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웃고 있는데 경고등이 뜨는 남자

6화: 타인을 실망시킬 용기에 대하여

by 흔들리는 전문가

착한 아이의 장례식


상담실의 공기는 무거웠다. 그 무게감은 침묵의 무게가 아니라, 한 사람이 평생 억눌러온 거대한 댐이 마침내 수문을 열기 직전에 내는 진동과 비슷했다.


민재 씨는 울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우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눈가에 맺힌 수막을 어쩌지 못해 당황하고 있었다. 그는 손수건을 꺼내는 대신, 습관처럼 입꼬리를 다시 끌어올리려 애썼다. 그 모습이 마치 고장 난 기계가 필사적으로 초기 설정값으로 돌아가려는 오작동처럼 보여, 나는 짐짓 차가운 목소리로 그 시도를 차단해야 했다.


"안 웃으셔도 되요."


"네?"


"지금 억지로 웃으려는 거, 그거 습관입니다. 생존 방식이구요. 지금 이 공간에서는 그 습관, 잠시 꺼두셔도 됩니다. 여긴 감정의 무균실이거든요. 어떤 바이러스 같은 감정을 쏟아내도 안전하다는 뜻입니다."


그는 멈칫했다. 입가에 걸려 있던 어색한 미소가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그러자 그 자리에 아주 낯선 표정이 드러났다. 그것은 슬픔이라기보다는 지독한 피로감이었다. 36년 동안 단 한 번도 퇴근하지 못한 경비원의 얼굴이 저럴까.


그의 머리 위에 떠 있던 상태창도 요동치고 있었다. 회색빛 노이즈가 걷히고, 심층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하고 있다는 로딩 바가 느릿하게 차오르고 있었다.


[ 시스템 알림 ] 심층 기억 데이터(Deep Memory) 접근 승인. 암호 해독 중...

키워드: 장남(The Eldest), 생존(Survival), 눈치(Sense).


나는 모니터를 돌리는 대신, 그가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질문의 방향을 과거로 돌렸다.


"민재 씨. 아까 제가 '누구에게 학습된 생존 방식인가'를 물었었죠. 기억나십니까?"


"네..."


"민재 씨의 어린 시절은 어땠나요? 아주 착한 아이였을 것 같은데."


그는 잠시 허공을 응시했다. 시선이 닿는 곳에 30년 전의 풍경이 펼쳐지는 듯했다.


"네. 착하다는 소리, 지겹게 듣고 자랐죠. 부모님은 늘 말씀하셨어요. 우리 민재는 손이 안 가는 아이라 너무 고맙다고. 동생들이 사고 칠 때도 저는 알아서 숙제하고, 알아서 준비물 챙기고... 부모님 싸우시면 제가 중간에서 분위기 풀고 그랬으니까요."


상태창에 새로운 로그가 떴다. 그것은 자랑스러운 훈장이 아니라, 아이의 영혼을 갉아먹은 상처의 기록이었다.


[ 과거 로그 재생 ] 발화자: 어머니

내용: "민재야, 너는 형이잖아. 네가 참아야지. 너까지 엄마 힘들게 하면 엄마 죽어."

각인된 사고(Cognitive): 나의 욕구 표출 = 엄마의 고통 = 나의 죄악.

"그렇군요. 손이 안 가는 아이. 부모님께는 그보다 더 편한 자식이 없었겠지만, 임상가인 제 입장에서 보면 그건 가장 슬픈 칭찬입니다. 아이는 손이 가야 합니다. 떼도 쓰고, 울기도 하고, 억지도 부리면서 부모의 손길을 요구해야 하죠. 손이 안 갔다는 건,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욕구를 거세했다는 뜻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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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과 기억, 진실과 왜곡 사이에서 마주한 이야기들을 저서 《뇌의 배신》, 《흔들리는 전문가》 시리즈를 통해 서사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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