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현명한 사람만이 필요와 욕구를 구분한다.
미얀마로 돌아가는 항공권 예매를 끝냈다. 미얀마 '방문'이 아니라 '돌아가는'이라고 표현한 것은 아직 미얀마에서 끝마쳐야 하는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고, 그 일을 마치기 전까지 미얀마는 나에게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는 곳이다.
몇 달 전 미얀마에서, 예정된 일정이기는 했지만 가까이 지내던 친구 두 명을 국내 귀임길에 배웅해야 하는 나와 또 다른 내 친구는 마음이 공허했지만 그래도 둘이기에 위안이 됐다. 그렇게 연달아 십수 번의 송별 파티를 치른 어느 날, 덜컥 나의 국내 복귀 발령이 났고, 나를 포함해 모두가 일종의 패닉에 빠짐과 동시에 나와 나의 가족은 새 거주지를 포함해 삶의 중요한 의사 결정을 단 하루 이틀 만에 해야 하는 고약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배려하지 못한 조직에 회의가 느껴졌고, 삶의 큰판이 느닷없이 흔들려야 하는 가족에게 미안해 서러운 눈물이 흐를 때, 나의 친구들은 내 대신 내가 처리하는 일의 우선순위를 정리하고 있었고, 내가 국내에서 살아야 할 동네를 고민하고 있었다. 엉켜진 실타래처럼 도저히 풀리지 않을 것 같던 삶의 어긋난 부분들이 좋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자리 잡았고, 지금도 여전히 더 나은 곳으로 우리 가족을 데려가고 있다.
세 명의 친구와 그들의 가족을 순식간에 떠나보내고 남겨져야 했던 친구에게, 너의 송별 파티를 꼭 하러 오겠다고 마지막으로 약속했고, 한국에 도착하던 날 공항 출국 게이트에서 우리 가족을 깜짝 놀라게 했던 또 다른 소중한 친구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미얀마로 돌아갈 것이다. 남은 한 친구는 같이 가지 못해 미안하다며, 발렌타인 30년과 함께 아쉬운 마음의 동송을 부탁했다.
속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우리가 미얀마에 가는 것을 단순한 여행이라는 욕망의 충족으로 치부하고는 하지만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
오직 현명한 사람만이
필요와 욕망을 구분할 수 있고,
나는 앞으로 필요가 있는 것들에
좀 더 충실할 것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필요들'을
존중하고 또 사랑한다.
<미얀마 응웨싸웅 비치의 석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