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문장 #1211

계획은 운명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이 있다

by 미스터Bit

어제는 14번째 결혼기념일이었다. 직장생활이 좋아졌다고 느끼는 게, 결혼 후 처음으로 결혼기념일에 휴가를 가졌다. 결혼 후 첫 결혼기념일에 직장 상사와의 약속 거절을 못 해, 첫 기념일을 아내 혼자 저녁을 먹게 해 속이 타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4년이 지났다. 또 세월이 빠름을 실감한다.


결혼 후 많은 일들이 있었다. 두 아이를 키워냈고, 일곱번의 이사를 했고, 두 국가에서 살았다. 신혼여행을 하와이로 같이 다녀온 것을 시작으로 이제는 4명이 된 가족이 전 세계를 탐험하듯 여행도 다녔다. 신혼여행 때, 결혼 10주년에는 아이들과 같이 하와이를 꼭 다시 찾자고약속했는데, 코로나 영향으로 나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15주년이 되는 내년에는 그 약속을 늦게나마 지켜봐야겠다.


아내와의 결혼의 결정적 계기를 나는 여전히 정확하게 기억한다. 연애 초반, 어느 순간 나를 밀어내는 지점이 느껴졌는데, 매일 연애의 전략을 같이 짜던 친구가 주옥같은 조언을 했다. 연애가 지속하기 위해서는 미래에 함께 해야만 하는 장기 이벤트를 미리 포석처럼 심어 놓아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때까지 즉흥적이고 제멋대로의 연애만 하던 나에게 친구의 조언은 큰 영감이 됐고, 나는 그 조언을 실천해 의도적 계획들을 실행했다. 영화표를 미리 예매했고, 여행지를 미리 예약했고, 아내가 관심 가질 만한 공연들을 찾아보고 미리 티켓을 구매했다.


뭔가 뻔하지 않은 이벤트를 구상하던 찰나, 친구는 메시가 이끄는 FC 바르셀로나 구단의 초청 경기가 예정이라며, 미리 표를 사두라고 했다. 아내가 축구를 좋아하는지 여부를 묻지 않고 나는 거금을 주고 표를 사고 경기 관람에 어울릴 만한 티셔츠를 샀다.


그런데 경기 관람을 일주일 앞둔 시점 갑자기 아내는 이별을 통보했고, 갑작스러운 통보에 당황한 나는 이 티켓은 너와 함께 보려고 산 티켓이니 같이 보거나 아니면 버리겠다 마지막 호소를 했더니, 착한 아내는 내 호소를 외면하지 못해 지금껏 함께 살고 있다.


여의도 금융인이었던 아내의 화려함에 비해 가진 게 오직 가능성밖에 없던 나는, 산동네 언덕 위 작은 아파트를 신혼집으로 겨우 마련해 시작했고, 영국에서 유학을 마친 동생의 비용을 아껴주기 위해 급기야 그 작은 집에 데리고 같이 사는 패기까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내는 아직도 이름을 전부 기억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인원의 홀 시아버지의 가족과 친지를 명절 같은 대소사를 큰 며느리라는 타이틀로 수차례 치러내야 했다.


집안에서는 허약 체질을 타고난 연년생 아이들이 겨울만 되면 번갈아 입원을 반복했고, 아이를 키우는 내내 아내는 거의 잠을 못 자고 살면서도 근성으로 견디며 육아와 일을 병행했다. 나는 시간이 오래 지나고 나서야 아내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지쳐있었는데 억지로 혼자 인내하고 있었다는 걸 알고는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간 말은 못 했지만 오랜 시간 묵묵히 나와 모든 상황을 견뎌준 지혜로운 아내에게 빚을 갚는 기분으로 살았다. 14년을 산 지금, 이제야 아내에게 빚을 많이 갚은 기분이 들어 나도 마음이 조금은 여유로워진 것 같다. 티켓 한 장이라는 계획이 우리의 운명을 여기까지 이끌어왔듯 앞으로 남은 인생의 여정도 아내와 함께, 보다 가치 있는 많은 계획들로 채워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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