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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투덜이 Oct 06. 2024

나는 오늘도 학교 폭파를 막았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에게 혼났다. 우울증이 와서 토할 것 같았다. 학교를 폭파해버리고 싶다.


 날마다 제출하는 두 줄 글쓰기, 과장이의 공책에 적힌 내용이다.      

 음, 폭파 음모를 신고해야 할까. 우울증 증상으로 ‘구토’를 추가해야 할 것 같다고 정신의학계에 알려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 나는 답 글부터 적어주기로 했다.     


 학교가 없어지기 바랄 정도로 선생님의 꾸중이 힘들었나 보네. 학교 폭파는 불가능한 일이니 과장이가 우울해하지 않고 지낼 방법을 같이 고민해 보자.     


 그렇지 않아도 눈여겨볼 대목이 곳곳에 있던 녀석이었다. 1학기 끝 무렵에 전학 온 과장이는 아침 활동은 가뿐히 패스, 수업시간 친구들이 모두 필기할 때도 부동자세, 질문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그래, 소규모 학교에서 학생 수 많은 곳으로 왔으니 긴장해서 그럴 수 있지. 맨 앞에 앉히고 한 땀 한 땀 친절히 안내했다. 단 하나의 방학과제 없이 맨몸으로 덜렁덜렁 등교했을 때도 일단 지켜보았다. 혼자 힘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니 1일 1 도움 친구도 맺어주었다.

 2학기 들어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뛰어노는 모습에 제법 학급에 적응했다보다 생각했다. 웬걸, 네 자리수를 이용한 문장 만들기에 ‘예전 학교 친구들이 1000배는 더 좋다’고 적었길래 ‘굳이 이렇게 비교한다고?’ 살짝 당황했었다. 그러더니 수업시간 중 수학 문제를 풀지 않고 버젓이 교과서를 가방에 넣는 모습을 발견하고 주의를 준 결과가 이것이다. 우울증과 학교 폭파.      


 또 다른 어느 날, 징징이 보호자로부터 상담 요청 문자가 왔다.

 “징징이의 학급 생활이 궁금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요즘 어떤가요?”

 “특별히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무슨 일이신가요?”

 “징징이가 학교 가기 싫다고 울먹이며 등교했어요. 어제는 친구들이 자기만 따돌린다며 죽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문자를 읽고 있는 실시간으로 징징이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겠다며 내게 다가오는 중.  

 누구냐, 넌?


 아버지에게 차마 현재 징징이가 환하게 웃고 있으며, 죽고 싶다던 어제도 마지막 수업까지 발표를 위해 열 번 넘게 손을 번쩍번쩍 들었다는 말을 전달하기 조심스러웠다. 나 역시 그 감정의 온도차를 해석하기 쉽지 않았으므로. 교사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헛소리라고 할 것만 같았다. 그럼 내 자식이 연기하고 있다는 말이냐 따지면 뭐라고 답할 수 있단 말인가.      


 최근 들어 학생들의 감정, 특히 부정적인 감정 표현의 인플레이션이 지나쳐도 너무 지나침을 느낀다. 선생님(친구들)이 나만 미워한다, 우울증이 생겼다, 배가 아파 죽을 것 같다, 머리가 어지러워 걷기도 힘들다(지난해 이 같은 증상을 호소하여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간 허풍이의 진단명은 ‘꾀병’이었다), 학교 오기 싫다, 죽고 싶다 등등 대화만으로는 응당 중환자실이나 생명의 전화에 연결해야 할 것 같은 표현들이 날마다 쏟아진다. 동료 교사들 역시 비슷한 경험담을 털어놓으며 어려움을 토로한다.      


 인생을 8년 산 과장이와 징징이에게 묻고 싶다. 아니, 말해주고 싶다.     

 진짜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든 게 뭔지 아니? 손 하나 까딱일 힘도 없이 땅 속으로 꺼질 것 같은 기분을 정말 알고 하는 말이야? 그냥 아프다, 힘들다고 말하면 어른들이 귀 기울여주지 않는 거니? 혹은 너무 쉽게 여기저기서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런 과격하고 자극적인 표현에 익숙해져 버린 걸까?    

 

 손가락을 살짝 베이면 반창고만 붙이고, 부러졌으면 깁스를 처방하듯 속상한 마음만큼만 표현할 줄 알아야 해. 생각해 보면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그런 방법을 알려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구나. 선생님은 너희들이 많이 염려돼. 느끼는 마음만큼 나타내지 않으면 표현한 대로 마음이 바뀌기도 하니까, 10만큼 속상했는데 100 정도 서운하다 말하고, 실제 100 레벨로 마음 아파하는 하루하루가 될 수도 있단다. 날로 과격해지는 부정적 감정 표출, 그 책임은 어른들에게 있지만 결국 상처 입는 건 말하는 너희들이니까. 화나고 서운한 마음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스스로 살필 수 있는 과장이와 징징이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또 하나, 살면서 주의를 받거나 갈등이 생기는 일은 피할 수 없단다. 날마다 기쁘고 행복한 일들로만 채워지는 건 불가능하지. 나의 실수든, 상대방의 잘못이든 서운할 일은 늘 생기는 법이거든. 그러니 속상함도, 아픈 마음도 감당할 수 있는 단단함을 가지면 좋겠다.     


 이런 마음을 두 친구의 보호자에게 대신 전달했다. 다행히 나쁜 감정에 빠져 허우적댈까 염려하는 나의 고민을 편견 없이 믿어주었다. 부모로서 노력할 테니 선생님도 함께 고민해 달라는 부탁도 덧붙였다. 갈 길이 멀지만 보호자가 인정했으니 시작이 반인 셈. “내 새끼 상처받게 해 놓고 무슨 되지 않는 말이냐”라고 반발하여 상황이 더욱 악화되는 경우도 적지 않은 현실이라 학부모의 신뢰가 고마웠다.    

 

 숙제 한 번을 안 해오던 과장이가 수학 익힘책을 내밀었다. 30%만 정답, 나머지는 글씨조차 알아보기 어렵다.     


 “숫자를 알아보기 어려운 문제가 너무 많은데, 과장이가 학교 폭파한다고 할까 봐 말하기 겁나네. 어떻게, 선생님이 2번부터 4번까지 다시 고쳐 써오라고 하면 우울증 걸릴 것 같아?”

 “···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학교 폭파하고 싶은데 참는 건 아니고?”

 “(멋쩍은 듯 씩 웃으며) 아니에요. 그런 생각 안 했어요.”     


 휴우, 오늘도 학교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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