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어른이 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금요일 늦은 밤, 학원이 끝난 딸아이와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던 중에 딸이 요즘 어른들이 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겨울이라 그런지 학원을 오가는 버스에 사람들이 많았는데, 어른들은 항상 노약자석이나 임산부석에 부끄럼 없이 앉는다는 얘기였다. 그 시간 집으로 가는 버스에는 대부분 중고등학생들이었고 그 아이들은 어김없이 노약자석과 임산부석을 비워 놓았건만, 중간에 타는 어른들은 행운이라도 만난 듯 고민 없이 아이들이 애써 비워둔 자리를 차지했다.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는 나도 딸아이와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특히 임산부석에 앉는 데 주저함이 없어 보인다. 임산부 배려석을 시행한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우리 어른들은 마치 복잡한 지하철 이용 시간대에 임산부가 지하철을 이용하는 게 불쾌하다는 듯이 사회 규칙 지키기를 일부러 거부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렸을 때부터 딸아이는 사회적 규칙에 민감했고, 내가 그런 규칙을 어길 때 딸은 독특한 어법으로 나를 비난했다. 예를 들면 주황 신호등에 급히 차를 몰아가던 날 딸은 아빠는 싱가포르에는 살 수 없을 거라기에 이유를 물으니, 책을 통해 싱가포르는 교통 신호를 어겼을 때 큰 벌칙을 내린다고 학습했고, 교통 신호를 어기는 나는 살기 어려울 것 같다는 논리였다. 그날 이후 나는 주황색 신호등을 멈춰야 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어제도 딸아이와 버스를 타고 출발하는 버스 안에서, 나란히 손잡이를 잡고 버스 창밖을 보는데, 아파트와 도로 사이 방음벽에 어른들이 2~3미터 거리를 두고 마치 벌서듯 방음벽 밑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방음벽에는 흡연 금지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딸아이는 조용히 나를 응시했고, 나는 머쓱한 웃음으로 답을 했다.
어른은 아이들의 거울이고 어떤 거울을 보고 자라느냐에 따라 우리 아이들이 주축이 되는 우리 사회의 미래 모습이 결정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엄청난 속도의 발전으로 인해 기형적인 세대 구조가 되었고, 보고 자란 거울이 천차만별이라 유독 사회 갈등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 우리 가족 구성원만 봐도 삼대가 다른 배경에서 자랐는데 그 격차가 상당하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6.25 전쟁을 겪으셨고, 나는 어린 시절 새마을 운동을 경험했고, 우리 아이들은 어린 시절 풍요로움을 경험했다. 그 성장 배경의 차이로 우리 삼대는 깊이 소통하기가 어렵다.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다. 지금의 우리 아이들은 우리의 부모나 우리보다 풍요롭고 선진국 환경에서 교육받고 자랐다. 즉 우리보다 똑똑하고 많이 알 수도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어리고 사회 경험이 적다는 이유로 어른들이 우리 아이들을 존중하는 태도가 많이 부족하다고 요즘 새삼 느낀다.
괜찮은 어른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괜찮은 어른이 되는 것이고,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주도하는 사회가 괜찮은 사회가 되는 것일 것이다. 나는 괜찮은 어른이 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버스나 지하철의 노약자석 또는 임산부 자리를 비워두는 것으로 우리 어른들이 그 연습에 동참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