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문장 #0105

세상살이의 곤란함을 함께 버텨준 이들이 진짜 친구다

by 미스터Bit

새해를 맞아 아버지 댁에 다녀왔다. 보통은 가족과 함께 가는데 아내가 아직 정상 컨디션이 아니기에 이번에는 혼자 방문하여 아버지 댁에서 1박을 했다. 혼자 오는 것이 불편하고 서먹했지만, 그 덕에 오래된 친구와 고향에서 오랜만에 술잔을 기울이는 호사를 누렸다.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나를 나보다 더 잘 아는 그런 친구이다. 졸업, 취업, 결혼, 아이의 출생 등 삶의 굵직한 대소사를 비슷한 시기에 함께 겪으며 의지하고 버팀목이 되어준 친구이기에 그의 표현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한 번의 다툼이나 감정의 틀어짐 없이 23년을 인생의 동지이자 형제이자 친구로 지내왔다.


친구와는 중학교 동창으로 인연을 시작해 나의 어머니 장례식 이후로 급격히 가까워졌다. 정확히 표현하면 내가 어머니의 부재로 깊이 절망할 때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도 어렸는데, 장남이라는 이유로 더 어린 동생과 아버지를 챙겨야 했고, 죽을 만큼 아픈 고통에 죽지 않고 버텨야 했으며, 끝이 어딘지 모를 비극에 매일 절규하던 시기였다. 높은 곳에 서면 아래 바닥이 포근해 보일 정도로 나의 정신은 위태로웠고, 나와 아버지와 동생은 껍데기만 공허하게 남아 있었기에 서로를 지켜줄 힘이 없었다.


이렇게 무참하게 내가 바닥일 때 그는 조건 없이 나의 편이 되어주었다. 무너지는 날이면 어김없이 나는 친구를 찾았고, 어떤 상황에서도 그는 나에게 달려와 옆에서 내가 쓰러지지 않게 지지하고 기다려주었다. 갑자기 충동적으로 그의 부축이 필요한 날들이 지속되었고, 이런 내가 지치고 피곤할 법도 했을 텐데 단 한 번도 친구는 나를 물리치지 않았다.


그는 정말 열심히 나를 챙겨서 데리고 다녔다. 담력도 배짱도 자존감도 나와 비교가 안 되게 강했던 친구는 내가 봐도 용기 있게 나를 챙겼는데, 우린 그때 몇천 원이 없어 주차비도 못 낼 만큼 어리고 약했음에도 그는 늘 나를 지켜주었다.


나는 사실 20대의 나에게 미안한 점이 많은데, 유일하게 미안하지 않은 시간이 이 친구와 보낸 시간이다. 스무 살 신입생이었던 그의 여자친구는 이제 그의 아내이자 쌍둥이 엄마가 되어 있었고, 그들을 만날 때면 어김없이 우린 이십 년 전 그 시간으로 날아가 이십 대처럼 웃고 있었다.


지금은 세월에 깎여 무게가 한층 가벼워진 청춘의 버거움이 그때는 왜 그리 무겁고 분하고 원통했는지 모르겠다. 삶에 맑은 날도 있고 흐린 날도 있는 것이 이치거늘, 그때는 늘 맑은 날이 아닌 것이 왜 그렇게 서러웠을까.


예전에는 삶에서 평탄한 순간에 만나 좋은 것을 함께 경험하는 것이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인생의 초가을쯤 산 나이가 되고 보니 세상살이의 곤란함을 함께 버텨준 이들이 진짜 친구라고 생각된다. 친구와 함께 여전히 웃으며 코가 삐뚤어지게 한잔 꺾을 수 있음이 감사한 주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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