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타인에게 어떤 풍경이 될지 선택할수 있다
아침볕이 좋은 새해의 두 번째 날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첫 번째 날은 일부러 기념하고 기억하는 반면, 두 번째 날에게는 영 소홀하다. 사실 나도 작년 첫날에는 어디에서 어떤 마음으로 있었는지는 기억해도 둘째 날에 대한 기억은 없다. 그래서일까, 올해 둘째 날은 마치 우리에게 이런 소홀함에 항의라도 하듯 맑고 화창하게 빛을 뿜고 있었다. 출근길 한강 철교에서 마주친 태양도 붉고 웅장했던 것을 상기하고 보니, 오늘 뽐내기를 아주 작정한 모양이다.
새해에도 어김없이 매일 아침 출근길에서, 마치 풍경처럼 매번 같은 시간 같은 곳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보았다. 맑은 감각으로 주위를 세밀하게 보기 시작하면서 갖게 된 즐거운 관찰 중 하나이다. 당산역 에스컬레이터 끝에서 마주치는 싱글벙글 일란성 쌍둥이 형제(아마도 노총각), 손님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도 늘 이른 아침부터 경쾌하게 분주한 회사 근처의 젊은 카페 여주인, 그리고 내가 가장 기다려 하는 유모차를 끄는 부부가 대표적인 나의 아침 풍경이다.
지하철역 계단을 올라 인도로 진입하는 지점에서 자주 마주치는 부부는 젊고 예쁜 외모는 아닌데, 유모차의 갓난아기와 서로를 보는 애틋한 눈빛으로 추정컨대 신혼부부로 보인다. 특징은 와이프는 나보다도 키와 골격이 큰데 반해 남편은 왜소하고 지극히 평범하며 현재의 미의 관점에서 선남선녀 커플은 아니다.
수개월 관찰 결과, 육아에 전념 중인 새댁 와이프는 매일 아침 유모차에 아기를 태워 남편의 출근길을 배웅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아직까지 드라마나 영화를 제외하고 현실 세계에서 배우자의 출근길을 응원하기 위해 지하철역까지 배웅을 했다는 사례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둘은 너무나 행복하고 애틋한 웃음과 눈빛으로 서로를 보기에 매번 눈길이 갔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고, 삶의 어떤 중간 지점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볼 때마다 응원하게 된다.
그들을 보고 있자니 최근에 나와 우리 가족이 일상에서 목격한 화가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딸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오던 늦은 밤 버스 안에서, 약간의 짓궂은 장난을 하던 학생들에게 그냥 웃어넘겼으면 좋았으련만 버스 기사님은 과하게 화를 내셨고, 하루를 조용히 마무리하던 버스 안의 승객들은 불쾌한 기분을 안고 버스에서 내렸다.
공교롭게도 그날 장모님은 지하철에서 긴 머리카락을 주구장창 만지며 비위생적인 것들을 바닥으로 쓸어내리던 젊은 여성을 인내하지 못해 화를 낸 노인의 목격담을 얘기하셨고, 아내도 입원 당시 같은 방에 있던 중증 환자를 간호하던 사람들이 서로의 소음을 탓하며 밤새 싸우는 바람에 잠을 제대로 못 잔 얘기를 덩달아 꺼냈다. 이렇듯 우리는 일상에서 너무 쉽고 빈번하게 화난 사람들을 만난다.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물리적 거리는 더욱 가까워졌고,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서로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영향을 끼친다. 아름답거나 혹은 불쾌하거나, 우리는 타인에게 어떤 풍경이 될지 선택할 수 있다. 이왕이면 올해는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풍경으로 기억되어 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