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웃고 있는데 경고등이 뜨는 남자

제7화. 착한 사람 금단현상, 거절은 근육통을 동반한다

by 흔들리는 전문가

일주일 만에 다시 진료실을 찾은 강민재 씨의 몰골은, 솔직히 말해서 처참했다. 지난주, 말끔한 수트 차림에 완벽한 미소를 장착하고 들어왔던 그 'K-직장인'의 표본은 온데간데없었다. 넥타이는 느슨하게 풀려 있었고, 눈 밑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내려앉아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상태창이 마치 과부하 걸린 서버처럼 붉은색 경고등을 껌뻑거리고 있었다.


[ 시스템 경고 : 금단현상(Withdrawal) 진행 중 ]

[ 불안 수치: 85% ] [ 죄책감: 90% ] [ 특이사항: 내담자가 현재 '거절의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음. ]


그는 소파에 앉자마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에는 지난 일주일간 그가 치렀을 처절한 내부 전쟁의 화약 냄새가 묻어 있었다.


"선생님."


"네, 민재 씨. 오시는 길 힘들지 않으셨습니까?"


"오다가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를 안 했습니다."


"네?"


"할머니 한 분이 타셨는데, 제가 너무 피곤해서... 그냥 눈을 감아버렸어요. 자는 척을 했다고요.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식은땀이 다 나더군요. 제가 진짜 쓰레기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나는 픽 웃음이 나올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자리 양보를 한 번 안 한 것 가지고 '쓰레기'까지 운운하다니. 그의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 다시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민재 씨. 쓰레기는 그런 걸로 되지 않습니다. 진짜 쓰레기들은 자신이 쓰레기인 줄도 모르니까요. 일단 진정하시고, 지난 일주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제가 드린 '거절하기' 숙제, 시도는 해보셨나요?"


그는 마른세수를 한 번 하더니, 마치 무용담이라도 털어놓는 병사처럼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화요일이었습니다. 점심시간 직전이었죠."


그의 기억 속으로, 그리고 상태창이 보여주는 로그 기록 속으로 우리는 함께 들어갔다.

사건의 발단은 옆 팀의 최 대리였다. 사내에서 일명 '업무 흡혈귀'로 통하는 인물. 웃는 얼굴로 다가와서 교묘하게 자기 일을 떠넘기는 데 도가 튼 사람이다. 민재 씨는 지난 5년간 그의 가장 좋은 먹잇감이었다.


"강 과장님, 바쁘세요?"


최 대리가 커피 한 잔을 들고 민재 씨의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민재 씨의 뇌는 자동반사적으로 반응했다.


[ 조건 반사 발동 준비 ] 입력: "바쁘세요?"

출력 예정: "아뇨, 괜찮아요. 무슨 일이세요?"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내 상담실에서 받아 간 처방전, '착한 아이의 장례식' 퀘스트가 그의 뇌리에서 브레이크를 걸었다. 민재 씨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어... 지금 좀 보고서 정리 중이라서요."


"에이, 강 과장님 능력자시잖아요. 이거 10분이면 하잖아요. 제가 이번에 급한 미팅이 잡혀서 그런데, 엑셀 정리만 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강 과장님 엑셀 함수 신이시잖아요."


최 대리의 필살기. 칭찬을 미끼로 죄책감을 자극하는 화법이었다. 평소의 민재 씨라면 여기서 무너졌다. "아, 네... 뭐 금방 하니까요. 줘보세요."라고 말하며 자신의 점심시간을 반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민재 씨의 눈앞에 나의 경고가 환청처럼 들렸다고 했다. '내 시간과 에너지는 내 겁니다. 남을 위해 나를 태우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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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과 기억, 진실과 왜곡 사이에서 마주한 이야기들을 저서 《뇌의 배신》, 《흔들리는 전문가》 시리즈를 통해 서사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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