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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투덜이 Oct 29. 2024

셰어 하우스를 결심해 볼까

- 싫은데 사라지지 않는 너, 어떡하지?

 눈을 떴다. 오전 6시 5분. 늙으면 없어진다는 아침잠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나로서는 기적에 가까운 시각. 조금의 지체함도 없이 벌떡 일어나 거실 창문을 열어젖혔다. 


 ‘양심이 있으면 이젠 사라졌겠지.’     

 소원이 이뤄진 줄 알았건만 웬걸, 햇빛이 비추자 반갑지 않은 영롱함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베란다 난간 정면에 두 개, 창문가 양쪽 상중하로 각각 하나씩 여섯 개, 총 여덟 개가 새로 생겼다. 졸지에 거미집 빌라가 된 베란다. 자세히 살펴보니 방충망에도 동심원을 그리며 살뜰하게 거미줄이 펼쳐져 있다. 도대체 너는 왜 방충망에도 마수를 뻗은 거냐. 저도 보는 눈이 있으니 닮은 꼴을 활용하여 거미집 만드는 수고를 덜어볼까 나름 머리를 쓴 게 아닐까 싶다.     


 자세히 보니 베란다 위쪽 틈새에는 비상식량까지 하얀 거미줄을 돌돌 만 채 고이 모셔져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철거작업을 한 지 열흘째. 녀석은 멈추기는커녕 집의 개수를 늘리고, 크기를 키우고, 저장 창고를 만들어 놓더니 다른 친구들까지 초대했다. 창의력을 발휘하여 방충망에도 펼쳐놓은 거미줄을 보고 있노라니 이젠 전투 의지가 사라질 지경이다. 말이 통하면 협상이라도 해보련만, ‘거미보호구역’을 지정해 줄 테니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고 각자 평화롭게 살자고. 아쉬운 건 나일뿐, 이 친구는 조금도 그럴 의사가 없어 보인다.      


 한숨을 쉬며 오늘도 빗자루를 들지만 열의는 없다. 정작 집 짓는 녀석은 없애지도 못하면서 눈에 보이는 거미줄만 없애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고, 자칫 거미가 딸려 와 집 안에 들이는 꼴이 될 수도 있으니 조심스럽다. 외벽까지 이어진 거미집을 철거할 때면 베란다 난간 밖으로 몸을 내미는 위험도 감수해야 하니 새벽 댓바람부터 생명까지 걸고 이럴 일인가 ‘현타’가 온다.

 그렇다고 외면은 쉽지 않다. 거미집, 폐가의 상징 아닌가. 얼마나 집 관리를 소홀히 했으면 거미가 주인 행세를 하냐고 손가락질하겠지. 무엇보다 모른 체하면 하루가 멀다 하고 늘어날 거미집과 거기에 걸려들 식량(?)들이 도저히 참아질 것 같지 않다.     


 만물박사 검색창을 두드려본다. 해를 끼치는 생물은 아니니 참을 수 있으면 참아라, 청소를 자주 해라, 해충 퇴치용 스프레이나 거미가 싫어하는 감귤류 액체를 뿌려라 등 알고 있는 정보들이 대부분. 더욱이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고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내 영역 밖에 존재하는 거미집을 사라지게 하는데 유용해 보이지 않는다. 두고 보자니 참아지지 않고 내 눈에서 사라지게 할 방법은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까. 언제까지 아침마다 베란다를 향해 공허한 빗자루 질을 계속해야 하는 걸까.     


 요 얄미운 녀석과 A의 모습이 오버 랩 된다. 연락이 닿을 때마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 바쁜 그. 어떤 주제나 대화도 결국은 자신의 불행함을 다독여 달라는 요구로 끝나니 내가 먼저 찾을 일 없는 관계가 된 사람이다. 내가 저를 달갑지 않게 여긴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주면 좋으련만, 그는 나의 생각 따윈 전혀 관심 없다. 아쉬울 때마다 꿋꿋하게 내 영역으로 들어오려 하는 그를 끊어낼 수도 없고 참아내기도 힘들다. 그래서 A의 메시지가 뜨는 날이면 평소 모습을 잃고 자꾸 헛짓을 한다. 달라지지 않을 걸 알면서 한소리 걸쳤다 결국 큰소리를 내고 대화를 끝내거나 소화하지 못한 분노를 뒷담화로 풀고 그런 내 모습이 한심하여 머리를 쥐어뜯는 일을 반복한다.      


 이 망할 거미가 참아지지 않는 건 마음대로 되지 않는 A를 어쩌지도, 소화하지도 못하는 스스로가 못마땅해서인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내 것인 줄 알았던 공간에 반갑지 않은 존재가 슬금슬금 다가와 공동생활을 요구하고 있다. 아직도 열심히 노력하면 거미집을 완전히 퇴치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지만 점점 이 녀석의 존재를 어찌할 수 있는 건 내가 아니라는 생각이 커져간다.   

  

 내 집 밖은 내 소유가 아님을, 적어도 공유가 필요한 영역임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거미줄을 보며 ‘음, 지난번 보다 더 크고 화려해졌군’ 느긋하게 생각하거나 창틀 꼭대기에 붙어 내 힘으로 털어낼 수 없는 저장식량(?)을 보며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를 본받아야겠는 걸’ 여기는 내공을 쌓을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거미란 녀석, 생김새, 하는 행동, 남긴 흔적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으니 곁에 있다는 사실이 못마땅하기 짝이 없다.      


 거미가 자발적으로 내 곁에서 사라져 주면 좋을 텐데. 그게 아니라면 내 힘으로 어쩌지 못할 것들을 향해 의미 없는 빗자루 질을 계속하는 헛수고라도 멈출 수 있기를, 싫어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과의 셰어하우스를 받아들이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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