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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향기 Aug 13. 2021

피할 수 없는 계절 1

제1화  몰락

 부자는 망해도 3년은 먹을 것이 있다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회사 사장님이었던 나의 주머니엔 담배 한 갑 살 돈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담배는 궁하면 궁할수록 담배 한 모금이 더욱 간절해진다. 누군가 몇 모금 빨다가 바닥에 내버린 장초라도 보게 되면 무단 투기로 욕하기는커녕 버려준 분께 고마워할 지경이 되었다. 그렇게 주워 피는 담배 맛은 서글프게 구수하기만 하다. 담배가 남아돌 땐 이 맛을 몰랐었는데...

 

요즘은 집에 들어가는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겁고 두렵기까지 하다. 집 마저 경매로 넘어간 지가 꽤 된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건지 연락이 없으니 하루하루가 불안하기 짝이 없고 가족들을 생각하면 애처로움에 심장이 조여 온다. 어쩌다가 이 꼴이 됐는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후회스러울 뿐이다.

날이면 날마다 빚 독촉 전화에 시달리 아이들 학원비도 밀려있는 데다가 끼니마저 간당간당하여 벼랑 끝까지 몰렸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처량한 세상살이로 마음마저 얼어붙었던 겨울은 어느덧 2월의 끝자락에 와있다.


동장군이 아무리 설쳐댄들 겨울 추위는 마음의 추위에 비하면 댈 것도 아니었다. 그 참혹한 심정은 가본 적 없는 시베리아 한파보다도 더 추우면 추웠지 덜하진 않을 것 같다.  


이 와중에 막내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단다.

예전 같았으면 기대감과 설레는 심정으로 화사한 봄날의 입학식을 기다렸겠건만 처참한 신세가 되어 깜깜한 밤중에 입학식이 열릴 초등학교 운동장 한가운데로 나도 모르게 들어와 있었다. 달빛에 비치는 교실 건물이 왜 그리도 처량해 보이는지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내 처지가 그대로 투영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흐르는 눈물은 닦고 싶지도 않았다. 아들한테는 든든한 거목이었을 아빠 메마른 고사목처럼 되어 버린 지금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딛는 아이의 모습이 애달프 보인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구름 잔뜩 꼈던 낮과 달리 바람이 구름 몰고 어디로 떠났는지 밤하늘은 고요히 달도 밝다. 처럼 모습을 보여주지 않 수많은 별들 오늘따라 하늘 가득 나타나 상심한  보라고 밤하늘 별빛으로 화려히 수를 놓은 것만 같았다. 때 마쳐 별똥별도 내 심정 가르듯 하늘을 가른다. 정말 오랜만에 별천지다. 그래도 하늘 두렵지 않게 살았나 보.


달을 보니 자연스소원이 빌어진다........

간절한 소원이 무엇인지 구태여 말을 안 해도 님은 알고 있겠지. 달빛 마음에 젖어다. 하늘은 그렇게 둘도 없는 친구마냥 위안이 되어주었다.    




드디어 올게 오고야 말았다.

집을 하루속히 비워달라며 경매 낙찰자로부터 연락이 온 거다. 그동안 겨울을 나기만 기다렸었나 보다. 가진 돈 한 푼 없는 신세가 비참하는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였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진작에 여기저기 돈을 빌릴 만큼 빌렸던 터라 돈 나올 구멍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바싹 말라있는 샘터가 되어버린 형국이다. 그렇다고 쩐의 전쟁에서 처절하게 패전하여 온몸이 부상으로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가족들을 길거리에 나앉게 할 수는 없다.


마른 흙을 파면서 물을 짜내듯 돈 구하러 미친놈처럼 돌아다녔다. 불쌍한 놈 적선받듯이 한 푼 한 푼 구걸하여 우여곡절 끝에 이사 비용과 반지하방 월세 보증금을 겨우 마련했다. 돈 구걸도 대충 해선 안 되겠더라. 뭘 하더라도 미치도록 해야 성공하나 보다.   

  

엊그제는 돈 구하러 거래처를 찾아갔었다.

오랜 기간 거래하며 도움을 줬던 사람들이라 내심 조금은 기대하고 갔었지만 그들은 쓰러지는 사람을 부축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없는 돈에 비싼 기름 날리며 헛걸음치고 돌아오는 길, 그날의 양화대교는 평소와 달라 보였다. 매일같이 지나다녔던 다리가 이 날따라 왜 이리 길게 느껴지는지 가도 가도 한강 위에 멈춰서 있는 것만 같았다.


그때 악마의 집요한 속삭임이 들린다. 운전대를 오른쪽으로 확 꺾으라고 충동질해대는 것이다.

잠깐이면 된다고... 시름을 끝내 버리자고...

그렇다. 끝내자! 운전대를 순식간에 틀려는 찰나 동시에 등장한 이성의 끈이 핸들을 잡아챘다.

“정신 차려 이 놈아!” 얼음장보다 냉엄한 호통이 낙심으로 정신 잃은 마음마저 후려쳤다. 

다리 아래는 시퍼런 한강물이 잔인하게 일렁이며 웅얼거린다.

"허튼짓하면 가차 없이 지옥으로 보내버릴 테야! “    

      

마음의 사투 끝에 지쳐버린 자가 갈 곳이라곤 세상천지에 집 말고는 없었다.

한강의 갈등을 알리 없는 아이들이 현관문 열고 들어서는 를 환하게 웃으며 반겨준다.

'아빠 힘내세요!' 아이들의 밝은 미소가 생명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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