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수함을 특별함으로 키워준 사람들
‘앗, 모글리다!’
여덟 살 훈이를 보자마자 떠오른 생각. 2초 뒤, 야생마처럼 교실 안팎을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녀석을 쫓느라 더 이상의 소감은 사치였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두 달 지나 만난 훈이는 ‘예고편’을 달고 온 학생이었다. 수업을 마친 오후, 교감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교무실에는 4학년 교사가 먼저 와 있었다.
“내일 두 형제가 우리 학교에 올 예정입니다. 그런데…”
이어진 설명은 당최 ‘접수’가 안 됐다. 분명 한국말이고 어려운 단어도 없었건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음주, 폭행, 방화. 4학년 형에 대한 설명에 포함된 낱말들이었고 훈이를 가리키는 단어는 ‘3 불가’였다. 대화 안 됨, 쓰기 불가능, 앉기 기대난망.
‘소년원과 상담소에 가야 할 아이들이 왜 학교에 오지?’
4학년 담임과 나는 눈빛을 교환했다. 묻지 않아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번 전학생 차례는 우리 반이 아닌데요?”
4학년 교사가 소심한 반항을 해보았다.
“알지요. 2학년도 마찬가지예요. 경력 있는 선생님들이 맡을 수밖에 없는 학생들이잖아요. 나도 열심히 도울 게요. 부탁드려요.”
교감선생님의 간곡한 요청. 두 반에 불과한 2학년, 내년이 정년인 선생님에게 원칙을 근거로 훈이를 맡기기엔 들은 설명이 너무 강력했다. 위로 형이 둘, 미취학 연령의 여동생이 둘인 훈이네는 형들의 눈부신 활약(?)으로 다니던 학교와 살던 지역 주민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지경이었다. 자녀 모두 특수학급에 해당될 지적 수준임에도 일자리를 찾아 반년에 한 번꼴로 거처를 옮기는 탓에 가정은 물론, 학교에서도 적절한 지원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주보호자인 어머니 역시 대화가 쉽지 않아 학생에 대한 상담도 원활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전 학교 관계자의 설명이었단다.
학생 수 25명, 이미 만만치 않은 친구도 꽤 있는데 훈이까지 더해진다니 이를 어쩌나. 피할 수 없지만 도저히 즐길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도 대비는 해야지. 모글리를 맞을 준비에 착수했다. 먼저 특수학급(학습 도움반) 교사의 도움을 요청했다. 들은 정보만으로도 이 친구의 첫날을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고 생각해 전학 첫날 한 시간 만이라도 따로 맡아 줄 것을 부탁했다. 동시에 교감선생님에게는 훈이 보호자가 바로 도움반 신청을 설득해 달라고 요청했고, 다른 교직원들에게도 훈이 정보를 알리고 혼자 돌아다니면 내게 연락 달라고 당부했다. 당시 특수학급을 맡았던 L 교사는 임용고사 준비 중인 기간제로 이 학교가 첫 직장인 새내기였다. 아직 도움반 학생이 아니었기에 거절하면 그뿐인 SOS였음에도 그는 기꺼이 어려운 부탁을 들어주었다.
첫 만남, 학급에서 인사는 할 수 있겠지 했는데 훈이는 그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얼굴 가득한 생채기였다. 형제들끼리 씨름하듯 눌러놓고 상처 내기 놀이를 하곤 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형제 중 가장 어렸으니 늘 사냥감이 되었나 보다. 낙서 마냥 그어진 상처투성이 얼굴을 보는 순간 말을 잃었다.
낯선 생태계, 처음 보는 여자 어른 인간, 휘둥그레진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25명의 작은 생명체들. 다정히 웃어준다고 훈이가 나를 믿을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최선을 다해 도망치던 모글리는 L에게 잡혀 도움반으로 향했다. 결국 우리 반에는 5분도 채 머물지 못했고 하루 종일 특수학급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날 이후 훈이는 온통 L의 차지였다. 우리 반에는 기껏해야 한 시간에 10분이나 됐을까, L 입회하에 스쳐가듯 머물 뿐이었다. 자기보다 몸집이 작은 아이들과 눈이 마주치면 알 수 없는 괴성과 함께 덤벼들기 일쑤인 훈이는 야생 그 자체였고, 성인 남자인 L 정도 돼야 간신히 대처할 수 있었다. 담임은 말일뿐,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더욱이 일주일 뒤 나는 뜻하지 않은 암 진단으로 휴직을 해야 했다. 꿈에서도 예상 못한 일이었다. 평생 가장 힘겨운 순간을 맞이하니 훈이고 L 선생이고 당연히 관심 밖, 연말에 복직하고 나서야 비로소 훈이의 빈자리를 알아차렸다. L에게 물으니 모든 절차와 심사를 마치고 특수학급 학생이 되기 직전, 말 한마디 없이 다른 지역으로 전학을 가버렸다고 했다. 공공근로 일자리가 생겼다는 것이 이유였단다.
“훈이 많이 성장했는데 선생님 못 보셔서 속상하네요. 처음에는 교실 밖으로 달아나기 바빴는데 활동에 재미 붙이니까 나중에는 ‘도움반 못 오게 할 거야.’라고 하면 금방 말을 탔어요. 집에 가라고 해도 자꾸 안 가고 해서 애 먹은 적도 많았다니까요. 짧은 단어지만 문장으로 말도 하고, 얼굴 상처도 거의 없어졌어요. 소리 내 웃는 모습 보셨어야 했는데. 사진 보여드릴게요, 몰라보시겠지요? 갑자기 전학 가버려서 많이 서운했어요. 잘 지내는지 걱정도 되고.”
사진 속 훈이는 누가 봐도 개구쟁이 2학년. 눈을 번쩍이며 으르렁대듯 알 수 없는 의성어를 내뱉으며 교실을 뛰어다니던 모글리의 흔적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정식 특수학급 학생도 아닌데 몇 달 동안 훈이를 돌보고 가르친 L은 그런 구분 따위 애초에 계산에 없는 것 같았다. 교감선생님 말을 듣고 내심 차례도 아닌데 모글리를 맡았다며 속상해했던 스스로가 몹시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사회복지사에게 요청하여 훈이네 집의 생활 형편과 위생 상태까지 정기적으로 살폈다. 전학 간 학교 특수교사에게 연락, 도움반 입급을 마무리했다는 후속조치까지 전달받고 나니 L의 정체가 의심스러웠다.
“선생님, 솔직히 말해. 신규 아니지? 비슷한 일 하다가 이번에 교사 자격증만 받은 거지?”
“에이, 아니에요. 봉사활동은 해봤지만 학교는 처음이에요.”
“그런데 이렇게까지 한다고?”
“선생님도 학교에 계속 계셨으면 저처럼 하셨을 거잖아요.”
아니, 고백하건대 절대로 L처럼 하지 못했다. 나는 사람이지 천사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