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여행자가 될 수 있다
미얀마 여행이 끝났다. 5개월 전 떠나던 양곤 공항이 이번에는 전혀 다른 풍경과 감정으로 우리의 떠남을 배웅해주었다. 형제 같은 친구들과 다시 이곳 미얀마에서 재회하자는 막연한 약속은 구체적인 형태로 이행되었다. 공기 중으로 흩어져 사라져도 의미가 작지 않았을 우리의 약속이었지만, 우리의 에너지는 다시 결합되어 결국 뭉쳤고, 이제 더 큰 힘을 낼 준비의 계기가 되었기에 이번 여행은 몇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먼저, 그간의 성실함에 대한 보상이다. 대한민국 대기업 부장급인 나와 이번 여행의 동행자인 형은 누구보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높기에 무척 바쁘다. 문자 그대로 매일을 영혼까지 갈아 삶을 사는 것이 기본값인 사람들이다. 그런 열악함 속에서도 우리는 시간적, 물리적 공간을 만들어 운동을 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생각을 교류하고, 매일 서로의 발전을 응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에서 쓰기 위한 돈과 시간의 소비를 단정히 해왔다.
다음으로, 약속을 현실로 구체화한 실제적 경험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헤어지는 상황에서 아쉬운 마음이 들 때면 다시 만나자 약속하고 그 순간은 약속이 쉽게 이행될 것이라 생각 들지만 일반적으로 이행 확률이 높지 않다. 우리는 확률의 중력을 이겨내고 약속을 지켰다. 딱딱하게 들릴 수 있지만 나는 약속 또한 목표 설정으로 여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겠다는 것도 약속이고, 담배를 끊겠다는 것도 약속이며, 곧 밥 한번 먹자는 것도 약속이다. 약속, 즉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구체적 노력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세상에는 절대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고, 우리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5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노력해 달려왔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는 매우 가치 있는 장기 프로젝트를 성공한 셈이다.
또 하나는 상인의 마인드를 얻은 것이다. 나와 형의 조합은 생산성 있는 무언가가 나올 것 같다는 주위의 조언을 우리는 꽤 진지하게 고민했고 결국 실행했다.처음에는 상당히 민망한 생각들이었지만, 아이디어를 서로 주고받으며 살을 붙이니 전에는 생각도 못한 비즈니스 경험이 만들어졌고, 우리는 첫발을 떼었다. 단돈 1원이라도 좋으니 우리는 작심하고 수익을 만들어 낼 작정이다.
마지막으로 열정이 비전이 되었다. 주언규 작가의 저서 "혹시 돈 얘기를 해도 될까요"에서 열정과 비전의 차이를 제시했는데 공감이 간다. 요약하면 열정은 빠르게 타오르고, 흥분과 긴장감을 주며, 변덕스럽고, 신선한 자극을 주고, 무모한 반면, 비전은 시간을 들여 자라고, 마음 깊숙이 평화와 안정을 주며, 흔들림 없이 단단하고, 꾸준한 반복 속에 성장하고, 성숙하다. 열정에서 비롯된 우리의 인연은 이번 여행을 통해 비전이라는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진화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과거의 나는 여행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았다거나 깨달음을 얻었다거나 인생이 변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솔직히 코웃음 쳤다. 누구나 하는 여행에 거창한 의미를 붙여 팔아먹는 상술로 매도했다. 그러나 내가 다른 의미의 여행을 겪고 보니 그들이 말하고자 했던 의도가 이제야 들린다. 너무 단순한 진리지만 삶은 아는 만큼 보이고 그릇의 크기만큼 담는 것이며, 나의 앎과 그릇의 크기가 작았음에 한없이 겸손해진다. 아울러 여행은 어디론가 멀리 떠나는 것만이 의미를 주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물리적, 정신적 여행을 떠나 다양한 의미를 능동적으로 찾을 수 있음을 마음에 다시 새긴다.
집 앞 산책길로 여행을 떠나 길가에 보이는 코스모스 덩굴에서도 삶의 진리를 찾을 수도 있고, 거실에 앉아 하는 가벼운 명상으로 황금사원이 보이는 양곤의 한 카페로 여행해 날아와 고요와 평화를 얻을 수도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우리는 매일 여행자가 될 수 있다.
프레임을 키워 다시 보자는 친구를 등 뒤에 남겨두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전처럼 무겁지 않아 마음이 흐뭇하다. 아마 동행한 형이 말한 것처럼 그간 삶을 관통하며 남겨두고 올 수밖에 없었던 것들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을, 이번에는 반복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대신 멋진 삶을 살아낼 에너지를 챙겨가는 것 같아 오히려 마음이 풍요롭다.
이번 여행에 동반자가 되어준 모든 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