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은 누군가에게 구원이 되기도한다
홍콩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내가 근무하던 사무실은 침사추이 하버에서 홍콩섬 방향의 야경을 감상할 때 배경이 되는 홍콩 센트럴의 화려한 고층 빌딩 중 하나였는데, 화려한 외형만큼 큰 돈을 버는 조직이었다.
50여 명의 홍콩 현지 직원들과 일을 하면서 수많은 다름을 경험했지만, 끝까지 다름의 갭을 좁히지 못한 것은 끊길 때까지 울리는 전화를 아무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집중이 중단되기 때문에 그들은 전화를 받을 수 없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한번은 답답한 마음에 이럴 거면 전화를 뭐하러 설치해놨냐고 다소 나무라는 톤으로 직원들에게 얘기했더니, 좋은 생각이라며 미스터 유가 보스에게 전화기 없앨 것을 제안을 해달라는 멋진 역공을 당했고, 짧은 영어 덕에 침묵해야 했다.
전화뿐 아니라 공용 이메일도 수신하는 직원이 없어 긴급한 이메일들이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벨처럼 차곡히 쌓여갔고, 피드백이 간절했던 고객들은 친절하게도 아침 비행기를 타고 홍콩으로 직접 날아왔다.
지금은 조직에서 닿을 수 없는 높은 위치까지 올라간, 그 당시 같이 근무하던 나의 멘토이자 그곳에서 유일하게 친절했던 부장님과, 친절하지 않은 우리 직원들을 한탄하며 수없이 많은 밤에 맥주잔을 들이키며 화를 삼키곤 했다.
어제 한 동료가 고객과 상담하며, 고객이 원하는 자금 지원은 스케줄상 내년 1월쯤 가능하니 좀 더 빠른 처리가 가능한 곳을 알아보라는 친절하지 않은 답변을 우연히 들었을 때, 그의 입술 끝을 떠난 그의 음성이 마치 홍콩 사무실에서 아무도 받지 않는 전화벨처럼 들렸다.
영업시간이 끝나갈 무렵, 2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아들과 함께 온 중년의 남성 고객은, 아들의 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간신히 시간을 내어 집에서 새벽 6시에 출발해 부지런을 떨었음에도, 어디에서도 긍정의 답을 듣지 못해 답답하다며 간절히 호소하고 있었으나, 나의 동료는 단호했다. 그런 아버지의 간절한 대치 상황을 옆에서 지켜보던 아들은 고개를 떨구었고, 동시에 나도 동료에 대한 애정을 조금은 떨구어 낼 수 있었다.
내가 그 아들 나이쯤 되었을 무렵, 어머니는 갑자기 생소한 바이러스성 감염병에 걸리셔서 우리 곁을 떠나셨다. 어머니가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 누워 계신 15일간은 우리 가족에게 기적이 필요한 시기였고, 나약한 우리 가족은 하느님보다 더 간절하게 담당 주치의가 우리 가족을 구원해주길 기도했으나, 애석하게도 우리의 하느님은 너무 바빴다.
호전되지 않는 어머니의 상태에 답답해하며, 담당 주치의와 면담을 요청했으나 며칠간 답을 들을 수 없었고, 더욱 간절하게 요청했더니, 곤란한 표정의 간호사는 교수님이 학회 출장 중이셔서 한국에 없다고 했다.
나는 불친절한 세상에 절망했고,
세상의 불친절을 나의 친절로,
조금은 메꾸며 살아보자 결심했다.
아마 보이지 않는 세상의 균형자는, 그런 불친절을 메꾸라는 이유로 나를 이곳에 보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니, 또 마음이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