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여행 2] 사바 주 산다칸으로 들어가는 날
드디어 쿠알라룸푸르에서 산다칸으로 넘어가는 날이다. 그런데 이 소식을 전하자, 주변의 모든 지인이 이렇게 물었다. 거기가 어디냐고. 보르네오섬 북쪽 말레이시아 사바 주에 있다고 설명을 붙였는데도 대부분 납득이 안 된 듯한 반응이었다.
집을 떠난 첫날이라 그런지 몇 차례 잠을 깼다. 바깥은 아직 깜깜한데 어디선가 닭 울음소리가 들렸다. 조금 있으니 창밖이 훤해지더니 희미한 빛이 금세 이글거리는 햇살로 바뀌었다. 산책을 나갔다가 더위에 질려 곧 포기하고는 숙소로 되돌아왔다. 외딴 시골집에서 할 일도 없고 배도 고프고 해서 출발시간을 앞당기자고 메일을 보냈다.
쿠알라룸푸르 공항은 오가는 사람들로 붐볐다. 이동하는 날은 대개 무료하게 한없이 기다리는 시간의 연속인데 오늘도 예외가 없다. 드디어 3시간 비행 끝에 자그마한 산다칸 공항에 내렸다. 도착하고 보니 특이하게도 활주로에서 트랩을 내려 바로 청사로 걸어 들어가도록 되어 있었다. 공항이 워낙 작다 보니 그런 모양인데, 그래도 이런 경험은 좀 생소했다. 그런데 청사 안으로 들어서자 난데없이 이민국 표시가 나와 잠시 어리둥절했다. 제복을 입은 관리 앞에서 말레이시아 입국 때 하던 절차를 한 번 더 되풀이했다.
사바 주가 말레이시아 건국 후인 1963년에야 연방에 가입했고 이후에도 연방 내에서 다른 주보다 더 광범위한 자치권을 갖고 있다더니, 그 때문이 아닌가 하고 추측했다. 사바주의 연방 가입 문제는 보르네오에 영유권을 주장하던 이웃 국가들을 자극해 실제로 말레이시아는 인도네시아와 3년간 전쟁을 치렀다. 사실 보르네오가 말레이 반도와 처음 하나의 국가 형태로 묶인 게 20세기 들어서서 벌어진 일이니 그럴 만도 하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기 위해 처음으로 차량 호출 서비스인 그랩(GRAB)을 불렀다. 숲이 우거진 천혜의 자연경관에다 바다를 낀 항구 도시인데도, 차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면서 보니 주변 건물이 대체로 조잡하고 흉측했다. 오래된 도시 특유의 고풍스러운 건물은 거의 없고 한국의 신도시처럼(서양애들이 기겁하는 부분이다) 저렴한 박스형의 건물만 넘쳐났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산다칸은 북부 보르네오 지역의 교역 거점으로서 호황을 누렸지만, 원래 시가지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철저하게 파괴되어 잿더미로 변했다. 전쟁이 끝난 후 폐허가 복구불능 상태라 판단해 사바는 주 수도를 지금의 코타 키나발루로 옮겼다. 전쟁 후에는 서둘러 복구한 데다 지역 경제도 기울기 시작해, 지금 같이 무미건조하고 흉측스러운 건물이 대거 시내를 차지하게 됐다.
도착한 후 호텔이 있는 도심 쇼핑몰 광장 주변을 천천히 걸어서 둘러보았다. 무덥고 습한 밤공기를 쐬면서 여유롭게 거니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보였다. 해변을 끼고 있어 제법 운치 있는 산책로를 따라서 잠시 걸었다. 떨어지는 저녁놀이 고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