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해지진 못해도 미워해선 안 될 미래의 생필품
“내가 빨리 죽어야 이 꼴을 안 당하지.”
“한 번만 더 그 소리 하면 뛰어내릴 거야. 나 먼저 가는 거 보려면 또 죽는다고 해요.”
눈이나 깜짝했을까, 엄마는 틀니를 집어던지며 절규했다.
“독한 것, 내가 꼭 죽고 싶어 그랬냐. 투정 부리는 거지. 꼭 그렇게 똑같이 윽박질러야 속이 시원해? 맨 정신으로 기저귀에 볼일 보는 심정을 네가 알아!”
결국, 그거였구나.
식사를 영 시원찮게 하시니 돌아오지 않은 입맛 때문인가, 맘처럼 끼워지지 않는 틀니 때문인가 싶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 일주일 되던 날, 화장실에서 직접 양치를 해야겠다며 기어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주렁주렁 달고 있는 링거와 소변 줄, 무엇보다 다리 힘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았으니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딸의 도움으로 입을 헹구고 5분이나 지났을까, 음료 한 잔 마시고 다시 양치하러 가겠다는 말에 한마디 얹은 결과가 이거였다. 사실은 직접 화장실에 가고 싶었던 거겠지. 맘대로 두 발을 움직일 수 없는 절망, 알아주지 않는 서운함을 엄마는 거를 틈 없이 쏟아냈다.
아버지가 우리 곁을 떠난 지 한 달, 아무래도 충격을 감당하기 어려웠나 보다. 오한과 미열이 낫지 않아 응급실로 향한 엄마의 병명은 패혈증. 병실 침대에 누워서도 굳세게 당신 발로 화장실 가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덜덜 떠는 엄마를 동생이 업다시피 하여 뜻을 이뤘단다. 데자뷔인가, 아버지도 그랬다. 뇌경색으로 쓰러져 꼼짝없이 누워 있다 다리 힘이 조금 생기자마자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다. 뿐인가, 원인을 알 수 없는 폐렴으로 입원한 뒤 산소통과 온갖 약병을 매달고도 기저귀는 근처도 못 오게 했다. 결국 숨을 헐떡이는 아버지를 화장실에 앉혀놓고 동생은 기가 막혀 눈물도 나지 않더란다. 그 모질고 독한 기저귀 전쟁의 서막이 다시 오른 것 같아 우리 두 자매는 엄마의 퇴원을 마음껏 안도할 수 없었다.
기저귀, 그까짓 게 뭐라고. 화장실만 두 발로 가면 삶을 책임질 수 있나. 당신들 손으로 할 수 없는 게 하나둘이 아닌데 이렇게까지 자식들을 힘들게 하나. 옆에서 수발드는 일은 쉬운 줄 아시나. 유쾌할 수 없는 상황임은 분명하지만 어쩔 수 없다면 성숙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냐고 마음으로, 눈빛으로 외친다. 언젠가는 엄마에게 대놓고 말하게 될까 두렵다.
모리 슈워츠 교수(브랜다이스 대학에서 35년을 가르친 교수. 루게릭병에 걸린 후 자신의 상태와 죽음을 성숙하게 받아들인 격언들로 감동을 주었고 제자인 미치 앨봄이 쓴 저서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은 지금까지 많은 이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온전히 의존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결국 한 번 더 아기가 되는 것이니 그 과정을 즐기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즐기는 경지까지 바랄 수는 없어도 안전도 무시하고 화장실행을 고집하거나 자식에게 감정을 쏟아 내다니 너무한 거 아닌가.
뼈에 새겨 놓아야지. 기저귀와 인간의 존엄은 아무 상관이 없다.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혼자 숟가락 들 수 있고 걸어서 화장실에 갈 수 있다면 천행일 테지만 그럴 수 없다면 깨끗이 인정하고 기저귀와 친해지자. 자식 있는 친구들을 붙잡고 열변을 토했다. 제발 자식들 피 말리지 말고 받아들일 건 순순히 받아들이라고. 염불 외듯 하루에 한 번씩 머리에 넣어놓으라 당부했다.
사실은 나도 안다. 노화의 끝판 왕, 완벽한 의존의 대명사가 기저귀이며 내리막길의 종착지 ‘자리보전’의 징표임을. 아기들의 홀로서기 첫걸음이 기저귀를 떼는 것이다. 수십 년 지나 그 녀석과 재회하여 홀로서기를 포기하게 되리라고 꿈에라도 생각했을까. 그러니 어떻게 저항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모리 교수 같기가 어디 쉬운가. 누구나 할 수 없으니 감동으로 기억되는 거지. 그런 모리 역시 천천히 약해져 갈 때 가장 두려운 것이 “누군가 내 엉덩이를 닦아 줘야만 하는 순간”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사고 때문이라면 정해진 기간만 겪으면 되는 일이다. 끝이 언제인지 모를 마지막까지 이 녀석과 함께해야 하는 삶이 내 몫이 된다면, 모리 교수도 아닌 내가 ‘성숙한 태도로’ 이 과정을 ‘즐기며’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인간다움을 잃었다는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날마다 기도하듯 새기면 정말 감정의 요동 없이 받아들일 수 있으려나.
퇴원 후 집에 온 엄마는 자식들의 성화에도 혼자서 화장실행을 고집하더니 결국 제대로 넘어지는 사고를 쳤다. 곳곳에 들었던 멍 자국이 옅어지자 화장실은 직접 가더라도 입고 있기는 하자고 ‘합의’했던 기저귀마저 마다했다.
나는 더 이상의 입씨름 대신 가정용 보안카메라를 설치하고 미끄럼 방지 매트를 깔았다. 거들떠도 안 보는 비데 사용법을 반복해서 알려드리고 있다. 같이 사는 동생도 꼭 도움을 요청하기로 다짐받고 기저귀를 포기했다. 그마저 지키지 않으니 한숨을 쉬며 밤에도 두세 번씩 일어나 엄마를 살피는 중이다.
엄마와의 기저귀 전쟁은 아무래도 딸들의 완패로 끝난 듯하다. 말해봐야 입만 아프기도 하지만, 도저히 친해지지 않을 것 같은 이 녀석을 하루라도 늦게 만나고 싶은 심정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저귀와 인간다움을 연결 짓는 당신을 이해 못 했다기보다 보호자의 피곤함이 더 컸던 게 사실이니까.
토요일 저녁, 침대에 누운 엄마 곁에 슬며시 누워 마음속으로 말했다.
‘엄마, 두 발로 화장실에 가실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옆에서 잡아드릴게요. 그 대신 꼭 같이 가자고 말해주세요. 하지만 언젠가 몸을 일으키기 힘든 날이 온다면 너무 비참해 말고 기저귀랑 친해졌으면 좋겠어요. 그 이후의 삶이 마냥 불행한 것만은 아닐 거예요. 혼자 힘드시지 않도록 저도 노력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