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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고치러 왔다가 헌혈하고 가네....

뇌경색 환자의 혈액검사

by 허간호사


" 피검사가 이렇게나 많아요? 나 원 참... 이거 다 뽑으면 쓰러지겄네..."


맞다....

뇌경색을 진단받으면 뭔 놈의 피검사가 정말 많다.

검사를 위해 혈액을 채취하는 간호사 입장에서도 너무 많은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혈액검사 bottle이 한 손에 다 움켜쥐어 지지도 않는다. 좀 오바스러운 말이겠지만 '병 고치러 왔다가 헌혈하고 간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상황이다.


다른 질환으로 입원한 신경과 환자라던지, 타과 환자들은 이렇게 많은 혈액검사를 하진 않는다. 신경과 메인병동에 자리가 없어 타 병동에 뇌경색 환자가 입원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그런 날이면 전화응대 업무가 상당하다. 엄청난 혈액검사 양에 당황한 타 병동 간호사의 동아줄은 언제나 메인병동 간호사이기 때문이다. 뇌경색 환자분들 중에 가끔 병원에 입원한 김에 건강검진 차원에서 혈액검사를 좀 더 하고 싶다고 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그런 분들에게는 '웬만한 혈액검사는 다 했다고 보시면 되니 굳이 더 하실 필요가 없으시다'라고 말씀드린다. 특별히 확인했으면 하는 검사가 있으신 건지 물어보지만 대체로 환자들이 궁금해하는 검사는 뇌경색 기초 스크린 혈액검사에 다 포함되어 있었다.




" 무슨 검사예요?"


당연히 환자분들은 피검사를 뭘 하는지 궁금하기 때문에 물어보는 거고 의료진은 설명해 줄 의무가 있는데도 이 경우의 "무슨 검사예요?"라는 질문엔 베테랑 간호사도 늘 말문이 막힌다. 너무 많아서 뭐라 설명해야 될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당뇨검사예요"라든지 "간기능 검사예요"라든지 이해하기 쉽게 정리되는 말이 떠오르지가 않는다. "뇌경색검사예요"라는 말은 말도 안 되는 거고.... (뇌경색은 피검사로 진단할 수 없다. 뇌 MRI를 통해 진단한다.)


결국 이 대답이 가장 적절한 거 같다.


" 환자분 몸에 어떤 문제가 있어 뇌경색이 생긴 건지 확인하는 피검사입니다. 몸을 전체적으로 꼼꼼히 살펴야 하다 보니 피검사 양이 많네요.. "






뇌경색은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같은 문제들이 쌓이고 쌓이다 한 번에 "빵"하고 터트려진 질환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대표적인 뇌경색 위험인자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은 무증상이 특징이다. 허리디스크가 있는 환자들은 허리가 아프기 때문에 허리를 조심하려고 평소 노력하지만, 당뇨나 고지혈증 같은 질환은 무증상이라 모르고 지내는 경우도 많고 진단을 받았어도 딱히 아프고 힘든 게 없기 때문에 관리가 소홀해지기 쉽다. 통증이 없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과 같은 질환들의 무서운 점은 합병증이 발생한다는 것인데, 그중 가장 무서운 질환이 심뇌혈관질환인 것 같다. 고혈압이 심해져 혈관에 동맥경화가 발생되고 당뇨가 심해져 혈액이 끈적해지고 고지혈증이 심해져 혈관 내 찌꺼기가 쌓이다 한순간에 "꽉"하고 혈관이 막혀버린다. 뇌혈관을 막으면 뇌경색이고 심혈관을 막으면 심근경색인 건데 마비가 오거나 말이 어눌해지면 사람들은 그제서야 일차질환들의 중요성을 인식한다. 그러니 일차질환인 당뇨, 고지혈증 등이 있는지 없는지, 상태가 심각한지 괜찮은지를 혈액검사로 알아봐야 한다.


