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문장 #0121

진정한 사과는 큰 화를 막기도 한다

by 미스터Bit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팀원에게 새 생명이 찾아왔다. 처음 하는 육아라 매일 아침 피곤한 모습이지만, 연신 아기 사진을 들여다보는 그를 볼 때면 내 마음도 생기가 돌고 흐뭇하다. 나의 아이들과 같은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그의 아기가 건강하고 밝게 자라길 진심으로 바라며, 그의 가족들도 새로운 손님인 아기로 인해 더 성숙한 이 세계의 구성원으로 성장하길 소망한다.


어제 외근 길에 우연히 우리 딸아이가 생후에 잠깐 머물렀던 산후조리원을 지나갔다. 이곳 발령덕에 이렇게 일부러가 아니면 찾아오지 못할 추억의 장소를 스쳐 지나가는 것도 꽤 소소한 재미다. 한겨울 추운 날씨가 기승을 부리던 연초에 태어난 딸아이는 산후조리원에 들어갈 때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다. 작고 쭈글쭈글한 연약한 생명체는 우리 가족의 기쁨이자 빛이었는데, 채 사흘이 되지 않아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겼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기가 막히고 가슴이 타 들어간다.


산후조리원에 들어온 지 3일째, 산후조리원 원장이 사색이 되어 우리 부부를 찾아와 다급하게 말하길, 우리 아기가 열이 40도까지 올라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갓 태어난 신생아가 고열에 병원 치료가 필요한 경우는 듣도 보도 못했기에 어이가 없었으나, 일단 병원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원장의 말에 따르면 아기가 너무 작아 종합병원에서도 쉽게 진료받기가 어렵다고 했고, 여러 병원을 수소문한 끝에 간신히 강북삼성병원에 급히 입원을 했다.


링거 바늘을 꽂을 신체 면적이 없어 이마에 바늘을 꽂고 거친 호흡을 하는 아기를 보고 있자니 정말 기가 막혔다. 거기에 아직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한 아내가 강한 모성애로 정신과 체력을 부여잡고 아기 옆에서 노심초사 아기를 간호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피가 거꾸로 순환하는 기분이 들었다.


더욱 절망적인 사실은 아기가 너무 작아 감염 원인이 혈액을 따라 어디에 착상됐는지 알 길이 없다고 했다. 만약 운이 따르지 않아 뇌나 신경과 관련된 기관에 영향을 주면 심각한 부작용이 따를 수 있는데, 그것도 아이가 말을 하게 되는 몇 년 뒤에나 알 수 있다고 했다. 소아 병동이라 대부분 아이들이었지만 어디에도 생후 4일을 네임택에 표기한 한 아이는 없었다. 정말 기가 막혔다.


며칠이 지나도 열은 떨어지지 않았고, 다시 돌아갈 것 같지 않을 조리원에 짐을 챙기러 갔을 때,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왜 이런 불운이 도대체 우리 부부에게 찾아온 건지 원망스러웠고, 원인이 돠 조리원에 불같이 화가 났다. 세상 어느 곳보다 외부의 감염으로부터 안전해야 할 곳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이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열이 지속된 지 3일쯤 되는 저녁에 고향 친구에게 큰 병원으로 옮겨야 될 것 같으니 네가 가진 모든 인맥을 써서 옮길 수 있도록 도와달라 부탁하며 그동안 꾹꾹 눌렀던 설움이 터져 나와 펑펑 울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해서 조리원이 나보다 더 처절하게 고통받게 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 차올랐다.


원장은 아기에게 긴급한 일이 발생했을 때부터, 무사해질 때까지 우리 부부만큼 아침 밤낮으로 아이와 와이프를 걱정해 챙겼고, 상황은 좋지 않았지만 각별한 걱정에 나는 진심으로 고맙다고 전했다. 만약 원장이 단 한순간이라도 진정성 있는 태도가 아니었다면 아마 나는 내가 먹은 마음을 실행에 옮겼을 것이고 어떤 식으로라도 그 조리원이 망할 때까지 전심을 다했을 것이다. 가정이기는 하지만 원장의 진심이 소송과 사업의 위기를 막은 셈이다. 이렇듯 진정성 있는 사과는 큰 화를 막기도 한다.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연예인들은 이런 맥락에서 좋은 교보재가 된다. 최근 나락으로 간 개그우먼, 아버지 빚을 갚으라는 요구에 불량했던 야구 선수, 개인 정보 유출 사태에 뒤늦게야 수습하는 척하는 CEO 등 아쉬운 사과로 일을 키운 이들은 한둘이 아니다. 심지어 일터에서도 고객에게 사과하는 순간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사과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선배들도 있다. 진심으로 나는 그들을 안쓰럽게 생각된다.


이제 우리 아기 고열의 결말을 얘기하면, 거짓말처럼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던 그 날 밤 열이 잡혔고 그제야 우리 부부는 안도했다. 다행히 성장 후에도 특별한 이상은 없었고, 나는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하늘에서 우리 엄마가 안아보지도 못한 손녀딸을 지켜주었다고 생각했다.


신비롭게도 그렇게 고난을 이겨낸 나의 작은 아기가 건강히 자라 초등학교 졸업을 목전에 두었다. 오늘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또 많은 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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