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할 게’가 짐이 되지 않으려면
“오늘 난리 났었어.”
주간보호센터에서 돌아온 엄마는 옷도 벗기 전 숨 가쁘게 그날 벌어진 일을 전했다. 점심 먹고 휴식 시간이 끝날 때쯤 90세가 조금 넘었다던가, 어떤 할머니가 한쪽 눈이 시퍼렇게 멍들고 입술이 부풀어 오른 채 비틀비틀 엄마 쪽으로 걸어오더라는 거였다. 깜짝 놀란 엄마가 황급히 직원들에게 알린 뒤 센터는 119를 부른다, 가족에게 알린다, 사고 경위를 파악한다 한바탕 소동이 일었단다.
“엄마도, 센터 사람들도 많이 놀랐겠네. 어쩌다가?”
“점심 먹은 뒤 침대에서 쉬고 일어나다 떨어진 것 같더라고.”
“90 넘은 분이 혼자 침대를 오르내리게 했다는 거야? 누가 지켜보지도 않았고?”
“말도 마. 그 양반 성질이 얼마나 대단한데. 누가 도와주겠다고 손만 까닥해도 난리 나. 혼자 할 수 있으니 내 몸에 손대지 말라고. 쳐다보기만 해도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통에 가족들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대.”
엄마에게는 “절대 혼자 할 수 있다 고집부리지 말고 뭐 하나라도 꼭 직원들 도움을 받으시라” 잔소리를 했지만 괜히 속이 편치 않았다. 누가 봐도 아집으로 똘똘 뭉친 행동이지만, 할머니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숨만 조금 거칠게 쉬어도, 한 걸음만 비틀거려도 받게 되는 관심과 지원, 분명 필요한 도움일 테니 고맙기는 하지만 그때마다 조금씩 쌓여가는 무력감. 어쩌면 그분은 그 무게가 싫어서 철옹성 같은 마음의 벽을 쌓아 올린 게 아닐까.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그 할머니에게서 내 모습이 보인다. 30년 뒤가 아닌 현재진행형의 내 모습이.
젊은 시절, 독립적인 삶에 목을 맸던 나는 타인의 도움에 민감한 편이었다. 농담 삼아 “혼자이기 때문에 못하는 것은 아버지 노릇 밖에 없다”는 말을 하곤 했지만 절반은 진심이었다. 문제가 생기면 후다닥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이들이 당최 이해되지 않았다. 내 삶의 주인은 나인데 왜 다른 사람이 차지할 빌미를 주나 싶었다. 노력으로 안 되는 일이 있을까 보냐, 할 수 있는 한 혼자 해결하려 애썼고 그렇게 사는 스스로가 대견했다. 다른 이를 도와주는 데 인색하지 않았지만 습관처럼 SOS를 요청하는 이들을 내심 한심해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걸 알았다면 그런 오만함을 가지는 게 아니었는데. 50대 후반에 접어드니 지, 덕, 체 모든 영역의 기능이 뚝뚝 떨어진다. 예전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일들조차 감당하기 버거울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특히 학교 현장에서 종종 자괴감을 느낀다. 업무를 추진할 때 예전 같으면 당연히 내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젊은 교사들이 참신한 감각을 발휘하며 척척 일처리 하는 것을 보니 슬금슬금 뒷걸음치게 된다.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라는 유행어) 눈치라도 챙겨 다행이다 여기며.
일상생활에서도 내리막길의 가속도가 붙었다. 젓가락질을 하다가 손가락 힘이 떨어져 반찬을 놓치기도 하고 매운 기운이 잘못 넘어가기라도 하면 기침을 멈추기 쉽지 않다. 다리가 상체를 따라오지 못하고 고꾸라질 뻔한 경험을 한 뒤 횡단보도에서 절대 뛰지 않기로 했다. 얼마 전 약속 장소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이용하며 반대방향으로 환승하는 바람에 30분이나 늦은 적도 있다. 예전의 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른 약속에서는 동갑 친구가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5분만 늦어도 불을 뿜던 나지만 당연히 조금도 화내지 않았다.)
사물이고 사람이고 왜 이리 이름이 가물가물한지. “왜 그거 있잖아” “저 사람이 거기에서 그렇게 말했거든” 등등. 지시대명사가 대화 대부분을 차지하거나 맥락과 상관없는 말을 하면서도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수업 도중 ‘쉬는 시간 에어컨 틀어야지’ 속으로 생각하다 질문한답시고 한 친구를 “에어컨!”하고 불러 교실이 뒤집어진 적도 있다. 학생들은 웃겨서, 나는 절망해서.
마음자리는 또 어떻고. 예전에는 그러려니 했던 일상들이 그냥 넘어가지지 않는다. 누가 도와주면 배려가 아닌 동정으로 여겨 노엽고, 내게 무심하면 그건 또 그것대로 섭섭하다. 귀가 순해지기는커녕 날로 뾰족해져 내 생각과 다른 이야기들은 고깝게만 들린다. 살아온 시간의 흔적이 지혜로운 경험으로 자리할 때도 있지만 순식간에 꼰대력(?)으로 흑화 한다. 노년기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50대 후반의 삶, 정말 쉽지 않다.
슬기로운 자기 주도 생활은 어떻게 가능할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도움이 필요한 일을 지혜롭게 구분하여 무력하지도, 의존적이지도 않은 삶을 일구어 나갈 방법은 무엇일까. 할 수 있는 것과 하기 힘든 것, 할 수 없는 것의 리스트를 만들고 매번 항목을 넣고 빼가며 관리하면 되려나, ‘내가 할 수 있어’라고 말해도 도움의 손길이 세 번 이상 계속되면 그냥 받아들이기로 방침을 정해볼까, 아니면 상대방의 표정을 살피고 눈치껏 행동하면 되는 건지.
정답은 잘 모르겠다. 정답이 있기나 할까. 자기 주도적인 삶과 자기중심적인 삶은 어쩌면 종이 한 장 차이일 텐데. 누구나 자신이 선택한 삶의 방식에 대한 결과를 감당하며 살뿐인 것을. 그 결과가 자신을,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면 돌아보고 조절하는 마음을 가지면 되지 않을까.
할머니가 빨리 완쾌하시면 좋겠다. 비록 살아온 시간의 무게에 노화라는 증세가 더해져 완고함의 벽을 허물기 쉽지 않겠지만 얼굴의 멍이 사라질 때쯤 마음의 벽도 옅어져 있기를 마음 가득 바라본다. 나도 ‘스스로 서기’의 의미를 다시 새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