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문장 #0120

나를 증명하는 데 쓰는 노력을 되도록 아끼자

by 미스터Bit

미얀마에 다녀온 일주일간 회사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규모가 크지 않은 사무실에서 세 명의 직원이 이동 발령이 났고, 그중 한 명은 과장 승진이라는 행운도 따랐다. 승진과 이동을 기다리는 직원이 많았던 터라 승진자는 기쁨이 큰 만큼, 반대 상황의 직원들은 그만큼 상처가 컸다. 우린 불행하게도 효율성이라는 명분 아래, 매년 해마다 두번은 이런 난관을 겪으며 살고 있고, 그 명단에 이름이 포함되어야만 쓸모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나도 햇수로 20년간 이 회사에서 일하면서 수많은 발령과 몇 번의 승진을 경험하기는 했지만, 인사는 여전히 탐탁지 않고 불쾌하다. 이번에도 큰 기대는 안 했다고 했지만 못내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회사에 대한 기여도만 놓고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열악한 환경에서 무너져가는 미얀마 법인을 새로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큰 상을 받아도 모자랄 판에 이유도 모른 채 표면적으로는 벌을 받았다.


나는 한때 인사에 관여했던 때가 있었다. 작은 조직이기는 했으나 인사의 메커니즘은 조직 규모와 상관없이 로직이 같다는 것을 배웠다. 내가 생각하는 인사의 핵심은 공정성이었고 내가 해보기 전까지는 그렇게 굳게 믿었으나, 승진 의사 결정에 참여하고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여러 가지 복잡한 이해관계가 반영되다 보면 애초에 구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 보통이었고, 이때 가장 크게 작동하는 것이 바로 운이다.


나의 경우 대기업 금융 담당 팀장을 했던 인사이동을 제외하고는 그리 운이 따랐다고 볼 수 없다. 일에 있어서는 요령을 피울 줄도 몰랐고, 노동을 제공한 대가로 받는 당연한 월급을 그렇게나 감사해했고, 모든 우선순위에서 당연히 일이 먼저였다. 열심히 이타적으로 묵묵히 일하다 보면 회사는 나를 알아줄 것이라 굳게 믿었지만 다 착각이고 환상임을 한참 후에 직시했다. 내가 기대하고 믿었던 것만큼 회사는 나에게 관심이 크지 않다.


오랜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승진하지 못해 자책하는 직원에게 그러지 말 것을 조언했다. 내가 만난 어떤 직원보다 성실하고 직원과 손님에 대한 존중이 바람직하며 강한 책임감으로 회사 주인처럼 일한 그가 본인의 무능을 자책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가만있을 수가 없어, 적절한 인사를 하지 못한 잘못은 회사가 했는데 벌을 왜 본인에게 주느냐고 질문하며 좀처럼 하지 않는 참견을 했다.


큰 기업은 선량한 직원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고도의 가스라이팅을 한다. 나는 사실 이 무례함에 이제는 좀 지친다. 한때 전부였던 회사는 더 이상 전부가 아니고 나는 예전으로 돌아갈 것 같지는 않다. 회사의 감사함 덕택에 가정도 꾸리고 집도 사고 모든 면에서 큰 은혜를 입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동안 회사에 진 빚은 훨씬 큰 원금으로 되갚았다고 자부하며, 따라서 이제는 좀 더 대등한 입장에서 회사와 관계를 재정립하는 과정에 스스로를 데려다 놓았다. 수술 후 병원에서 불려 나와 입원복을 입고도 일을 해봤고, 반년간 월급을 받지 못하며 일한 적도 있다. 모자랄 만큼 착한 직원으로 살았고, 정말 할 만큼 충분히 했다.


이제 진짜 자존감을 회복할 때이다. 대기업 명함 없이도, 값비싼 외제차를 타지 않아도 자존감이 높을 수 있다고 생각 들 정도의 그릇은 키운 것 같다. 진짜 자존감은 세상에 나를 더 이상 증명하지 않아도 될 때 생긴다. 어렵겠지만 나를 증명하는 데 쓰는 노력을 되도록 아끼자. 내게 진짜 필요한 사람들은 그런 나를 알아보는 혜안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최근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불안해하지 않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나는 여전히 반짝반짝 빛날 자신이 있고, 여전히 운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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