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원 전시기획자 인터뷰 2부

by 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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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전시기획자로서의 태도란


1. 관객의 바람직한 관람 태도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기획자로서 관객분들께 기대하는 바라면 적극적이고 열린 태도가 아닐까. 작품, 특히 동시대 미술은 다양한 연구를 통해서 오랫동안 준비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 범위는 생각보다도 정말 크고 다양하다. 때문에, 평소에는 접할 수 없던 세계를 접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의 문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평소였다면 하지 않았을 생각을 할 수 있고, 볼 수 없었을 것을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며 적극적으로 탐험해 보려는 태도가 기획자들이 원하는 태도일 것이다.


1-1. 태도의 적극성을 물리적인 태도에 한정하지 않은 것 같다.

맞다. 적극적인 태도란 단순히 물리적인 태도뿐 아니라 인지적 태도, 취향의 태도일 수도 있다. 가령 회화 작품은 아무런 행동도 유도하지 않지만, 회화 작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깨달음과 감정적 동요는 몸을 움직이면서 얻을 수 있는 것과는 또 다른 종류의 것일 수 있다. 오감을 열어서, 생각을 열어서 작품에 참여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2. 전시 안에서 예술가, 전시기획자, 관객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까?

게임의 참여자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게임에 다양한 역할로 참여할 수 있다. 직접적인 플레이어일 수도 있고, 참관하는 역할, 깍두기 같은 역할, 룰을 지휘하는 역할 등, 굉장히 다양한 역할이 있다. 그럼에도, 그 다양함을 떠나서 내가 하나의 역할을 가진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각자의 역할을 하면서 게임이 굴러간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전시에서도 마찬가지다. 전시기획자는 게임의 판을 구성하고 작가를 초대한다. 작가는 게임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역할을 맡는다. 그 게임에 관객을 초대하여 플레이하게 만들면, 관객은 전시를 보고 지나치는 외부인이 아닌 게임 속에 존재하는 플레이어 중 한 명이 된다. 이렇듯 이 셋의 관계는 아주 긴밀하고, 자신이 참여하는 태도에 따라 재미도 달라질 수 있다.


3. 전시 참여 작가를 섭외할 때의 기준 및 고민이 있다면?

전시의 주제 혹은 전시에 주요한 키워드가 무엇인가가 가장 큰 기준점이 된다. 하지만 그것보다 조금 더 중요시하는 것은 전시의 개념이나 주제를 충분히 소화하고 확장해 낼 수 있는가의 여부다. 작가의 이전 작업과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를 가장 먼저 주의 깊게 살피고, 주제를 잘 다룰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드는 분을 섭외하는 편이다. 이때 전시의 키워드를 다룬 작업을 했었는지만을 보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이력을 보았을 때, 새로운 주제일지라도 충분히 풍성하게 확장해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인상을 받으면 작품을 맡기는 경우도 있다.


4. 독립큐레이터 이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일하신 것으로 안다. 기관에서 일하는 것과 독립기획자로 일하는 것은 업무 체계나 범위 면에서 어떻게 다른가?

‘전시를 만든다’라는 개념만 같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프로세스가 다른 것 같다. 가장 큰 차이점은 ‘기관의 방향성’의 영향이 아주 크다는 점이다. 기관 소속 학예사는 1년간의 전시의 주제, 종류들이 Top-down 방식으로 지정되어 일하게 된다. 물론 Bottom-up 방식으로 각자의 학예사들이 전시기획을 발의하여 전시화되는 경우도 있지만, 비중으로 보자면 아주 적은 편이다. 기관의 방향성, 또 그 기관이 속해 있는 더 큰 기관의 방향성이 적용되어 전시를 기획한다는 성격을 갖는다. 특히 국공립 미술관은 업무들이 아주 세분화된 조직적인 형태다. 다양한 부서에서 지원을 받고, 업무를 각자 전문적으로 진행한다는 점이 장점이다. 다만 역으로 협업자들이 많다는 점은 행정 처리가 굉장히 체계적이고 복잡하다는 단점이 있을 수 있다.


그에 비해 독립 큐레이터는 훨씬 자유롭다. 자신이 가진 관심사, 원하는 방향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다. 하지만 독립 큐레이터라고 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많은 독립 큐레이터들이 문예진흥기금 혹은 다른 기관에 자신의 기획안을 지원하고, 그 기금에 의존하여 전시를 실행한다. 기금과 기관의 관리감독과 연결될 수밖에 없고, 영향을 받는 것은 불가피하다. 심지어 기관조차 문예진흥기금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독립큐레이터는 개인이 기관과 경쟁하여 기금을 타내야 하는 입장이 된다. 때문에,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기관 소속 학예사보다 자유롭지만, 조금 더 힘들 수 있다(웃음).


5. 기획전과 개인전에서 전시기획자가 맡는 역할은 어떻게 다른가.

