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전략은 어디서든 그냥 시작하는 것이다
매주 일요일 오후, 딸아이와 버스를 같이 타고 학원에 데려다주고, 책을 읽거나 혹은 산책을 하는 등 혼자만의 여유를 만끽한 뒤, 다시 딸아이를 데리고 겨울 석양이 질 무렵 집으로 같이 돌아온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 안에서, 그리고 길 위에서 조잘조잘 우리의 대화가 점점 익숙해지는 만큼, 이 시간도 어느새 일주일에서 기다려지는 나의 소중한 시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어제는 집으로 오면서 서로의 생활과 생각을 공유하던 대화를 주고받던 중, 딸아이는 "아빠가 술을 끊어서 좋다"라고 말했다. 먼저 나는 술을 끊겠다고 결심한 적이 없기에 놀랐다. 그다음으로 나는 딸아이가 내가 술을 마시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에 놀랐다. 마지막으로 가장 가까운 가족이 내가 뭔가 변하려는 노력을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에 또 놀랐다.
사실 삶의 큰 변화를 겪으면서 과거보다 나아지겠다고 의식적으로 마음먹고 애써왔던 것은 사실이고, 쓸데없이 술 먹는 데 쓰는 시간을 좀 더 애지중지 써보자는 것이 그것 가운데 첫 번째 결의였다. 나의 결심들은 그저 작은 습관들과 마음의 태도를 최소한 어제의 나보다는 나아지겠다는 결심들이었고, 흔히들 변화의 동기를 말하는 트리거나 어떤 특별한 변곡점의 요소는 어디에도 없다.
여전히 아빠의 전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나의 작고 연약한 아기가, 고요하고 성실하게 노력해 온 나의 변화들을 알아챌 만큼 부쩍 잘 커준 것에 대단히 감사했고, 또 누군가가 알아채 줄 만큼 어제보다 자란 나 스스로에게도 고마웠다.
앞으로 단 31일만 경험할 수 있는 경이로운 2025년의 12월이 막 시작됐다. 매년 열심히 살지 않은 해가 있었던가? 결혼을 하고 가장이 된 이후 단언컨대 그런 해는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쓰고 노력한 매해의 열한 번의 달이라는 시간에 비해, 과할 정도로 12월을 송년회라는 명분으로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번 들뜨고 취해 있었음을 자인한다.
올해가 인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흥청망청 연말을 보낸 뒤, 새해 1월 1일부터 다시 뭔가 거창한 것을 결심하겠다고 반복하며 산 지가 벌써 45년째다.
그러지 말고 변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오늘 결심하자.
어느 날 갑자기 담배 피우는 것이 흙을 삼키는 것처럼 불편하다며 단칼에 담배를 끊고 보건소 금연클리닉을 다니던 친구에게, 새해도 아닌데 갑자기 담배를 끊냐며 핀잔 아닌 핀잔을 준 그날의 내가, 갑자기 낯 뜨겁게 부끄러운 2025년 12월의 첫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