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당신의 가치는 타인의 타자 속도에 있지 않다
민준 씨의 상태창은 더 이상 붉지 않았다. 물론 푸른색이라고 해서 바다처럼 완전히 평온한 것은 아니다. 그의 뇌는 여전히 부지런히 재난 영화를 제작하고 있었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예고편만 깔짝 나오다 말고 본편은 영원히 상영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온 그는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분해되어 가루가 되기 직전의 펜도, 불안을 적어 내려가던 메모지도 없었다. 심지어 생명 유지 장치처럼 손에 꼭 쥐고 있던 휴대폰조차 주머니에 깊숙이 넣은 채였다. 이건 임상 현장에서 볼 때 상당한 사건이다. 인간이 모든 무기를 내려놓고 적진 한복판인 전장에 입장한 수준의 용기니까.
그가 자리에 앉자 내 망막 위 상태창이 반응했다.
[자동 회피 루프: 비활성화] [수동 선택 모드: ON]
“선생님, 저 어제 회의에서 말을 두 번이나 했어요.”
그가 쑥스러운 듯, 그러나 분명하게 말했다. ‘말 두 번’은 남들에게는 일상이지만 그에게는 거의 대담한 연쇄 범죄에 가까운 도전이다. 심박수는 평소처럼 올라갔지만 그는 도망치지 않았다. 손톱을 세게 눌러 자국을 내지도 않았고, 물컵을 강박적으로 돌리며 물 높이를 맞추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공기를 가르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뱉었다. 상태창에서 경쾌한 효과음이 울렸다.
[스킬 획득: 존재감 표시 Lv.1]
“말하고 나니까 사람들이 그냥 듣고 다음 얘기를 하더라고요. 아무도 저를 평가하지 않았어요.”
그의 뇌가 25년 만에 처음으로 깨달은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을 평가할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들 자기 PPT 다음 장 넘기기에 급급하고, 점심에 뭐 먹을지 고민하느라 바쁘다. 타인의 실수를 포착해 비난할 만큼 인지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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