모든 사람이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때문에 뇌경색이 발생한 건 아니다. 뇌경색의 원인은 책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울 만큼 다양하다. 그중 검사로 확인 가능한 것은 모든 경우의 수를 놓치지 않는다. 혈전이 생겨 발생한 질환이다 보니 혈전! 피떡이 잘 생기게 되는 원인 질환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혈액을 응고시키는 게 너무 활성화되어 있지는 않은지 사실 이런 경우는 굉장히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를 위해 혈액응고인자들을 검사한다. 혈액응고인자는 생각하는 것만큼 한두 가지가 아닌지라 모두 검사를 꼼꼼히 하다 보면 혈액검사통이 한가득 준비되어지는데 엄청난 수의 검체용기 주범이 바로 혈액응고검사다.


어떤 일이든 원인을 알아야 해결하는 법이다. 내 몸 안에서 혈전(피떡) 덩어리들이 돌아다니고 있어 뇌경색이 생긴 건지 아니면 고지혈증같이 혈관에 찌꺼기들이 차곡차곡 쌓이다가 뇌경색이 온 건지 원인에 따라 향후 치료방법이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뇌경색 환자들은 거의 종합검진과 같은 수준의 검사들을 하게 된다. 암세포들이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다가 뇌경색을 발생시킬 수도 있는 일 인지라 암지표를 확인하는 혈액검사도 시행하는데 실제로 뇌경색 진단을 받고 검사해 보다가 암을 발견한 경우도 더러 있다.






" 피는 잔뜩 뽑아가기만 하고 왜 설명을 안 해줘요?"


이 부분이 정말 어려운 부분인 것 같다. 시행하는 혈액검사의 종류가 워낙 방대한데 사실 그중에 모두 문제가 있다거나 여러 부분에 문제가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기껏해야 고지혈증을 발견했다거나 몰랐던 당뇨를 알게 되는 것이 가장 흔한 일이고 혈액응고 문제라던지 암이라던지 하는 다른 문제는 극히 드문 경우다. 그런데 각각의 혈액검사마다 결과가 나오는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것은 몇 시간이면 확인되는 것도 있지만 며칠이 걸리는 경우도 있어 그때마다 "당뇨검사는 정상이세요", "암수치는 정상이세요"라고 일일이 설명해 주는 것이 현실적인 의료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피는 한통을 뽑아가 놓고 설명은 일절 없으니 환자들은 오죽 답답할까? 교수님께 피검사는 결과가 어떤지 물어봤는데 "다 좋습니다" 또는 "정상이세요"라는 간단한 답변만 돌아온다면 그렇게나 많이 피를 뽑아놓고 돌아오는 대답이 너무 간단해 허탈해하시는 경우가 많다.


병원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정상인 것 까지 일일이 설명해 주진 못하지만 이상이 확인된 건 바로바로 얘기해 준다. 그러니 아무 얘기가 없다면 다행히 유전적이 문제라던지 내가 몰랐던 다른 질환은 없는 거구나.... 하고 안심하면 된다.




가끔 얼마 있다가 건강검진이 예약되어 있다고 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이런 경우에는 미룰 수 있으면 미루시라고 권해드린다. 건강검진에서 시행하는 혈액검사들 보다도 더 정밀하게 내 몸 구석구석을 검사했기 때문에 비슷한 시기에 또 진행하는 것은 아까운 것 같다. 그만큼 우리가 흔하게 보는 건강검진 결과표에 나오는 혈액검사들은 모두 했다고 생각해도 된다. 간기능, 신장기능, 백혈구, 혈소판, 철분수치 등 내가 궁금했던 검사는 전부 포함되어 있다. 정상이라는 얘길 들어도 정확한 수치까지 궁금하다면 담당간호사에게 물어보면 된다. A형인지 B형인지 혈액형 검사 빼고는 전부 알려 줄 수 있다.





이렇게 많은 혈액검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25ml 정도면 충분하다.

하루에 없어지는 혈액이 성인 평균 30ml 정도라고 하니 어차피 운명을 다한 혈액! 끝까지 알뜰하게 써먹었다고 생각해 보자. 몇 시간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혈액을 채취해야 하는 질환도 많은데 뇌경색은 한 번만 바늘에 찔리면 되니 그것도 좋은 점이다. 뇌경색이 발생해 좋게 생각할 여유가 없겠지만.... 오늘보다 일주일 뒤, 한 달 뒤, 1년 뒤에는 더 좋아져 있을 터이니 너무 크게 낙담 말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지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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