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를 위한 지출대신, 생산을 위한 지출을 부러워하자
바야흐로 소비 과잉의 시대다. 나와 같이 일하는 동료들만 하더라도 매일 소비에 대한 대화가 주제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며칠 전에도 한 동료는 손바닥만 한 새로 산 명품 아이템을 들고 나타나, 두 달치 월급을 갈아 넣었다며 뿌듯해했고, 주위 동료들은 챗GPT급 찬사 피드백으로 그 뿌듯함에 동조했다.
어제도 한 동료는 다음 주 휴가를 내고 서울보다 더 추운 이웃 나라 도시로 여행을 간다고 들떠 있었다. 나와 같이 일한 고작 3개월간, 그녀는 이번까지 무려 4개국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고, 여행으로 떠난 낯선 도시들에서 먹은 음식과 맥주들에 대해 나는 수도없이 많이 들었다. 그녀를 보며 나는 그녀가 나 모르는 근무 수당을 더 받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그녀는 확실히 버는 것보다 더 많은 소비를 함에 틀림없다.
타인의 여행을 목격할 때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을 보면, 나는 여행을 많이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다. 즉흥적인 여행의 장르는 오히려 더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런 연유로 최근 유행이 되고 있는 여행 예능 콘텐츠의 성공이 사실 잘 공감 가지 않는다. 그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현상으로 보일 뿐이고, 그런 욕망을 위해 사람들이 과감하게 많은 돈을 지출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최근 봤던 윤소정식 여행은 참신하고 인사이트가 있다. 여행이 아닌 유학을 떠난다는 그녀의 여행 방식은 꼭 한번 따라 하고 싶은 욕망이 든다. 그녀의 여행 개념을 접하고 드는 생각은, 그간 나는 아마도 소비가 목적인 여행에 거부감이 들었던 게 아닌가 싶다. 낯선 도시와 사람들, 다른 언어와 사고방식들, 이런 새로운 자극들은 분명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여행이 아닌 그곳에 살았을 때만 욕구가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던 건 바로 이런 식의 여행 컨셉이 부재했기 때문인 듯하다.
요즘 들어 나는 다행히도 소비를 위한 지출을 하는 타인들의 삶의 형태에 별로 영향받고 살지 않는다.누가 외제차를 샀다는 얘기, 또 다른 누군가는 휴양지로 휴가를 다녀왔다는 얘기들이 그다지 감흥 있게 들리지 않는다. 반면에 아는 이가 스타트업을 시작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둔 이야기, 하와이에 주택을 구입했다는 이야기 등 생산적인 일에 돈을 썼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렇게 심장이 뛴다.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착한 소비자가 되기 위해 그 오랜 시간을 직장에서 일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맹세하건대 나는 내가 생산자 지위로 이 사회 시스템 안에서 살아보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이제는 한번 생각해보려고 한다. 소비를 위한 타인의 지출이 아닌, 생산을 위해 지출하는 이들을 부러워하는 것이 바로 그 생각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