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드는 것 보다 배우지 않는 마음을 더 경계하자
수년 만에 처가 식구들과 식사를 가졌다. 가족을 만나는 일은 항상 반가운 일인데, 그중 더욱 반가운 일은 장성한 조카도 참석한 것이다. 손윗처남의 장남인 조카는 미얀마로 떠나오기 전 도쿄의 대학에 입학하기로 되어있던 예비 성인이었는데, 어느새 1학년을 마치고 해군 18개월 복무마저 막 끝낸 진짜 성인이 되어 있었다.
15년 전 결혼을 하겠다고 인사를 갔던 처가댁에서 조카를 봤을 때만 해도 8살짜리 꼬마였는데, 세월의 징검다리를 몇 번 성큼성큼 건넜더니 그는 어느새 멋진 청년이 되어 있었다. 김우빈을 닮은 외모뿐 아니라 그가 보여준 지금까지의 인생 행보도 갓 피어난 20대 청년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성숙하고 멋졌다.
처남 사업이 부침을 겪는 시기에 성인으로 성장해야 했던 조카는, 넉넉지 못한 집안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건실하고 올바르게 자라주었고, 더욱 고마운 사실은 독학으로 일본어를 마스터했는데 그 수준이 일본 대학 입시를 볼 정도로 우수한 정도였기에, 처남은 그의 특유의 직감과 집중력으로 조카를 일본 대학 진학에 성공시켰다.
그는 일본 대학에서 물 만난 물고기처럼 마음껏 헤엄치며 성장한 것처럼 보였다. 낯선 환경이었을 텐데 장학생이 되어 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덜었고, 18개월 군 복무 기간 동안 2천만 원이라는 거금을 모았다. 이런 조카에게 그간 이룩한 것들이 네 나이에 도달하기 어려운 업적이라 치켜세우니 아버지의 도움 덕이라고 말하는 그는 그 나이의 나보다 백배는 더 나은 사람임이 분명했고, 향후 몇 년의 징검다리를 또 건너면 그는 분명 꽤 괜찮은 어른이 되어 있으리라 짐작된다.
나의 과거를 돌아보면, 이십 대 나이에 나는 부모 탓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우리 부모님이 비싼 학원을 보내주었더라면', '유럽 배낭여행을 보내주었더라면', '어학연수를 보내줬더라면..', 숱하게 많은 부모 탓으로 열심히 살지 않은 십 대와 이십 대 초반의 나를 합리화했다. 같은 부모 밑에서 더 훌륭한 결과를 보였던 동생의 경우를 고려하면, 결과값의 주요 상수는 결코 부모가 아닌 나였다는 것이 자명함에도, 나는 아주 오랫동안 고집을 부려 나를 피해자라 주장했던 것 같다.
처조카를 만나고 나는 또 과거의 내가 많이 부족했음을 겸허히 받아들였고, 이제라도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기를 다짐했다. 어른도 때로는 길을 잃고, 타인의 가르침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항상 배우려는 자세를 견지하려고 노력한다. 배움을 주는 상대의 나이와 지위는 중요하지 않고, 필요하다면 미물에게서도 배우려는 자세가 진짜 어른의 마음은 아닐까?
세월이 빠르다. 조카가 성인이 된 속도보다 빠르게 우리 아이들도 곧 어른이 될 것이다. 아이들의 가파른 성장 속도를 생각하니, 문득 어른이 된 아이들에게 오래 존중받고자 한다면, 나이 드는 것보다 배우지 않으려는 마음을 더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