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준비금이라 쓰고 입학후정산금이라 읽는다
입학준비금은 언제 받아야 기분 좋을까? 당연히 입학 전에 받아야 입학생과 보호자가 기분 좋게 입학 준비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입학준비금을 학생 보호자의 계좌에 입금해 주는 일을 처리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돈과 관련된 재정 업무이므로 당연히 학교 행정실 담당 주무관이 보호자의 계좌로 입금한다. 학년부장과 관련 없는 입학준비금 지급 시기와 업무 담당자를 묻는 이유는 무엇일까?
입학식이 한 참 지난 3월 중순쯤 입학준비금을 신입생 보호자 계좌에 입금하기 위해서는 일단 학년부장이 입학 후 특정일자 기준으로 1학년 학생수를 파악해 교육청으로 보낸다. 교육청이 학교로 예산을 교부하면 학교 계좌로 입학준비금이 들어온다. 그러면 바로 1학년 학생 보호자 계좌로 입금처리 하면 될까? 이때 다시 1학년 부장이 학교 계좌로 들어온 돈을 이런 항목으로 쓰겠다는 예산 요구서를 작성해 결재를 받는다. 이제 보호자에게 입금해도 될까? 다시 1학년 부장이 학생 1인당 지급액과 학년 지급액 총액을 적은 품의요구서를 결재받아야 한다.
이게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1학년 부장이 해왔던 일이지만 교육과정 운영과 1도 관련 없었다. 입학 준비금이라면 취지대로 취학 통지서를 받아 학교에 제출한 1월이나 적어도 2월에 행정복지센터 또는 행정실에서 돈을 지급하는 게 합당한 일이라 생각해 행정실 담당자로 추정되는 분께 전화를 드려 물었다. 곧바로 교무부장님께 문의하라는 얘기를 들었고, 교무부장님은 1학년부장이 해오던 일이라고 하셨다. 납득이 안되어 입학준비금 지급 공문을 찾아 문서를 작성한 교육청 담당 주무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1학년 교육과정 운영과 아무런 관련 없는 단순 지원금 지급 업무를 너무도 바쁜 3월 중순에 하고 있는데, 도대체 이 업무를 왜 1학년부장이 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담당자는 학교에서는 정하는 업무분장대로 처리하는 사안이라 누가 꼭 담당해야 한다고 볼 수 없어 더 이상 관여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나이스에서 학생수를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을 주면 행정실 담당 직원이 학생수를 확인해 예산을 교부받아 입학생 보호자 계좌에 입금하면 되는데, 학년부장이 괜히 사이에 쓸데없이 껴서 학생수 보고-예산요구서 기안-품의 기안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 관료제에 갇힌 공무원스러웠지만 나도 그 중 하나였다. 학교에서 입학준비금을 교육적으로 사용하라고 예시를 들어 권유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런 관여를 못하고 단순 지원금인데 왜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을까?
그 이유는 행정실과 교무실의 일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지점이 있고, 그 영역에 대해서는 학교장과 행정실장의 타협의 산물이기 때문에 그냥 입학준비금이 생겼을 때 1학년 부장이 일을 담당했으면 그냥 관행적으로 계속하기 때문이다. 행정실장과 교장의 성향과 일을 바라보는 관점, 두 실 직원들 사이의 관계에 따라 업무 분장이 달라지는데, 입학준비금 지급 업무도 그 중 하나다.
마침 다른 반 보호자가 도대체 입학 준비금은 언제 들어오냐고 담임선생님께 문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쩔 수 없이 예산요구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교무부장님께서 교실로 찾아오셨다. 행정실과 다른 업무 분장을 놓고 사이가 껄끄러우니 이번에는 수고롭지만 처리해 주기를 바란다고 하셔서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퀭한 눈빛으로 무신경하게 키보드를 두들겨 입학준비금이 무사히 보호자 계좌에 꽂히게 임무를 완수했다.
어쩌다 한 번씩 하는 1학년 부장보다 재정문제에 관해 전문적인 행정실 주무관이 계시는데, 너무나 바쁜 3월에 1원도 관여할 수 없는 입학지원금 문제로 전국의 6000명이 넘는 1학년 부장이 소중한 시간을 날리고 있는 이 상황은 어찌하면 좋을까?
이 문제는 복식부기 때문에 실제로 돈을 써서 물건을 구입하는 사람과 돈을 내어주는 행정실의 기능을 이원화해 놓았기 때문이다. 교장이 행정실에서 해야 할 시설, 회계 업무와 교무 업무를 명확히 나누고, 문제가 있을 경우 업무분장을 조율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고 교무실과 행정실이 눈에 안 보이는 줄다리기가 있을 때 문제가 생긴다. 행정실도 할 수 있지만 업무 떠넘기기로 관계가 악화되어 업무를 미루다 보면 새우등 터지는 건 그 업무를 하고 있는 교사 학급의 학생들이다.
지역화폐처럼 에듀카드(가칭)를 만들어 입학 전에 발급을 마치고, 개별 학생에게 지급되는 각종 지원금이 이 카드를 중심으로 관리되는 시스템을 운영하기를 바란다. 방학중 급식비 지원, 인터넷 통신비 지원, 방과후교실 자유수강권 지원 등 활용 가능한 영역이 넘쳐난다. 사용하고 남은 잔액을 관리하느라 담당 선생님들이 오후에는 회계 직원으로 변신해 기간별 잔액을 확인하느라 정작 수업 준비나 생활지도 같은 중요한 본업에는 소홀하기 쉬운 상황도 해결할 수 있다. 지원 사업이 있을 때 지원 경로만 안내하고, 실제로 운영하고 돈 관리하는 일에서 교사가 벗어나야 가르치는 일에 전념할 수 있다. 업무 처리하다가 남는 시간에 수업준비 하는 선생님의 수업과 수업 준비에 전념하는 선생님의 수업의 질은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