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50대의 투덜투덜 일기

- ‘내 나이 돼봐’ 속으로 되뇌는 나이

by 가을투덜이

50대, 이 땅에 발을 디딘 지 반백년 넘은 나이. 여생을 살기엔 짱짱하고 도전과 열정으로 살아가기엔 지나치다 싶은 시기. 나는 8년째 50대를 살아가고 있다.


30살이 될 때는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부르며 청춘이 지나가는 것처럼 슬퍼했고(돌이켜보니 어이가 없다. 청춘의 한가운데 살고 있는 것도 모르고), 40살 첫날은 맥주를 홀짝거리며 눈물을 흘렸더랬다. 혼자 사는 인생, 가속도 붙은 내리막길의 첫 지점인 것 같아서. 싫지는 않지만 딱히 좋지도 않은 내 삶이 이대로 계속될 것 같은 불안함에 그랬나 보다.

50살의 첫날?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중병을 앓고 나니 50대를 맞이한 것만으로도 반갑게 느꼈던 걸까, ‘청년’에서 ‘중년’으로의 변신은 충격이었지만 ‘중년’에서 ‘장년’으로의 이동은 거기서 거기라 생각된 건지, 아무튼 큰 저항 없이 지천명(知天命)을 맞이했다고 기억한다.


진입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지만 살아보니 50대의 삶은 쉽지 않았다. 젊은 시절 카페에 앉아 있노라면 항상 시끄럽던 자리, 그곳에는 늘 ‘아줌마’들이 있었다. 다른 이들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격렬하게 대화를 나누는 무람없는 태도에 진저리를 쳤는데, 이젠 그 자리에 내가 앉아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고 있다. 관절이 쑤신다, 아무리 굶어도 살이 안 빠진다, 부모님 요양병원은 어디가 좋다, 요즘 젊은 애들은 개념이 없다 등등. 남편과 자식 이야기가 빠졌다는 차이는 있지만, 내 이야기가 너무도 중해서 공공장소의 매너는 당연히 후순위가 돼야 마땅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인다는 특징은 다를 게 없다. 30년 전 내가 그랬듯 어이없는 눈빛을 보내는 젊은이의 시선에 흠칫하는 것도 잠시, 그들에게 무언의 답을 보낸다.


‘내 나이 돼봐. 너도 내 모습 고대로 늙어있을 거란다.’


30대 중반, 늦깎이로 학교에 발령받고 만난 50대 교사들은 왜 그리 무기력해 보였는지. 모든 문서의 전산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시기, 컴퓨터를 다루지 못해 쩔쩔매던 그들은 수시로 젊은 교사를 교실로 불러댔다. 한 번은 그럴 수 있는데 당연한 듯 자기 일을 연신 후배에게 맡기는 그들을 보며 ‘절대 저런 경력교사는 되지 말자’ 다짐했었다. 웬걸, 지금의 나는 하루에 수십 개씩 쏟아지는 메시지를 클릭하기에도 벅차 바빠 내용을 읽고, 해석할 엄두를 내기 힘들다. 첫 줄부터 이해가 안 되면 일단 전화로 S0S를 보내기 일쑤인 나, 이래서 입 찬 소리는 하는 게 아니었다. 양심이 있어 당당히 꺼내지는 않지만 속으로는 ‘내 나이 돼봐’라는 말을 달고 산다. 언젠가는 아예 이 말을 당당히 내뱉으며 살 것 같아 두렵다.


뿐인가, 언제부터인가 교내 메신저를 통해 질문이나 의견을 내면 문자가 아닌 직접 교실로 찾아와 답을 주는 후배 선생님들이 늘어나고 있다. ‘동방예의지국’을 강조하던 2000년대 초반, 버릇없이 문자로 조퇴를 알렸다고 부들부들 떨던 관리자의 모습이 겹쳐지며 나를 돌아보게 하는 현상이다. 내가 꼰대처럼 행동한 건 아닐까 생각할 때도 있지만 그와 내 나이만큼의 간극 때문일 거라고 해석하고 싶다. 그 거리를 얼굴 보고 소통하는 예의로 채우려 노력하는 착하고 바른 후배 선생님들의 마음은 짐작되지만 속으로 투덜거리게 된다.


‘내 나이 돼 봐요. 바쁜 것 뻔히 아는데 대답 한마디 하려고 계단 오르내리는 선생님 보면 진짜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문자로 답해도 해치지 않아요.’


동년배 교사와 사는 이야기를 나누던 어느 날, 회식 풍경이 주제가 되었다.


“고깃집 회식 좀 안 했으면 좋겠어. 어쩌다 내가 고기 한번 자르려고 하면 양 옆 후배 선생님들이 어쩔 줄 몰라하는 거야. 자기가 하겠다며 날쌔게 가위를 가져가 버리니 마음이 불편해.”

“뭘 그런 복에 겨운 고민을. 우리 학년 20대 선생님은 먹을 줄만 알던걸. 나도 마음이 꼬였지, 그게 그렇게 보기가 싫어요. 회식 날이면 그렇게 내 자식을 잡게 되더라고. 눈치 챙겨가며 사회 생활하라고.”


가만히 있어도, 가만히 있지 않아도 마음 불편한 처지가 된 것 같다는 것이 그날 대화의 결론이었다. 좋든 싫든 무게감이 느껴지게 되었다고나 할까. 주민등록증 숫자만 보면 자신과 주변을 책임질 능력이 충분한 능력과 성숙미를 지녀야 마땅할 것 같은데 정작 덜 익은 감정과 인성에 머무른 채 지성과 체력만 감퇴하고 있는 것 같아 두려워진다.


나이 먹었다고 사람이 변할까. 평생 투덜거림을 입에 달고 살아온 나는 나잇값을 못할까 걱정하기보다 그냥 내게 다가온 불편함을, 느껴지는 불안함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려 한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애처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 “알고 보니 꼰대시네요”라 해도 어쩔 수 없다. 비록 하늘의 명은 아직 깨닫지 못했지만, 내 마음속 소리 만이라도 정성스레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도 나는 투덜거린다. 세상을 향해, 스스로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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