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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부장 Oct 27. 2024

프롤로그 - 어쩌다 1학년부장

2월, 교무실에서 전화를 받은 당신에게

  이 책을 집어든 당신은 1학년 부장을 맡아달라고 연락을 받았거나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1학년부장 자리를 놓고 누구한테 부탁해야 할지 고심하는 교감 또는 교장일 것이다.


  복직을 앞두고 다시 이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시절, 부장이란 먼 나라 얘기였다. 아이를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데려오기 전까지 주어진 5시간 중 식사시간을 제외한 4시간은 짧기만 했다. 쌓여 있는 집안일하고, 남은 자투리 시간에 겨우 도서관에서 책 빌려 읽고, 저녁장 봐서 자전거 타고 돌아오는 육아휴직자에게 복직조차 힘겨웠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등원한 2월 어느 날 복직하면 살림살이가 좀 나아질까 계산기를 두드려 보았다. 미뤄두었던 연금 납입금이 오르는 5월 전에 상환을 끝내려면 복직 후 첫 달 월급이 여전히 100만 원대여서 몇 번이고 계산기를 다시 두드려 보았지만 결과는 같았다. 씁쓸한 마음을 달래고자 복직하면 먹을 수 없는 동네 맛집에서 고등어 정식을 먹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섰다. 입구에 들어서기 전 전화기에 뜬 ‘교감선생님’을 보고, 비상계단에서 전화를 받았다. 부장 제의였다. '부장'이라는 말을 여러 번 듣는 사이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식당 문틈 사이로 식은 고등어 비린내가 새어 나왔다.      


  부장이 되어도 육아시간도 쓸 수 있고, 교육과정위원회에도 동학년 업무부장님과 교대로 들어올 수 있다는 감언이설이 먼저였다. 서이초 선생님의 희생으로 인상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담임수당, 부장수당 인상도 동시에 받을 수 있다는 제안이 반갑지만은 않았다. 학년부장 역할을 해낼 수 없는 무능력자임을 수차례 밝혔지만, 식사 전 허기 때문인지 교감선생님의 투지에 밀렸다. 그렇게 부탁하시니 좀 더 고민 후 연락드리겠다고 일단락 짓고, 고등어 한상을 주문했다. 상에 깔린 한정식 반찬과 겉바속촉 고등어구이를 먹으며 '역시 부장은 거절이 제맛이지'라고 되뇌며 식사를 마쳤다.     


  식후 통화에서 나의 무능력론이 안 먹히자 다른 기피 업무 어떤 것이라도 받아들이겠다고 교감선생님께 반대로 제안을 했다. 하지만 주어진 선택지는 1학년부장밖에 없다는 교감선생님의 역공에 당황했고, 스스로 제시한 선택지에 손발이 묶여 어쩔 수 없이 어쩌다 1학년부장이 되었다. 선생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승진을 단 한 번도 목표로 하지 않은 사람에게 부장이라는 직함은 40대가 넘어 후배를 위해 언젠가 맡아야 하는 봉사직이었지만 적어도 지금은 계획한 그때가 아니었다.      


  경력에 담고 싶지 않았던 부장이라는 직함을 다는 데는 이 학교에서 1학년이라는 기피 학년을 세 차례나 해봤고, 이제는 부장을 할 수 있는 충분한 경력이 되었다는 게 이유였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냥 일 펑크 내지 않고, 모나지 않게 무난히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고, 교감선생님의 인선 구상에 내가 포착되었을 뿐이었다. 1년짜리 시한부 부장을 약속받고 2월 말 교육과정 준비부터 3월 초 입학식, 3월 중반 학부모총회에 이르기까지 한 달이라는 숨 가쁜 시기를 거치면서, 1학년부장을 왜 피해야 하는지 설득하려고 책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나같이 어쩌다 1학년부장이 된 선생님도 여럿일 것 같아 1학년부장 가이드북을 쓰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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