이런 말이 있다. ‘기획전은 기획자의 것이고, 개인전은 작가의 것이다.’ 기획전은 기획자가 주축이 되고, 기획자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는, 큐레토리얼십이 잘 드러나는 전시다.

반면 개인전은 작가 한 사람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다. 작가의 생각과 작품세계를 집약해서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때문에 모든 원천은 작가에게서 온다. 기획자는 작가의 것들을 정리, 분류하고 작가 스스로도 몰랐던 작가의 내면세계를 발굴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언어화한 것을 개인전이라는 하나의 큰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6. 이전의 전시를 보면 사회의 이면에 집중하며 결과적으로는 문제제기를 하는 것 같다. 전시기획은 사회가 가진 문제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까?

‘실질적인 것’에 대한 정의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실질적이라는 것을 문제 해결 방법에 한한다면 예술은 아마 그런 일을 하지는 못할 것 같다. 요즘은 참여 예술, 공동체 예술 같은 활동으로 사회·정치적 실천을 이끌어내는 예술도 많다. 하지만 그것이 예술의 가장 주된 기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은 생각을 다른 방식으로 하게 만들고, 다르게 생각하다 보니 이런 식으로도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지점을 툭 건드린다. 세상이 바뀐다는 것은 사고의 전환에서 비롯한다. 그렇다면 전시는 그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게끔, 정치적 태도를 바꾸게끔 쿡 찔러주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문제해결에서 벗어나, 전시는 ‘예외의 공간’으로 사회에 기여한다고도 본다. 사회는 쓸모 있는 사람을 찾고, 우리 모두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굉장히 노력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전시는 ‘유용함’과는 좀 거리가 먼 것 같다. 가끔은 전시공간에 있다 보면 ‘우리가 세금을 가지고 이런 미친 짓을 하고 있다니!’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타 공무원들이 토목 사업을 하고, 음식을 기부하고, 교육 사업을 할 때 우리는 공적 자금으로 만든 멋있는 공간에서 쓸모없는 이상한 행동들을 하고 있고, 그걸 누군가가 보러 와준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현대미술은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많은 것을 허락한다. 그것이 굉장히 위험하고 폭력적일 때도 있지만, 전시장 안에서만큼은 그런 이상한 짓들이 허용된다는 의미기도 하다. 현대 사회에서 이런 유희를 즐길 수 있는 공적인 장소는 전시장 말고는 없지 않을까. 프로그램 등의 이상한 활동을 하면서 놀이로서도 기능하고, 강연을 들으면서 기존의 생각과는 또 다른 생각을 해보기도 하고, 일시적인 공동체를 이루어보기도 하는 등의, 일상에서 동떨어진 예외의 공간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7. 이혜원 전시기획자가 생각하는 전시기획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란.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전시는 모든 주체들과의 네트워크 속에서 이루어진다. 때문에 협업이 가장 핵심적이다. 전시를 통해 일시적이지만 좋은 공동체를 만들고 싶고, 공동체 내의 주체들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영향을 끼치는 전시를 기획하고 싶다. 또, 그 공동체가 하나의 생태계로 이어질 수 있는 협업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있다.


8. 역사적으로 전시기획자는 다양한 지위며 역할이 있었다. 미래의 전시기획자는 어떤 역할을 할까?

큐레이터가 점점 프로듀서가 되어가는 것 같다. ‘커미션 작업’, 즉 작가와 함께 전시를 위한 작품을 제작하는 프로듀서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추세다. 자신의 분명한 연구 분야를 갖고, 작품이라는 형태로 물리적으로 변환할 수 있는 능력이 점점 더 중요해질 것 같다.


9. 앞으로 전시기획자로서의 계획이 있다면?

앞선 질문과 연결되는 부분이다. 생산이란 것은 자신의 연구 분야가 있지 않고서는 힘들다. 자신의 연구 분야가 분명한 기획자가 계속해서 자신의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연구 분야를 계속해서 파고들어서 어떤 매체로든 뭔가를 계속해서 생산해 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다. 이것을 위한 계획은 계속해서 연구 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때그때 갖고 있던 관심사와 생각들을 연구를 통해 프로젝트, 전시, 프로그램 같은 결과물의 형태로 도출하는 일을 계속할 생각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이혜원 전시기획자가 전시공간을 정의내린 구절, '예외의 공간'. 내 머릿속에서 어렴풋이 떠오르던 전시공간의 이미지를 하나로 압축시킨 듯한 구절이다. 극단적인 몰개성을 요구하는 한국 사회에서 전시 공간만큼 남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행동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 내가 예술을 사랑하는 이유를 한 문장으로 설명할 기회가 생긴다면 이 구절을 빌리고 싶다.


인터뷰에 참여해 주신 이혜원 전시기획자님께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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