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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서 Jan 07. 2022

소리 내어 읽어봐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처럼>을 읽고

어릴 땐 엄마가 사준 동화 전집을 닳도록 읽는 아이였고, 직접 책을 고를 수 있는 나이가 된 이후로는 제목과 표지에 크게 영향을 받는 편이었다. 끌리는 제목이 있다면 장르를 막론하고 아무거나 집어서 오는 스타일이었는데, 청소년기엔 주로 판타지 소설이었다. 누군가의 추천보다는 나의 ‘감’을 먼저 믿었다. 마치 꽝이 나올 걸 알면서 뽑는 뽑기처럼. 취향 저격에 실패할 때도 있고 성공할 때도 있었는데 크게 연연하지는 않았다. 대학시절엔 주로 ‘자기계발서’를 봤다. ‘20대 여자 000만 하면 성공한다’ 같은 류의 책이었는데 밑줄까지 그으며 꽤나 열성적으로 읽었다. 우연히 발견한 어릴 적 일기장에 책 이름 외에 별다른 이야기를 쓰지 않은 걸 보면 그저 읽는 것에 의의를 둔 것 같다.  



방송작가로 일을 처음 시작하기 전에는 “방송작가 대본 이렇게 쓴다” 이런 류의 책을 서점에서 구입한 적이 있었는데, 일을 시작하고 나서 단 한번도 펼쳐보지 못했다. 사회 생활을 시작하고부터는 책을 놓았다. 여유가 있으면 잠을 자기 바빴고, 쉬는 날에 가만히 집에 있으면 시간이 아깝고 또 아까웠다. 방송 생태계에 적응하다 보니 하루를 버티기에 급급했고 책은 점점 멀어졌다. ‘나는 원래 책보다는 영상을 좋아하던 사람이야’ 라며 영화나 드라마만 보던 나에게 정당성도 부여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치사한 변명이었다.    



내가 다시 책에 흥미를 갖게 된 건 3년 전부터다. 요즘엔 깊게 읽으려고 노력한다. 메모를 하게 된 것도 그 때부터다. 좋다고 생각되는 문구는 두꺼운 노트에 기록하고 기억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그 중에는 용기를 주는 말도 있고, 글을 쓸 때 아이디어를 주는 것들도 있다. 자의는 아니었다. 2019년 초 심적으로 힘들어서 독서 모임에 나갔는데, 읽고 있는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어서 반 강제적으로 하게 됐다. 소개하고 싶은 부분을 눈으로만 찜 했더니 기억이 금방 날아가서 나중에 찾기가 힘들었던 탓인데, 그 덕분에 습관이 돼서 가끔 내가 적은 메모를 보면서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저 시간만 때우던 것에서 조금 진지해졌다. 



장점도 있지만 어떤 날은 책에서 무언가를 얻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너무 기억하려고 애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최근에는 글자가 잘 안 읽히는 병에 걸렸는지 책 한 장 넘기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읽은 ‘소설처럼’은 ‘단지 책일 뿐인데 그렇게 애쓰면서 읽지 않아도 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동시에 나중에 이런 문장은 소설 쓸 때 써 먹어도 좋겠어라고 기록해 뒀지만. 



어릴 적 엄마가 찍어준 사진에 한 3-4살쯤 되는 아이가 젖병을 물고 동화책을 보는 모습이 있다. 옆에는 엄마가 손으로 책의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었고 나는 그걸 뚫어져라 보고 있다. 불현듯 그 모습이 생각나면서 어릴 때처럼 아주 오랜만에 소리내어 책을 읽어보았다. “발음이 왜 이러지?” “이게 이 감정이 맞나?” “헐 대박.” 나름대로의 해석을 덧붙여가며 내 목소리로 읽었더니 집중도가 확 올라갔다. 만약 내가 이 방법을 옛날에도 알았더라면 5번이나 읽으려고 시도했던 박경리 작가의 토지도 완독을 했을텐데. 친구들에게도 소개해 봐야겠다. 큰 소리로 읽어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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