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어려운 우리에게 집처럼 위안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혼자 조조영화를 보았다. 삶의 그릇이 무쇠만큼 단단한 형이 몇 주 전부터 보고 싶다 하다 결국 보고 추천한, 말랑하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인 구교환, 문가영 주연의 '만약의 우리'를 보고 왔다. 개인적으로 구교환 배우를 좋아한다. 가볍지 않음을, 가볍고 경쾌하게 표현하는 그의 연기가 좋다. 그리고 또 개인적으로 영화를 좋아한다. 일상에서 보기 힘든 공간과 마음을 카메라로 깊숙이 들이밀어 세밀하게 관찰되는 감정이 있어 좋다. 그리고 서사, 즉 이야기가 있어 영화를 좋아한다.
이 영화가 좋았던 점이 바로 여주인공 정원의 서사였다. 영화라는 프레임 안에서 그녀는 그녀의 시간 전부를 자신만의 집을 찾아가는 서사라고 나에게 해석됐다. 그녀에게 집의 의미는 물리적 공간일 수도 있고, 감정적 안식처일 수도 있다. 다시 만난 은호에게 '한때 나의 집이 되어줘서 고맙다'는 그녀의 말은 그래서 울림이 작지 않았다.
나 역시 집을 갖기위해 평생을 헤매고 부딪히고 넘어져 봤기에 정원이 공감됐다. 나에게 집은 내가 그렸던 모든 것이 있는 공간이자 꿈의 실현을 의미했다. 내가 지금 딸아이 나이가 되었을 무렵부터 지금의 부모님 집에서는, 내가 그리고자 하는 미래가 도무지 그려지지 않기에 떠나야겠다 생각했고 그때부터 나의 집을 찾는 고된 여정은 시작됐다.
나의 여정에서 현실의 벽은 심히 높았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집에 살았다. 마땅히 거처할 곳이 없어 친구 집에 얹혀 살기도 했고, 심지어 얹혀사는 친구한테 얹혀살기도 했다. 서울살이가 너무 어렵고 추웠다. 수많은 남루한 옥탑방마저도 내게 허락된 공간은 없어 보였다. 남들은 두 발짝 세 발짝만 걸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를 나는 항상 스무 발짝 서른 발짝을 걸어야 닿을 수 있었기에 고되고 벅찼다.
내가 바라는 형태의 집을 이미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화가 났고, 그들의 따뜻함이 스칠 때면 내 환경에 대한 원망은 더욱 커져갔다. 그럴 때마다 강변북로를 달려 시야에 보이는 수많은 아파트를 보며, 내가 나의 가족과 그 공간 안에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수만 번도 더 이미지로 그리며 열망했다.
'만약에 우리'에서 정원이와 마찬가지로 다행히 나와 형의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정원이도 나도 형도 항상 돌아가고픈, 완벽히 꿈꾸던 그런 집을 결국 완성했다.
그럼에도 마냥 웃지 못하는 쓸쓸함이 있었고, 형과의 카톡에서 그 쓸쓸함이 무엇인지 눈치챘다.
"우리 열심히 살았지, 뒤도 안 돌아보고. 그런데 돌아보면 붙잡히는 게 참 많아."
라는 형의 카톡에 나에게도 붙잡히는 것들이 있어 눈물이 났다. 그 시절 어렵던 우리에게도 집 같은 위안을 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너무 열심히 살아온 덕에 그들의 사랑을 잊고 살았다.
어린 내가 혼자 사는 게 안쓰러워 친자식처럼 아껴주시던 고등학교 동창 친구의 어머니와 가족들, 이모 댁에 얹혀사는 대학생 조카에게 손수 밥을 지어주시던 방이동 이모부와 이모, 가족 같았던 망우리 식구들. 열거하기가 어려울 만큼 많은 이들에게 평생 갚을 수 없는 따뜻함을 선물로 받았음에도 나는 나의 꿈을 좇아 열심히 산다는 자기 합리화로 까마득하게 그 고마움을 잊고 살았다. 그것이 형과 나의 쓸쓸함이자 미안함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오늘 한때 집 같은 사람들이 새삼 생각나 고맙고 눈물 난다. 그리고 유독 나의 집과 가족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