어차량의 최대 수용인원은 7명. 가이드는 그 인원을 꽉꽉 채웠다. 나는 다리를 바짝 접고 앉은 무릎 위에 가방을 올려야 했다. 묵직해진 바퀴는 마을을 벗어나 사막의 어둠 속을 질주했다.


쿵쿵대며 달리는 차 안에서는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발가락은 추위에 떨며 감각을 상실해갔고, 단단한 내 머리는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차 창틀에 부딪혀 둔탁한 소리를 냈다. 기대된다는 생각보다는 ‘춥다’ ‘졸리다’ ‘불편하다’ 하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때까지는 어떤 광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를 몰랐으니까. 막연한 기대감으로 웃기에는 새벽 공기가 너무 차가웠다.


새벽 5시.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가이드가 문을 열어주며 차에서 내리라고 손짓했다. 앞자리 사람들이 먼저 내린 다음, 보조의자를 낑낑거리며 접어 올린 후에야 겨우 내가 내릴 길이 열렸다. 나는 양 주머니에 핫팩을 찔러 넣고, 장화를 고쳐신었다. 전투에 임하듯 비장하게 준비를 마치고, 엉금엉금 걸어 나갔다. 제일 마지막으로 차에서 내린 나는 숙였던 고개를 들고 찌뿌둥한 허리를 폈다. 하품이 나왔다. ‘하-움-’하며 하품을 내뱉느라 잠깐 눈을 찡그렸다 고쳐 떴다. 그런데, 그 순간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풍경이 내 앞에 펼쳐졌다.


별이다!별.별.별.별.별.ㅂㅂ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ㅃㅂ(…)


우유니에 다녀왔던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별이 정말 더럽게 많아.”라며 여행기를 늘어놓던 친구. 나보다 먼저 이 기분을 경험했을 그 친구의 묘사는 허풍이 아니라 매우 적절한 표현이었다. ‘더럽게’라고 표현한 부분에 ‘셀 수 없게’ ‘심각하게’ ‘말도 안 되게’ ‘어이가 없게’ ‘눈물 나게’ 등등의 갖은 수식어를 붙여도 다 말이 될 만큼 압도적인 밤하늘이었다.


그곳에는 몇 광년을 날아온 별빛이 있었다. 캄캄하고 넓은 우주를 뚫고 나에게 도착한 한 줄기 빛. 그런 별빛이 수천만 개쯤 쏟아지고 있었다. 믿어지지 않는 장면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내가 말이야.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여기에 왔어. 무려 24시간이 넘는 비행을 했어. 동이 트기 전에 오기 위해서 오늘은 새벽부터 일어났단다. 너(별)를 만나려고 잠을 3시간밖에 못 잤어.’ 하며 생색을 낼 수 없는 노릇이었다. 광활한 우주 앞에서 나는 명함도 못 내미는 먼지처럼 미약한 인간이었다.


은하수를 빼곡하게 채운 정말 더럽게 많은 별들이 의기양양하게 빛을 냈다. 나는 그 존재들을 한동안 바라봤다. 하염없이. 그리고 또 하염없이 생각했다. '고생해서 여행 오길 정말 잘했다. 사는 게 힘겨울 때면 이 밤하늘을 기억하자.’ 이렇게.


별을 보고 있으면 내가 쌓아 놓고 걱정했던 고민과 상념들이 참 조그맣게 느껴진다. 긴긴 세월을 우주 속에서 헤엄쳤을 그 빛의 여정이 엿보여서 이상하게 용기가 생긴다. 그래서 나는 별이 좋다.


그날은 그런 별을 하늘 가득 선물 받은 날이었다. 그러니 ‘여기서 죽고 싶다’ 생각이 들 만큼 행복하고 황홀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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